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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소(疏)
(1) 의저수량간립무씨위후소.(1)
臣某誠惶誠恐拜手稽首伏聞陛下廢皇后立武氏臣不勝感慨無任戰慄臣以狂言妄犯龍顏固知罪當萬死然而一臣之命不足惜也三綱之道不敢不正故敢進狂言冀回聖聽臣聞詩云刑于寡妻至于兄弟以御于家邦傳曰欲治其國者先齊其家欲齊其家者先修其身臣謂天下之本在國國之本在家家之本在身身不修道不行於妻子故曰家之本在身也一家之所慕一國慕之一國之所慕天下慕之故曰天下之本在國國之本在家也蓋心正則身修身修則家齊家齊則國治國治則四夷之遠萬民之衆可運於掌而不然則雖親戚之中亦有反者矣堯欲試舜而先降二女者良以此也蓋其心以爲夫婦者幾微之際生民之始苟於此而不成其道則其餘不足觀也已聖人之於天下也固無所不用其心矣然而必先於夫婦者夫婦之道正然後父子之道親矣父子親然後君臣之義長幼之序自此而正矣夫婦之際豈偶然哉昔隋之衰也三綱已淪九法亦斁天下貿貿焉莫知所之惟我太祖皇帝武以滌之太宗皇帝文以定之其所以應天順民撥亂反正之功于湯于武不顯其光然而瘡痍不起禮樂未遑而以四方觀化萬民取則之道貽之於陛下此正正其心以正其身正其身以正其家正其家以正朝廷正朝廷以正萬民之時也陛下胡不動念於此乎陛下胡不動念於此乎欲正萬民而不先其家是猶汩其源而求其流之淸也陛下胡不念小弁之怨乎皇后雖有可去之道而固當去之武氏亦不當立也武氏經事先帝衆所共見不可以長髮況納之後宮乎不可以納之後宮況母儀天下乎孔子曰合二姓之親以承宗廟不亦重乎婚禮亦曰齋戒以告鬼神夫鬼神者宗廟之謂也今陛下欲立武氏則當告之宗廟也先帝之靈洋洋如在其左右而陛下何面目告之乎以先帝之才人爲陛下之后而告之先帝之靈陛下縱不愧也先帝九泉之靈尙謂有其子乎禮曰父沒而不能讀父之書手澤存焉爾曾子不食羊棗者以不忍食也況以父之所御之人而使治予棲乎先帝之朝陛下之視武氏則爲庶母也武氏之視陛下則爲嫡子也子母之間至親而尊今者先帝棄弓而使武氏共御一榻其相視也謂如何哉昔我太祖之擧義兵也隋之士女簞食壺漿以迎王師者豈有他哉慨三綱之淪而欲見更始之化也今陛下三綱之道若是則天下萬民宜何所法守也李勣之言曰此陛下家事何必更問外人嗚呼家事不必議於朝則何事可議於朝乎天子以胡越爲一家而天子天下之父也皇后天下之母也天下卽天子之家也卽祖宗之重器也立之皇后天下之大事也父子夫婦天下之大道也居祖宗之重器而行天下之大事敢不顧天下之大道乎天下之事莫重於此而謂之家事不必更問於外則臣謂朝廷無一可議之事矣李勣非不知不可而欲阿陛下故其言若是先帝以李勣爲可托孤故託之於陛下惜乎其知人之難也先帝寧意其勣之言之至於此乎陛下有堯舜之資而李勣顧命之大臣也宜格君心致君堯舜而反致陛下於亂倫之道臣願斬李勣上告宗廟下示軍民則三綱可正四夷可服而臣無諂容之意矣不然則奸臣爭進而諂佞陛下誰與共位乎奸臣不懲則賢士不進賢士不進則朝廷寧可正乎必也綱常顚倒上下乖隔而名分紊矣孔子以是爲懼而欲先正名曰名不正則言不順事不成民無所措其手足臣不知今日之名可謂正歟武氏之於陛下爲庶母而今且爲后也禮有庶母之喪若使武氏一朝不諱則臣不識陛下名之以母喪乎名之以后喪乎名分一至於此民安所措其手足乎使孔子生於今日則其欲正之也豈偶然哉先帝寧意其勣之言之至於此乎陛下有堯舜之資而李勣顧命之大臣也宜格君心致君堯舜而反致陛下於亂倫之道臣願斬李勣上