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18일>
남부여부흥군의 2대 성지라면 임존성과 주류성이다. 임존성은 예산 대흥면의 봉수산에 자리 잡은 성 둘레가 2.4km인 포곡식 석축산성임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주류성 연구는 90년 전 일본 와세다 대학의 쓰다 교수가 주장한 한산설을 이병도 교수가 지지한데 이어 연기설, 부안설, 홍성설(장곡설) 등이 대두되었다. 지난번 연기 주류성으로 비정되는 운주산성(07년과 09년), 부안 주류성으로 비정되는 우금산성(08년)을 답사(이전 산성 답사에서는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 블로그에 올릴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다. 원래 사진 찍는 것을 귀찮아 했는데, 지나고 보니 많은 산성 답사에서 필름을 남기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이제부터라도 충실히 해야겠다.)한데 이어, 오늘은 홍성 장곡 주류성으로 추정되는 홍성 석성산성을 답사하기로 마음 먹었다. 홍성 석성산성은 일명 '얼방성' 이라고도 한다.
홍성군 장곡면 산성리에 소재한 양성중학교(폐교) 입구에 홍주향토문화연구회 안내판이 답사자의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이졍표 없는 산성 답사는 언제나 힘겹다. 촌로들에게 물어 물어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야 하는 기억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답사 결과는 대만족이긴 하지만...
주류성설에 따라 답사해본 결과 각 지역마다 자기 지역이 주류성이라고 100%로 확신하는 듯하다. 이러한 결과 성과도 뚜렷한 듯하다.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향토사학자들의 연구는 불을 뿜듯 경쟁적이다. 이 결과 적어도 한산 주류성설은 거의 폐기 수준에 이른 듯하다.
양성중학교 서쪽 계곡에 들어서면 아담한 저수지가 답사자를 맞이한다. 강태공 두 사람이 인기척에 쳐다 본다.
산성 답사의 시작
저수지 위에 있는 사방댐, 놀란 청둥오리 한마리가 수면을 박차고 비상한다. 청둥오리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철새라서 4월에는 북방으로 날아갔나?
계곡을 따라 올라가니 갈대 군락이 나온다.
흙 색깔이 온통 검다. 석탄같다.
석성산성에는 동굴이 하나 있다고 하였는데, 이 동굴은 인위적인 동굴 같다. 일제때나 석탄광산하려고 팠나?
박쥐라도 튀어나올 듯 굴 내부는 어둡다.
동굴 주변의 습지
검은 흙
수구 주변의 성돌, 후대에 논을 만들기 위해 수구자리를 돌로 막은 듯하다.
정상까지는 560m, 너무 쉽죠, 잉!
성 내부의 건물 자리들은 후대에 온통 논이나 밭으로 개간되었다. 보통 산이라면 밭이 맞지만, 이곳 석성산성 내부는 물이 풍부해선지 논으로 만들어졌다. 산성 내부에 수원이 풍부한 것도 장기 방어성으로 적합한터,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면 장곡 주류성설도 탄력은 받을 듯하다.
건물터는 논으로 개간되었다.
성 내부의 소류지
밭으로 개간하기 위해 성돌을 빼다가 경계를 만들었거나, 아니면 이전에는 집의 담으로 사용했을 수도...
200평은 족히 넘을 밭
북문터에서 서쪽 방향으로 난 성곽
북문터에서 동쪽 방향으로 난 성곽
북문터
장곡면 대현리(내복동) 가는 길
북문터 부근의 산성 안내판
홍성 장곡산성에서 출토된 기와 조각에 사시, 사시량, 사라 등이 새겨진 것으로 추정컨대 이 산성은 남부여의 사시량현성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시량현이란 말은 삼국사기에 나온다. 삼한 통일 후 신라에서는 신량현으로 불렀고, 고려에서는 여양현으로 불렀다. 평화시기가 찾아오자 산성보다는 평지에 현성이 있는 것이 좋을 듯하여 내포의 명산 오서산(790.7m) 아래 지금의 장곡면 광성리 오서초등학교 부근으로 이전한 것 같다. 그 연유로 광성리에 소재한 평지성을 여양현성으로 부르고 있다.
