
에필로그
나의 소년시절 이야기는 일단 여기서 끝난다.
이후 부산에 도착한 나는 미군의 수송선을 타고 일본으로 향했다. 승무원들은 삼촌에게 매우 친절했고, 덕분에 나는 ‘승객’이 되었다. 하지만 이 일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물론 부모님과의 재회와 그 후 성장 과정과 일을 가지면서 겪게 된 고생도 다른 이야기이다.
어느덧 <노년>이라 할 연령이 되어 삶을 돌이켜보건데, ‘자이니치(在日)’라는 삶이 결코 편안한 것은 아니었다. 일본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민족학교에 다니며 생긴 추억들…그리고 취업차별, 모두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내 뇌리에 새겨져있다. 아버지와 어머니, 많은 동포들이 맛보았던 고통을 나도 충분히 맛보았다.
거기에는 항상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도 언젠가는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그것을 쓰려면 소년기의 이야기를 먼저 쓰는 일을 빼놓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은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국경과 역사의 협간에서 나의 소년시대는 농락당했다. 이런 소년이 존재했다는 것을 누가 알아줄까. 고희를 지낸 나 스스로도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었나 의심이 생길 정도이다.
한밤중에 문득 잠이 깨면 나의 인생은 무엇이었나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을 더듬는 것은 역시 ‘나이 듦’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노년은 찾아온다. 하지만 나의 인생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것은 내 고유의, 나 자신의 ‘이야기’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내 눈시울은 촉촉이 젖어온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알아주지 않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지 않고서는 이대로 있을 수 없다’
이런 갈등에 최근 몇 년 동안 시달려왔다. 이번에 소년시절의 이야기만이라도 써 두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내게는 커다란 결단이었다. 과연 그 결단을 성취했다고 할 수 있을까. 사실 나로서도 판단이 서지 않는 일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소년기의 나 자신을 여러 차례 반추했다. 그런 다음 이런 형식으로 나 자신을 <정착>시키기로 했다. 그것에 망설임은 없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어째서 나는 살아 있는 것일까. 살아 올 수 있었을까. 소년기의 나는 죽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험한 사건이 여러 번 있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할수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나는 살아왔다. 그런 나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나는 좀 더 살아 볼 가치가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이상한 생각이지만 확고한 신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소년의 이야기를 끝마치고 깨달은 것이 있다. 그건 이 이야기로부터 반세기 이상 지난 지금 일본과 한국의 관계가 크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한류스타로 불리는 이들이 일본에서도 대활약을 하고 연일 한국의 드라마가 일본에서 방영되고 있다. 축구나 야구를 보더라도 서로에게 라이벌이자, 또한 매우 가까운 친구도 되었다.
해수라는 소년이 맛 보았던 경험 같은 건 세월과 함께 풍화되어 이제는 잊혀진 과거의 역사가 된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동시에 이제부터 반세기 후가 몹시 기대된다. 당연히 그때가 되면 나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대를 만들어 갈 아이들은 분명 그 세상을 볼 거라 여긴다. 일본과 한국이, 기나긴 세월을 극복하고 친구가 된 것처럼 고국인 조선반도에도 남도 북도 없는,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를 집필할 수 있도록 편집 작업을 도와주었던 쿠레 미츠오(呉光生)선생, 표지 일러스트를 비롯해 제작을 도와준 노신부(魯信夫, 마츠다 노부오)군, 한국의 역사 사실 등의 교정을 도와주었던 <재일한국인역사자료관>의 강덕상 관장과 나기태씨, 그 외에 많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 본문에는 요즘 같으면 문제가 될 표현도 있었는데, 무대 설정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전하고 싶은 저자의 의지가 강했고, 더불어 차별적인 의도는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해 당시에 쓰였던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널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원 작 「반쪽발이(パンチョッパリ)」
출 판 사 (주)문예사(文芸社)
저자 소개 김수룡(金水龍) 1939년 교토에서 태어남.
일본 국민학교 입학 당시 '金'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서 심한 차별을 당한다.