告宗廟下示軍民則三綱可正四夷可服而臣無諂容之意矣不然則奸臣爭進而諂佞陛下誰與共位乎奸臣不懲則賢士不進賢士不進則朝廷寧可正乎必也綱常顚倒上下乖隔而名分紊矣孔子以是爲懼而欲先正名曰名不正則言不順事不成民無所措其手足臣不知今日之名可謂正歟武氏之於陛下爲庶母而今且爲后也禮有庶母之喪若使武氏一朝不諱則臣不識陛下名之以母喪乎名之以后喪乎名分一至於此民安所措其手足乎使孔子生於今日則其欲正之也豈偶然哉不知陛下肯用孔子之言乎如不用之則已若以孔子爲可用之人則臣之所言皆出於孔子之書也詩書經傳皆是孔子之徒所定故臣嘗讀其書而究其跡夏以妹喜而亡商以妲己而傾赫赫宗周褒姒烕之夫前世之王以色亡國者莫如桀紂幽厲而然亦不聞其名分之有如今日者也傳曰三代之庠序學校皆所以明人倫也是故贊大舜之德者必稱二妃稱文王之化者必贊關雎舜文之治至矣盡矣而然亦必始乎正家之法嗚呼治亂興亡之跡昭然可考而其所以興者由其正家之法也其所以亡者亦由於失家之道也此豈非國之本在家者乎聖經賢傳必載乎此者欲使後世知所擇而從之矣其爲後世之君讀書至此而寧不寒心哉夏商之衰女戎煽禍雖不至於干名犯分而亦足以致其亡況名分之紊者乎祖宗躬擐甲冑親犯矢石而創始乎億萬年之業至於陛下不以先王之道守之是棄天下也祖宗在天之靈其肯曰有子有孫而肯構肯堂乎史官秉直君擧必書陛下讀舜文之史則其如何也讀桀紂之史則亦如何也今日之事可喜可愕皆垂於後後之視今亦猶今之視昔可不畏哉伏願陛下鑑前代之跡懼後世之譏決然斷之則其前之過如日月之食及其更也民皆仰之矣三綱煥煥乎有明禮樂秩秩然有章舜文之治不獨專美而前聖後聖其揆一也伏願采納焉臣固知罪當萬死豈愛一身而坐視三綱之淪乎臣某拜手稽首
신 아무개(산당공)는 황공하게도 폐하 앞에 절을 올리고 머리를 조아립니다.
엎드려 듣자오니 폐하께서는 황후를 폐하시고 측천무후를 새로 황후로 세우셨다고 하옵는데 그에 대하여 신은 개탄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몸이 벌벌 떨리는 것을 차마 감당할 수 없어 상소를 올리옵나이다.
신이 미치광이 같은 말로 감히 망령되이 폐하를 화나게 만들었으니, 참으로 만 번 죽어 마땅한 죄 인줄로 알지만 그러나 지금 이 문제는 신 한 사람의 목숨만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삼강의 도리를 감히 더럽힐 수 없으므로 감히 미치광이 같은 말로 진언 드리오니 하루 빨리 성덕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신이 듣기로 『시경』에 이르기를;
자신의 아내부터 바로잡아 본보기가 되면, 그것이 형제들에게 미치고, 그리하여 집안과 나라가 잘 다스려 진다.(2)
라고 했으며『대학』에 이르기를;
한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는 사람은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고, 그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려는 사람은 먼저 그 몸을 닦아야 한다.(3)
라고 했습니다.
