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
최 방식
5월 둘째 주, 어버이 주일 예배를 마치고 교회 로비에 있는 아담한 공간의 북 카페로 눈길이 머물렀다. 가지런히 꽂힌 책 중에 『한국전쟁 70주년 사진집 1950』이란 책에 손이 갔다.
첫 장을 넘기니 “우리는 기억되는 존재가 되기 위해 살아간다.”는 안토니오 포르키아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닥아 왔다. 책장을 스르르 거침 없이 단숨에 넘기니 한국전쟁 중에 찍은 생생한 역사의 현장인 사진 책이었다. 나는 평소에 역사적인 사건이나 다큐 같은 프로를 좋아하는 편이라 망설임 없이 이 책을 빌려 왔다.
피보디상 수상 기자인 이 책의 저자 존 리치(1917~2014)는 20세기에 미국이 참전한 모든 전쟁에 군인으로 참가하거나 종군기자로 참가했다. 그의 프롤로그를 읽으며 책 속으로 서서히 빠져 들었다.
우리 집 거실에는 1952년 7월에 컬러로 고향 마을을 찍은 사진 두 점이 걸려있다. 한 점은 서쪽 마을을 배경으로 해안가에는 해초들이 쓰레기처럼 널려있고, 팬티조차 입지 않은 수영하는 아이가 보인다. 초가집이 있는 해변 끝에는 부서진 패선이 서너 척이 있고, 내가 놀던 민둥산의 뒷동산이 보이는 사진이다. 사진 속에는 내가 태어난 우리 집도 조그만 하게 보여 소중하고 애착이 가는 사진이다.
또 한 점은 신선대를 찍은 사진이다. 지금의 부경대 용당캠퍼스가 있는 야산에서 찍은 사진이다. 뚜렷한 U자형의 해안, 동네의 한 가운데로 가로질러 해변으로 이어지는 비포장도로가 실타래처럼 풀어져 있다. 용당만의 파란바다와 갯마을, 신선대의 송림과 조도의 풍광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이 사진을 처음 접한 건 15년 전, 모 신문에 한국전쟁 부산 사진전을 백산기념관에서 개최한다는 기사가 났다. 기사 속의 한 사진이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마을 사진이었다. 처음 보는 순간 놀랍고 흥분된 마음으로 눈을 의심하며 바라보았다. 지금은 산전벽해가 되어 사라진 갯마을이 있었다. 꿈속에나 그리던 고향마을이 내 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사진전이 열리는 날 컬러로 찍은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경이로움과 내 몸에 알 수없는 이상한 전율이 흐르고 발걸음은 잠시 굳어 있었다. 사진에 실로 경탄驚歎했다.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추억을 소환 시키고 마법처럼 그 시절로 데리고 갔다. 옛 어른들의 삶의 기록도 있었다. 사라져버린 유년시절의 애틋한 그리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을 내게 그대로 돌려주었다. 그 시절 컬러 사진이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면서도 새로 구입한 뒤카로 셔터를 마구 눌러 됐다. 사진을 CD에 담아 두었고 확대하여 친구들과 지인들에게도 보내주었다.
오래 전부터 거실에 걸려있는 사진을 볼 때마다 당시 사진을 찍은 분이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감사를 하였다. 그러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끔 작가의 프로필과 누가 소중한 사진을 찍었는지 알고 싶었다. 당시 신문에 이름과 사연이 실렸지만, 그 때는 사진에 정신이 팔려 그냥 읽고 스치고 지나가 버렸다. 그 기사에서 기억나는 것은 종군기자로 컬러 코닥필름을 사용 했다는 것과 일본에서도 현상 할 수가 없어 본국으로 가져가 오십년 넘게 보관하고 있다가 발견 되었다는 사실을 기사를 통하여 읽은 희미한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을 뛰게 한 놀라운 발견은 거실에 걸린 사진작가를 그토록 알고 싶어 하던 분이 바로 이 책의 저자 존 리치였다. 기쁨과 흥분은 한동안 가시지 않고 남아 있었다. 어버이 주일 북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한 권의 책이 그동안 나의 궁금증을 해소하여 주었다. 마치 우연히 귀한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기뻤다.
존 리치 종군기자는 그의 책에서 당시 대부분의 기자들이 흑백필름을 사용 했지만 자신은 니콘 카메라(니콘사에 통역을 해준 대가로 선물로 받음)로 컬러 코닥필름을 사용한 기자는 자신이 유일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왜냐하면 당시에 컬러 필름 현상을 뉴욕 주 로체스터에 있는 본사에서만 가능했고 현상된 컬러슬라이드는 작은 종이 상자에 담겨 다시 보낸 사람에게 배달되는 번거로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은퇴 후 메인 주 고향 집에 돌아온 그의 표현에 의하면, “케이프 엘리자베스에 살고 있던 어느 날, 저는 이웃에 사는 잭 케널리 씨에게 한국에 종군했던 시절 촬영한 컬러슬라이드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이 컬러슬라이더들은 차를 보관하던 상자에 50년 가까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진을 본 잭은 무척 놀라워했고, 저는 그가 왜 그렇게 놀랐는지를 제가 찍은 사진을 직접 다시 보고서야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제안에 따라 모든 사진에 대한 저작권을 등록하고 출판사의 도움으로 한국전쟁 사진집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국전쟁을 보도하면서, 우리가 이 사진을 만나게 되는 운명적인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낙동강전선에서, 때로는 장진호에서, 그리고 휴전회담이 길고 지루하게 반복되었던 판문점에서 계속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을 찍게 되는 것은 사진기자가 아니기에 더 자유롭게 민간인 사진, 풍경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 사진들 중에는 고향 갯마을 사진이 들어있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또 다른 행운은 파리와 베를린, 도쿄, 홍콩 등지를 돌아다니며 50년 가까이 외국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필름은 별 훼손 없이 훌륭한 상태로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사를 할 때마다 물건을 정리하며 옛날에 찍은 필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쓰레기통에 버렸다면 영영 이 사진을 볼 수 없을 수도 있었다.
나 역시 청년시절에는 사진에 관심이 있어 한때 사진을 많이 찍고 필름을 오랫동안 모아두었던 상자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이 상자의 필름을 언제 어떻게 버렸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버리는 자에게 문화와 역사가 없다.’ 란 말이 실감이 난다.
첫댓글 70년전 부산 용당바닷가 갯마을 풍경을 담은 컬러사진을 우리에게 보여주어 정말 감사하며 코닥필름을 사용하여 찍은 생생한 존 리치 종군기자의 한국전쟁사진집 발간을 축하합니다
이 사진을 지면에서 본듯 합니다
역사적인 기록이 남아 있다는것도 대단하고 사진속 장소에서 함께한 기억을 되살린 이들은 더 소중할것입니다
기억을 되돌리는 사진은 역사입니다
디지탈 카메라 시기때 부터 외장하드에 사진을 저장하고 있는데 일년에 한번 열어볼까 말까 하지만
추억을 소환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