이후 소년기를 한국에서 보내고 반일감정에 따른 집단 따돌림과 6.25를 직접 체험한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갖은 고생을 하며 여생을 보냈다. 전쟁을 모르는 젊은이와 아이들에게
자신의 체험을 전해야겠다는 심정에서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수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
소년기의 사실들을 확인 후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현재 요코하마에 거주.
일러스트 노신부(魯信夫, 일본명 마츠타 노부오松田のぶお)
제 24회 치바테츠야상 준우승 신인상 수상, 제43회 手塚상 준입선 수상.
오리지널 만화 <俠客吉宗> <俠客鬼瓦興業> <レッツボウズ>를 발표.
문예사(文藝社)에서 모집한 <투병분투기(鬪病奮鬪記 2011년)>에서 에세이<祐ちゃんは元気です>로
대상을 수상. 장인인 저자의 출간 의지에 깊은 공감을 하고 일러스트와 작품 구성 및 집필을 도왔다.
현재 여러 만화소설 등을 http://homepage3.nifty.com/matsuda/topindex.htm 에 연재 중.
옮긴이 정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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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연재를 마치며.
2015년 8월말, 몽당연필 일본어 소모임 '일어나'에서 떠난 책거리 일본여행 마지막날,
동포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에서 저자와 편집자를 처음 만났습니다.
몽당연필과도 인연이 깊은 한지언 선생님의 소개로 편집자인 마츠다 노부오 선생님과 SNS를 통해 알게 되었고, 얼마 후 저자인 김수룡 선생님과 같이 서너 시간쯤 만나 얘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어색하고 조심스러웠던 첫 만남이 있은 후, 연재가 중반을 넘어선 올해 초, 같은 장소에서 두 분과 재회를 했습니다.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반가운 표정으로 맞아주신 두분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첫만남에서 듣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들을 밤늦도록 들을 수 있었습니다. 화기애애한 술자리의 힘도 한몫 했지요. ^^;
작년 9월 초부터 시작한 연재가 오늘로 마지막이 되었네요. 매주 월요일 아침 <소년의 나라> 게시판을 통해 업로드 한 이 이야기는 재일동포 2세인 저자가 해방 후 조국으로 돌아와 체험한 유년시절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역사의 소용돌이를 겪고 이겨내며 살아온 수많은 재일 동포들의 삶 하나 하나가 소설과 같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털어 놓지 못한 이야기, 전하고 싶었던 많은 사연들을 품은채 세상을 떠난 동포들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겠지요. 이제는 1세대들의 체험을 남아있는 기록으로 만나야 하는 세월이 되어 버렸고, 부모 세대의 아픔을 이어 차별과 맞서고 있는 동포들의 현실도 똑똑히 봅니다.
그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세상이 달라져서 지난 세월의 풍파에 깎여 닳아지고 잊혀지는 기억이 결코 아닌,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할 그 분들의 삶을 통해 지금의 우리를 되돌아 보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만나야 할 이야기들이, 들어야 할 체험담들이 너무 많아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점점 세상을 떠나 묻히고 마는 이야기들이 안타깝지만, 계속해서 그분들의 목소리를 놓치지 말자는 다짐이 단단해진 고마운 몇 달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부족한 번역글을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수고로운 일을 꾸준히 해 내신 정미영님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멋집니다!!
동포들의 현실을, 그들이 겪은 이야기를 꾸준히 올려주신 정미영 교육팀장님 멋집니다. 고맙습니다 ^_^
미영님 애쓰셨습니다!다음 주 월요일 아침에 좀 허전할 거 같은데요..!^^
에필로그는 또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하겠다요~~~
그동안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 다시다시 거꾸로 읽었네요. 나만 그런가요?
갑작스러워서 덜커덩 마음이 소리를 내었어요.
에필로그 읽으며 내 소녀의나라 생각해 봤네요. 고맙습니다. 글도 마음도 추억도~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원작자님. 또 정선생님.
미영씨 수고 많았어요.... 이쁜 책으로 빨리 나와주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