신이 이르되 천하의 근본은 나라에 있으며, 나라의 근본은 가정에 있고, 가정의 근본은 그 사람의 몸에 있으니, 몸을 수양하지 아니하고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도를 행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므로 이르기를 가정의 근본은 그 사람의 몸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 가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한 나라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되고, 한 나라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천하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천하의 근본은 나라에 있고 나라의 근본은 가정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대개 마음을 바로 하면 몸이 수양되고, 몸이 수양되면 가정이 가지런하게 정돈되고, 가정이 가지런하게 정돈되면 나라가 잘 다스려지며, 나라가 잘 다스려지면 사방의 먼 곳에 살고 있는 오랑캐들을 비롯한 모든 백성들을 손바닥 움직이듯 자유롭게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게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비록 가까운 친척 중에서도 반발하고 나서는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요임금께서 순임금을 시험하기 위하여 자신의 두 딸을 내려 시집보내신 것(4)은 그렇기 때문에 잘한 일인 것입니다.
대개 마음을 다하여 부부가 된 다는 것은 기미라는 입장에서 볼 때 백성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처음 시작이니, 참으로 그것으로 그 도를 이룰 수 없다면 그 다음은 살펴 볼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성인이 다스리는 천하에서는 참으로 그 마음이 쓰이지 않는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먼저 그 부부 사이를 살펴보아 부부사이의 유별한 도가 바로서 있고, 그러고 난 다음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친밀한 도가 바로설 수 있으며,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친밀한 도가 바로서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임금과 신하 사이의 의리가 바로설 수 있으며,
어른과 젊은이 사이의 질서가 바로설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질서가 바로잡아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부사이의 일이 어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옛날에 수나라가 몰락할 때 삼강이 먼저 무너졌고, 홍범구주의 원칙 또한 부서져서 천하가 교양 없고 무식하여졌으며, 더 이상 배울만한 곳이 없게 되고 말았더니,
우리 태조(5) 황제께서 힘에 의하여 좌우되는 세상을 척결하시었고, 태종(이세민) 황제께서 학문으로 다스려지는 세상(6)으로 만드시었으니, 이른바 하늘의 이치에 순응하고, 백성들의 뜻에 따르신 것입니다.
전쟁을 평정하여 질서 있는 세상을 회복하신 공로를 놓고 말하자면 탕왕과 무왕의 경우와 비교하여 보아도 그만한 영광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고통 받는 전쟁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예법과 음악이 흐트러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방에서 교화된 모습이 보이고 모든 백성들이 도를 따르며 살게 된 것은 모두 폐하의 공이라고 할 수 있사옵니다.
이것은 바로 마음을 바로 가짐으로 인하여 몸이 바르게 되고, 몸을 바로 가짐으로 인하여 가정이 바로잡히고, 가정이 바로잡힘으로 인하여 조정이 올바로 서게 되고,
조정이 바로 섬으로 인하여 모든 백성들이 올바른 세상에서 살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데, 폐하께서는 어찌 그런 쪽으로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십니까?
모든 백성들을 바르게 살게 만들고자 하면서 먼저 그 가정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러운 물이 나오는 근원은 그대로 내버려 둔 채 하류의 물이 맑아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것인데, 폐하께서는 어찌『시경』<소변>에 기록되어 있는 원망하는 말(7)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십니까?
비록 황후에게 쫓겨날 만한 잘못이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쫓겨나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렇다하여 측천무후를 그 자리에 세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측천무후는 이미 태종 황제를 모신 후궁이었다는 사실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함께 보아 잘 알고 있는 일이므로 머리를 깎고 감업사로 들어가 다시는 머리를 길러서는 안 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하물며 그녀를 받아들여 후궁으로 삼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후궁으로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하물며 천하의 어머니인 황후로서 갖추어야 할 도리를 지닌 여인이겠사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두 성씨가 합하여 친밀해지고, 종묘에 모신 조상의 뜻을 이어받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아니하리오.(8)
라고 하셨고,
『예기』<곡례편>에서 혼례에 대하여 또 이르기를
몸을 단정히 가다듬고 귀신에게 고한다.(9)
하였으니 무릇 귀신이란 바로 종묘에 모신 조상을 이르는 것입니다.
