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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되어버린 ‘불턱’] 해녀들이 장사를 하지 않던 예전에는 물질을 함께 하러 가는 동무들이 있었다. 물질하기 전에 같이 가자고 미리 약속을 하고 때가 되면 모였다. 물소주를 입고 들어가면 추워서 빨리 나오게 된다. 고무 옷이라고 별반 다르지는 않다. 그렇게 물질을 하고 뭍으로 나오면 모닥불을 피워놓고 함께 불을 쬐고는 했다. 제주도에서는 이런 곳을 ‘불턱’이라고 한다. ‘불을 피우는 곳’이라는 뜻인데, 해녀들의 삶은 모두 불턱에서 이루어진다. 대변항에도 해녀들이 모이는 불턱이 몇 군데 있었다. 불턱에 모일 때면 주전자에 물을 가득 담고, 쌀을 한 움큼 가지고 작업장으로 갔다. 모닥불 옆에 옹기종기 앉아 추위를 달래며, 주전자에 쌀을 넣고 불에 얹어 밥을 한다. 주전자에서 보글보글 밥을 끓여 서로 나누어 먹으며 오늘 작업은 얼마나 했는지, 누구 집에 어떤 걱정이 있는지 이야기를 했다. 내일 날씨는 어떨까, 내일은 또 어디로 가보자 이런 이야기가 오고가는 곳이 바로 불턱이었다. 그렇게 함께 모여 먹는 밥은 유난히도 맛있었다. 그런 순수한 시절이 지금도 문득 그리워진다. 장사를 하기 시작하면서 점포에서 손님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 되었다. 이제 특별히 필요하지 않으면 바다에 들어가지 않는 해녀가 많다. 물질보다 더 돈이 되는 장사를 쉽게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상꾼 언니들 7~8명 정도만이 여전히 바다를 지킨다. 동무가 없어진 말애씨는 늘 혼자 다닌다. 혼자 바다에 들어갈 때면 무서울 법도 한데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간이 크다고 말한다. 멍게나 담치 같은 것들을 채취하기 위해선 연화리까지 나가야 한다. 대변 등대에서 바다를 건너며 연화리까지 헤엄을 쳐서 간다. 그렇게 건너가서 홍합을 따고 그것들을 가지고 다시 돌아온다. 혼자 물질을 하다 보면 무서운 일들이 참 많다. 파도나 물살처럼 자연 때문에 생긴 일은 미리 대비라도 할 수 있지만 인간이 만드는 위험은 언제 나올지 몰라 그저 조마조마하다. 가장 무서운 일은 잠수한 상태에서 배를 만나는 것. 배가 바다 위로 지나가면 일반 파도와는 전혀 다르다. 사람들이 간이 크다고 그렇게 말해대는 말애씨지만 그때만큼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배 뒤에 있는 프로펠러가 돌아가면서 물살을 완전히 휘저어 놓기 때문에, 자칫 기회를 놓쳐 몸이 빨려 들어간다면 그 자리에서 끝이다. 말애씨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지 고개를 내젓는다. 배를 만나서 고함을 지르기도 여러 번 했지만 여전히 혼자 다닌다. 대신 지금은 매립지 주변 바다로 장소를 옮겼다. 물속에 세워놓은 새로운 옹벽 아래에는 신기하게 무언가가 달려 있다. 해물들이 새로운 시멘트 냄새를 좋아하는 것인지, 유난히 새로운 구조물 아래에 생물들이 많다. 언젠가 텔레비전을 보니 광안 대교가 생기면서 그 아래에 전복같이 비싼 해산물이 엄청나게 많아져 그곳 해녀들이 횡재를 했다는 기사를 보기도 했다. 대변항 주변에는 최근에 새로 만들어진 옹벽들이 꽤 많아서 그 아래로 내려가 보면 멍게, 해삼, 성게 같은 생물을 제법 많이 딸 수 있다. 올 여름에는 계속 그곳에서 작업을 했다. 물론 배들이 많이 다녀서 위험하지만 어쩌겠는가. 돈이 거기 있는데.
하루 종일 물질을 하고 나오면 싱싱한 해산물을 얼른 팔아야 그나마 제 값을 받을 수 있다. 연화리나 서암 주변의 언니들은 기장 시장에서 직접 팔기 위해 오후가 되면 해산물을 가지고 시장으로 많이 나간다. 시장에 앉아서 소매로 직접 팔면 돈을 더 많이 벌수 있다. 성게나 홍합도 접시에 한 움큼 깔아놓고 만원씩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말애씨는 그렇게 팔지 않는다. 마을에서 장사하는 점포에 그대로 넘겨준다. 한 움큼씩 팔수 있는 물건이지만 ‘㎏로 달아서’ 넘겨준다. 크게 벌지 않아도 그렇게 먹고 살 수 있으면 됐다고 생각한다. 시장에 나가려면 큰 짐을 들고 택시를 타거나 버스를 타야 되고, 시장에 하루 종일 앉아 “사이소, 사이소” 큰 소리를 쳐야 하는 것도 평생 해보지 않아 모른다. 이래저래 따지면 집 앞 횟집에 팔아버리는 것이 속 편하다. 더운 여름에는 고무 옷 속으로 물이 좀 스며들어야 시원하다. 겨울에는 그래도 따뜻하게 입어본다. 어차피 두꺼우면 움직이기 힘들어 따뜻하게 입는다 해도 부드러운 내복을 입는 정도이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그렇게 계절을 느끼며 할 수 있는 만큼 물질을 하고 싶다. 그렇게 잡은 것들은 싱싱한 먹을거리를 찾아 대변항까지 온 사람들에게 맛있게 대접할 수 있도록 가게에 팔면 그만이다. 적게 벌어 적게 쓰는 인생이면 족하다. 어차피 몸만 움직여 자연이 내어준 것들 가져오는 것인데 욕심 부리면 무엇 하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