북문터에서 성곽 좌측길로 들어서서 뒤돌아 한컷 찍어 본다.
산성의 북벽
남부여 부흥군의 영혼이 담겨있는 듯한 진달래가 꽂을 피우고 있다. 념을 올린다.
산성 서벽의 성돌들
서벽을 넘어 산성을 잠시 나왔다.
멀리 내포의 가야산이 보일듯 말듯하다...
남서 모퉁이 자연 성벽 기점의 바위들
산성 정상에서 답사 들머리인 양성중학교가 보인다.
남쪽으로 남부여 자연방어선인 무한천이 보인다. 무한천은 예당저수지로 모이고 다시 예산읍에 소재한 예산산성의 서쪽 밑을 흘러 삽교천과 아산시 도고면 앞에서 합강하여 아산만으로 들어간다.
산성 정상 바위군락에서 바라본 오서산, 오서산이 어깨를 약간 내밀었다.
칠갑산 자락이 희미하게 보이는 듯
산성의 서벽
정상의 바위
무한천
칠갑산 자락, 석성산성에 서면 남에서 북으로 칠갑산, 오서산, 가야산이 다 보인다.
삼각점
남벽의 자연 방어선
서벽의 내부 산책로
남부여 기와 조각들
산성의 동벽
산성의 동벽2
산성의 우물터
동벽의 정상, 여기도 자연방선이 펼쳐진다.
동벽의 정상에 서면 대흥면의 뒷산인 봉수산이 보인다. 이곳에는 그 유명한 남부여의 임존성이 버티고 서있다.
북쪽으로 금북정맥의 지맥인 봉수지맥이 보인다.
동쪽으로 학성산성(일명 두루미성)이 손에 잡힐듯 보인다. 멀리로 봉수산 임존성이 보인다.
학성산성 오른쪽 너머로 천태산 줄기가 보인다. 천태산 줄기에는 소구니석성과 천태산성이 동서로 일렬지어 있다. 이곳 석성산성, 학성산성, 소구니석성, 천태산성, 봉수산 임존성까지 무한천과 평행으로 산성이 도열해 있는데, 내포를 지키기 위한 남부여 부흥군의 최전방위선으로 이해된다.
서쪽으로 오서산이 큰형처럼 의연하게 버티고 서있다.
동벽 정상에서 바라본 서벽 정상, 삼각점이 있던 곳
아! 오서산, 남부여 부흥군의 정신이 깃든 반역의 원향
학성산성이 이곳을 비호하듯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있구나! 든든한 나의 동지여! 우릴 조금만 더 쳐다오! 남부여를 지켜내자! 필자는 이곳 동벽 정상에서 내려갈 줄 모르고 감상에만 젓는다. 괜시리 눈물까지 나누나!
이곳에서도 무한천은 보이고...
내려온다. 남문 수구터까지 자연 방어선이 이어진다. 이곳이 자연 동굴인가? 사람이 거처하기에는 왠지 협소해 보인다.
홍성 석성산성을 답사해보니, 흙 색깔이 온통 검어 석탄인 것으로 추정된다. 어쩌면 이곳이 흑치상지가 흑치씨로 봉해졌다는 남부여 금물현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일설에 따르면 흑치는 '검은 내'의 한자표기로 이두식 표현은 '금물'로 남부여 금물현일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검은 흙에 씻긴 물을 장기간 식수로 먹었다면 치아가 검게 변할 수도 있을터... 석성 내부의 흑토를 보면서 남부여부흥군의 대장군 흑치상지가 이곳 홍성 장곡산성 일대에서 부흥군을 이끌었다는 확신이 든다. 이건 완전히 필자의 생각이다.