지금 폐하께서 측천무후를 황후로 세우기 위해서는 당연히 종묘에 고해야만 할 것인데 태종 황제의 혼령께서 두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고 계실 터인데 폐하께서는 무슨 면목으로 감히 아버지이신 태종 황제의 후궁이었던 여자를 황후로 봉하겠다고 고하실 수 있겠습니까?
태종 황제의 재인이던 사람을 폐하의 황후로 삼고 그 사실을 태종 황제의 영령 앞에 고하는 것이 폐하께서는 부끄럽지 않는지 모르겠지만 구천을 떠도시는 태종 황제의 혼령 입장에서는 어찌 폐하를 아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사옵니까?
『예기』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아버지가 보시던 책을 읽을 수 없으니 아버지의 손때가 묻어 있기 때문이다.(10)
라고 했으며 증자가 고욤을 먹지 않은 이유는 아버지 증석이 고욤을 좋아하였기 때문에 아버지 생각이 나서 차마 먹지 못하였던 것인데 하물며 아버지를 잠자리에서 모시던 후궁을 시켜서 나의 잠자리 시중을 들게 할 수 있으리오.
태종 때 폐하가 보았던 측천무후는 바로 서모이며, 측천무후가 보았던 폐하는 바로 적자였습니다.
아들과 어머니 사이는 지극히 사랑하고 존경해야 할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태종 황제께서 돌아가셨다 해서 측천무후로 하여금 한 침대에서 같이 교접한다면 그것을 보통 일로 볼 수 있으며 어떠하다고 말할 수 있겠사옵니까?
옛날 우리 태조께서 의병을 일으켰을 때 수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이 넉넉하지 못한 살림으로 거친 음식을 내어 임금님께서 거느린 군사를 맞이하여 대접한 이유가 어찌 다른 곳에 있겠습니까?
삼강의 예절이 무너진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새롭게 시작되는 교화된 세상을 보고 싶어서 그리한 것인데 지금 폐하께서 삼강의 도리를 이와 같이 무너트리신다면 천하의 모든 백성들은 어떤 법을 마땅히 지키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이적이 말하여 가로되
이것은 폐하 개인의 집안일인데 어찌 반드시 바깥사람 말을 들어야 하는가?
라고 했다는데 오호라!
임금의 집안일이라 해서 조정에서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면 과연 어떤 일을 조정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인가?
천자는 북쪽 오랑캐나 남쪽 오랑캐까지 모두 아울러 한 가문을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천자는 천하의 아버지이고 황후는 천하의 어머니이며 천하가 바로 천자의 집이 되는 것이므로 즉 조종의 귀중한 보배인 것입니다.
황후를 세우는 일은 천하의 큰일이며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부부 사이의 관계는 천하의 큰 도리에 관계되는 일입니다.
조종의 귀중한 보배인 까닭은 천하의 큰일을 행하는 것이기 때문인데 감히 천하의 큰일을 돌아보지 않을 수 있으리오.
천하의 일 중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는데 황실의 집안일이라 하여 밖에서 물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조정에서 신하들이 토의할 일이 하나도 없다고 할 것입니다.
이적은 그 일을 그리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폐하의 눈에 들기 위해 알랑거릴 요량으로 그렇게 말한 것인데 만약 그러하다면 태종 황제께서 이적에게
어린 아들을 부탁한다.
하셨으니 바로 폐하를 부탁하신 것입니다.
안타깝도다!
사람을 알아본다는 것이 이와 같이 어려운 일이로다. 태종 황제에 대하여 평소 어찌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적의 말이 이와 같은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인가?
