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초 최광선
나는 어린시절 80호정도가 사는 화전민 촌에서 살았습니다학교가 너무 멀어서 학교에 갈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늘 논 밭으로 뛰어다니면서 아무 생각없이 그저 놀기만 하면서 성장했습니다 나는 하도 작난이 심해서 수류탄 껍데기 포탄 파편 탄피들을 주머니에 넣고 잠이 들면 어머니는 내 주머니에서 그것들을 꺼내기에 바빴다고 합니다
그런 내가 진짜 수류탄을 가지고 놀다가 사고가 나면 어쩔가 걱정이 돼서 아버지께서 동네 아주 큰형들이 다니는 한문서당에 넣었습니다 공부가 문제가 아니라 뛰어다니다 폭팔물 장난으로 크게 다칠까 그게 문제였던 것입니다
나는 물론 천자문 부터 시작 했는데 옆에 있던 나이 많 조카는 명심보감세줄 하루 종일 외워도 못 외우는 것을 보고 놀리기도 하면서 천자문을 떼고 책거리 떡을 먹고는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동몽선습 계몽편 명심 보감을 외우면서 2년 동안의 공부를 맞치고 두살이나 늦게 국민학교에 들어가고 보니 한문 공부와 학교 공부는 판이하게 다르지만 그저 뛰노는 것만 좋아해서 군 대항 체육 대회에 축구 선수로 뛰기도 했는 데 담임선생님과도 맞먹을 정도 였습니다
세월이 지나 어느덧 6학년이 된 여름 큰 장마가 져서 학교를 두어달 동안 전 학생들이 학교에 갈 수없게 되자 고학년 회의를 열어 공회당에서 학교를 개설 하여 저학년을 가르치니 동네 어른들로 부터 큰 칭찬을 받았습니다
물론 아이들도 잘 따랐지만 선생님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함께 노래도 부르고 소풍도 가고 보물 찾기도 하고 함께 요리도 밥도 해 먹고 날씨가 더운 날은 족대를 빌려 개울에서 물고기도 잡아 천렵도 했습니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지금 도 그일을 생각하면 기분 좋습니다
그리고 지난세월 거기서 조계종 총무원장도 나오고 목사님 공군대령 전남대 국문학과 교수 그중에 화천군 의회 삼선의원인 저도 있습니다
그중에 제일 에피피소 드가 많은 나의 조카 김익두 교수얘기를 하겠습니다
김익두교수는 우리 외삼촌의 손자로 외삼촌이 수몰지구 보상을 받고 전라도 사교에 심취해 있어서 정읍으로 이사가게 되엇는데 거기서 김교수는 학교에서 왕따와 폭력에 씨달리다가 학교를 자퇴하고 주먹쓰는 아이들과 힘을 합해 서력전하다가 철이 들어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전남대 국문과로 입학하고 그길로 교수의 길까지 오른 인물로 9월에 정년 퇴직하고 몇지인과 우리집에와서 막걸리 한잔 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 내가 춘농2학년때 외가집에 놀러갔는데 그는 아직 놀고 있을때 많은 책 이야기와 문학을 얘기 해 주어서 영향을 받아 국문과에 갔다고 하는 말을 듣고 깜작 놀랐습니다
나머지 나와 세친구 이야기 그후 춘천댐 수몰로 용섭. 재윤 .나와함께 세친구는 한문공부를 1년 더하고 나느는중학교에 진학하고 두친군 고향에 남아서 농사지으며 용섭은 이장이 되고 재윤은 국미학교 가일 분교에서 소사로 취직하여 잘 살고 이다가 용섭은 도시로 이주하여 청소부하다 사고를 당해 사망하고 재윤도 착실하게 돈뫃아 잘살다가 불의의 사고로 다리에서 낙상하여 사망하므로 절친 두명이 갑자기사라지니 추억을 말할수 없어 화천문학지에 씁니다
그 두친구는 국민학교시절 내 신발을 누가 가져가는 바람에 한쪽 신만 남게 돼서 한쪽은 맨발 한쪽은 신발로 걸을때 서로 신발을 교대 하며서 다닌 그 추억과 재윤은 왼쪽골짝 나는 오른쪽 골짝에 랄았는데 삼거리 지점에서 만나면 좋고 그러지않으면 먼저간 사람이 막 대기를 꽂고 가면 늦은 사람이 뛰어서 합세하여 학교 가곤했던일이 지금도 생생하고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