땅이 온통 흑색이다.
강물도 검고...
산성을 내려와 여양현성이 있었던 오서산 아래 장곡면 광성리 오서초등학교를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초등학교 총동문회가 있었는지 행사 차량들이 세트를 싣고 있었다. 필자를 동문으로 오해했던지 몇몇이 쳐다본다.
오서산과 광성리의 오서초등학교, 이 주변이 여양현성터 자리로 보인다.
오서산
오서초등학교 정문을 나오면 구릉이 보이는데, 아마도 성곽인듯...
초등학교가 다른 전답이나 집들보다 약간 높은데 이는 아마도 옛날부터 여양현 건물터 자리가 있어 그런가 보다.
초등학교 주변의 옛집들, 돌담이 정겹다. 성돌들을 캐다가 쌓은 듯하다.
오서산 아래 참뱅이성(?), 대략 맞을 것 같은데, 다음 번 정확하게 답사해야겠다.
여양현성 성곽
성곽, 먼 옛날 타임머신을 타고 이곳을 찾는다면 우리는 오서산 아래 정말 멋진 토성을 만날 수 있었을 것 같다.
마한 시절 이곳에 멋진 토성이 있었을 것이고, 남부여 시절에는 사시량현이 장곡면 산성리 석성산성으로 이전했고, 신라의 삼한 통일 이후 다시 이곳으로 여양현성이 복원되어 고려까지 이어진 듯하다. 전쟁과 평화에 따라 지방의 중심지 이동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들판에서 바라본 오서초등학교 주변의 토성터
애마를 홍성읍내로 돌렸다. 사성을 찾기 위해서다. 사성은 홍성읍에서 29번 국도를 타고 홍동천을 건너는 임암교를 지나자 마자 바로 좌회전하면 나오는 홍성읍 구룡리 배암선 마을 뒷산이다. 사성은 일명 '고모랭이성'이라고도 한다. 홍동천과 금마천이 만나 삽교천을 이루는 삼각주 구릉에 위치하여 홍성과 예산 주변 평야지대를 관망할 수 있는 최적의 산성지다.
고모랭이성
홍동천
배암선 마을
구산마을에서 바라본 고모랭이성
홍성군 금마면 장성리 금마들에서 바라본 고모랭이성
남부여 부흥군이 고무랭이성을 당나라 군대에게 뺏기고 내포가 적에게 넘어가며 부흥군에게는 최후가 다가온다. 이로써 남부여는 완전히 제압당하고 신라의 백성으로 살아야 할 판이었다. 당나라는 남부여 멸망 후 반도 삼한의 땅에다가 식민주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바, 이곳 내포는 지심주로 개명하고 남부여부흥군의 중심지였던 고무랭이성을 버리고 금마면 송암리 퇴뫼산 정상(136.1m)에다 성을 쌓고 내포를 통치한다. 아! 굴욕의 시간들이여! 대륙에서 반도로 뱃길로 제일 가깝고, 물산도 풍부한 이곳 내포를 당이 장악한다면 반도 정벌도 용이할 터. 하지만 남부여 후예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비록 한때 적이었지만 삼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던 신라인과 손 맞잡고 당과 일대 한판을 벌여 지심주를 무너뜨린다. 아! 위대한 내포인들이여! 남부여인들이여!
퇴뫼산 정상 가는 길
홍양저수지, 홍양저수지는 금마천의 수원지이다. 홍양저수지 너머 '고모랭이성'이 있다. 아마 당나라가 고모랭이성을 버리고 이곳 퇴뫼산성으로 지심주를 옮긴 이유는 고모랭이성이 자칫 홍동천과 금마천이 합류하는 삼각주 지역에 있어 고립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천태산성과 소구니석성이 있는 천태산을 지나며 한컷, 왼쪽 봉우리가 천태산.
출처 : 하늘도깨비 | 글쓴이 : 하늘도깨비 |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