폐하께서 요순과 같은 자질을 가지고 계시다면 이적은 고명대신이므로 마땅히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아 요순과 같은 임금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인데 그와는 반대로 폐하께서 윤리를 문란하게 하는 길로 가시도록 인도하였으니 신이 바라옵건대 이적의 목을 치소서.
위로 종묘에 고하고 아래로 군인과 백성들에게 보여서 삼강을 바르게 한다면 사방의 오랑캐들이 모두 복종하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므로 신은 이에 관하여 폐하께 아첨하여 받아드릴 생각이 조금도 없사옵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간신배들이 다투어 진출하여 온 갓 아첨을 다 해댈 것인데 과연 폐하께서는 누구와 함께 옥좌를 지키시겠습니까?
간신을 징계하지 않는다면 어진 선비들이 나오지 않을 것이고, 어진 선비들이 나오지 않는다면 누구와 함께 조정을 올바로 이끌어 갈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강상의 질서가 무너지고 위아래가 서로 어그러지고 멀어지게 되어 결국은 명분마저도 문란하게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공자께서는 이것을 두려워하셔서 먼저 명분을 바로잡기 위하여 말씀하시기를;
명분이 바르지 아니하면 말이 순화되지 않게 되고 일을 이룰 수 없게 되어 백성이 손과 발을 둘 곳이 없게 될 것이다.(11)
라고 하셨으니 신은 오늘의 명분이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올바른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나이까?
측천무후는 폐하에게 있어서 처음에는 서모 이었는데 지금 또 황후가 되었으니 상을 치루는 예절에 있어서도 만약 측천무후가 하루아침에 죽기라도 한다면 신은 폐하께서 어머니 상을 당했다고 하실지 황후의 상을 당했다고 하실지 알지 못하겠나이다.
명분이 이와 같은 곳에까지 이르렀으니 백성들이 편안하게 손발을 둘 곳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공자님으로 하여금 오늘날에 다시 태어나시게 하여 바로잡으시도록 하고 싶을 정도이니 어찌 우연히 그런 것이겠습니까?
폐하께서 공자님의 말씀을 자주 따르시는지 어쩐지 알지 못하겠나이다.(12)
따르지 않으신다면 어쩔 수 없사오나 만약 공자님의 말씀을 따르시는 분이라면 지금까지 신이 올린 모든 말씀은 모두 공자님께서 지으신 책을 근거로 하는 것입니다.
『시경』,『서경』등 경전들은 모두 공자님과 그 제자들이 정리한 것인데 신이 일찍이 그 책들을 읽고 그 자취를 연구해본 바에 의하면 하나라는 매희로 인하여 망하였고, 은나라는 달기로 인하여 기울었으며, 혁혁한 종실을 자랑하던 주나라는 포사로 인하여 멸망하였나이다.
무릇 옛날에 여색으로 나라를 망하게 한 사람은, 걸왕, 주왕, 유왕, 여왕과 같은 자들이었는데, 그 때의 명분이 없었던 일에 관하여 듣지 못하였기로 오늘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하, 은, 주 삼대에서 상이나 서와 같은 학교를 세워 가르친 것은 모두 이른바 인륜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순임금의 덕을 찬양할 때면, 반드시 아황과 여영 두 왕비를 칭찬하게 되는 것이고 문왕의 교화를 칭찬할 때면 반드시 <물수리의 노래(13)>를 찬양하게 되는 것이니 순임금과 문왕의 다스림은 지극하고 지극하옵니다.
이와 같이 천하를 다스리는 일은 반드시 가정을 바르게 다스리는 법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아! 다스려지고 혼란스럽고, 흥하고 망하는 자취를 밝혀 상고해 볼 수 있는데 이른바 흥한 사람들은 가정을 올바로 다스리는 법에서부터 시작하였고 이른바 망한 사람들은 가정을 다스리는 도리를 잃어버린 데에서 시작하였으니 이 어찌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이 가정에서 시작되지 않는다고 하리오.
성인이 지은 경이나 현인이 지은 전에도 반드시 이와 같이 적혀있지 않사옵니까?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선택하여 따르도록 하고자 한다면 후세의 임금들이 이러한 바를 책에서 읽고 정녕 한심하다고 하지 않겠사옵니까?
하나라와 은나라가 쇠약해 진 것은 여융들이 재앙을 부채질하여 비록 명분을 범하는 데에까지는 이르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망하기에 이르기에 충분하였는데 하물며 폐하께서는 명분을 문란하게 만들 정도에 이르렀다면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조종들께서 몸에 갑옷을 입고 친히 화살과 돌을 맞아가며 억만년의 대업을 여셨는데 폐하의 대에 이르러 선왕께서 열어 놓으신 도를 지키지 못하시고 천하를 버리게 되었으니 하늘에 계시는 조종의 영령들이 과연 폐하를 올바른 자손이라고 말씀하시겠으며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대업을 제대로 이어 받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들은 공명정대하게 폐하께서 하신 일에 대하여 반드시 기록으로 적어서 남기게 될 것인데 폐하께서는 순임금과 문왕의 역사를 읽어 보시니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걸왕과 주왕의 역사는 읽어보니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오늘 일어난 일들은 기쁜 일이나 놀라운 일이나 구분 없이 모두 자세하게 기록되어 후세에 전하여 질 것이니, 후세 사람들이 지금 일어난 일들을 보고 지금 우리가 옛날에 있었던 일을 평가하는 것과 같이 할 터인데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사옵니까?
엎드려 원하노니 폐하께서는 이전 시대의 발자취를 자세히 살피시어 후세의 비웃음을 두려워하시고 결연히 이전에 저지른 잘못을 끊어 일식이나 월식이 일어나는 것처럼 군자가 세상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여 잘못을 고치신다면 백성들이 모두 우러러보지 않겠습니까?
삼강이 불꽃처럼 밝게 빛나고 예법과 음악은 아름답게 자리 잡을 것입니다.
순임금과 문왕의 다스림은 오직 홀로 아름다움을 독차지하는 것은 아니며 먼저 있었던 성인과 뒤에 오는 성인이 함께 하는 것이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저의 청원을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신은 참으로 만 번 죽어도 마땅한 죄인 줄을 알지만 어찌 소신의 한 몸을 아끼자고 삼강이 무너지는 것을 가만히 앉아서 보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신 아무개 삼가 절하고 머리를 조아립니다.
* 각주 ----------------------------
(1) 擬褚遂良諫立武氏爲后疏. 저수량(褚遂良)이 측천무후(則天武后)를 황후로 세우는 것이 부당함을 간언하는 것으로 가정한 모의(模擬) 상소문. 측천무후는 당나라 태종의 총애를 받은 후궁인데, 아들 고종이 황제가 되어서 황후로 삼았다. 측천무후는 병약한 고종을 이용하여 전권을 장악한 다음 당나라를 없애고 주나라(武周)를 세워 스스로 여황제가 되었다. 저수량은 고종이 측천무후를 황후로 삼는 것을 반대하다가 좌천되어 3년 만에 죽었다. 고종은 태종의 아들이므로 측천무후는 고종의 서모(庶母)이다. 아버지의 애첩을 아내로 삼는 패륜을 꾸지람하는 내용이다.
(2) 『시경』<대아 문왕 사제>의 “선왕들께 순종하시고, 신령들에게 원망함이 없으셨으며, 신령은 한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아내부터 바로 잡으시어, 형제자매에까지 미치시고, 여러 나라를 다스리셨도다.(惠于宗公神罔時怨神罔時恫刑于寡妻至于兄弟以御于家邦)”를 인용한 것이다.
(3) 『대학』<수기치인>의 “옛날부터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히려는 사람은 먼저 그 나라를 잘 다스려야 하며, 그 나라를 잘 다스리려는 사람은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해야 하며,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려는 사람은 먼저 그 몸을 바르게 닦아야 하며, 그 몸을 바르게 닦으려는 사람은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하며, 그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사람은 먼저 그 뜻을 정성되게 해야 하며, 그 뜻을 정성되게 하려는 사람은 먼저 그 앎에 이르게 해야 하나니, 앎에 이르게 됨은 사물을 구명함에 있다(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先治其國欲治其國者先齊其家欲齊其家者先修其身欲修其身者先正其心欲正其心者先誠其意欲誠其意者先致其知致知在格物物格而后知至知至而後意誠)”를 인용한 것이다.
(4) 사람들이 순임금을 덕이 높은 사람이라고 칭송하므로 요임금은 두 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순임금에게 시집보내어 사람됨을 지켜보게 했다. 순임금의 사람됨을 확인한 요임금은 사위인 순임금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5) 당나라 태조 이호(李虎, ?~551)를 말하는 것이다.
(6) 이른바 정관의 치(貞觀之治, 627년~649년)를 말하는 것이다.
(7) <소변(小弁)> :『시경』<소아 절남산지십(小雅節南山之什)>. 세상을 원망하는 내용의 시다. 맹자는 “<소변>에서 원망하는 내용은 어버이를 어버이로 여긴데서 나온 것이다.(小弁之怨親親也 : 『맹자』<고자하>)”라고 말했다.
(8) 『예기』<애공문>의 “공이 말했다. ‘과인에게 가르침이 있으시기를 원합니다만, 면복으로 친영하여 아내를 맞이하는 것은 너무 과중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니, 공자가 초연히 낯빛을 고치고 대답했다. ‘두 성씨가 좋음을 합하여 선대 임금의 뒤를 이어가며 천지와 종묘사직의 주인이 되는 일인데 임금께서는 어떻게 너무 과중하다고 말씀하십니까.’(公曰寡人願有言然冕而親迎不已重乎孔子愀然作色而對曰合二姓之好以繼先聖之後以爲天地宗廟社稷之主君何謂已重乎)”를 인용한 것이다.
(9) “그런 까닭에 혼인하는 월일을 기록하여 임금에게 보고하고, 몸을 단정히 가다듬고 귀신에게 고하며,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마을 사람들과 동료와 벗들을 불러서 잔치를 연다. 그것은 부부유별의 예를 중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故日月以告君齊戒以告鬼神爲酒食以召鄕黨僚友以厚其別也)”를 인용한 것이다.
(10) 『예기』<옥조>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아버지가 보시던 책을 읽을 수 없으니 아버지의 손때가 묻어 있기 때문이며,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어머니가 사용하시던 그릇으로 음식을 먹지 못하니 어머님이 입을 대고 잡수신 흔적과 그 기운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父沒而不能讀父之書手澤存焉爾母沒而杯圈不能飮焉口澤之氣存焉爾)”를 인용한 것이다.
(11) 『논어』<자로>의 “군자는 자세하게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개 모자라는 것같이 하는 것이다. 명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순하지 않게 되고, 말이 순하지 않으면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없게 되고,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면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게 되고,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정당하지 아니하고, 형벌이 정당하지 아니하면 백성이 손과 발을 둘 바를 모르게 된 것이다(君子於其所不知蓋闕如也名不正則言不順言不順則事不成事不成則禮樂不興禮樂不興則刑罰不中刑罰不中則民無所措手足)”를 인용한 것이다.
(12) 당나라 황제 고종(高宗)이 유교를 따르는지 알 수 없다는 말.
(13) 『시경』에서 <국풍 주남>의 <관저(關雎, 물수리가 우네)>를 인용한 것이다. “요조숙녀는 군자의 좋은 짝(窈窕淑女君子好逑)”이라는 구절로 유명한데『논어』에서 공자는 “화락하되 음란하지 않고, 슬퍼하되 감상에 빠지지 아니하였다(樂而不淫哀而不傷)”라고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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