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칙 「찬미받으소서」 해설 (33)
○ 85항. 우리는 “성경에 담겨 있는 계시 외에도, 태양이 빛나고 밤이 찾아오는 것에서도 하느님의 계시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계시에 주의를 기울이면, 인간은 다른 피조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나는 세상을 표현하면서 나 자신을 표현합니다. 나는 세상의 신성함을 해석하면서 나 자신의 신성함을 탐구합니다.”(폴 리쾨르)
☞ 교황님은 개신교 철학자인 폴 리쾨르(1913~2005)의 말을 인용하십니다. 리쾨르는 ‘해석학’(Hermeneutics) 분야에서 유명한데요, 해석학은 의미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리쾨르는 인간과 세계가 서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보았고, 인간이 세상을 해석하고 이해하면서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고 보았습니다.
교황님께서 인용하신 리쾨르의 말은, 인간과 세상이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 세상을 표현하는 방식이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고, 세상의 신성함을 해석해내는 과정이 곧 자신의 신성함을 탐구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자신을 바라봅니다.
폴 리쾨르
출처: Paul Ricœur : bio, articles, citations | Philosophie magazine
○ 86항. 우주 전체와 그 다양한 관계들은 하느님의 무한한 풍요로움을 가장 잘 보여 줍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지혜롭게도 다음과 같이 강조했습니다. 다양성과 다채로움은 “최초의 행위자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며, 최초의 행위자(하느님)께서는 “각 개체의 부족한 점이 다른 것들에 의해 보완됨으로써 하느님의 선하심이 드러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선하심은 “단 하나의 피조물에 의해서는 적절히 표현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만 지혜로우신 것이 아니라 교황님도 무척 지혜로우신데요, 85항에서 개신교 철학자인 폴 리쾨르의 말씀을 인용하신 직후, 가톨릭 신학의 최고봉이신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성인을 인용하심으로서 불필요한 오해를 물리치십니다.
토마스 성인은 “최초의 행위자”(primo agente)라는 말을 사용하시는데요, 이는 모든 존재, 운동, 변화의 궁극적 원인으로 하느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토마스 성인에 의하면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운동은 다른 원인을 필요로 합니다. 예를 들어, 물이 끓으려면 불이 필요합니다. 불이 계속 타기 위해서는 장작이 필요합니다. 장작은 불로 변화될 에너지를 갖고 있는데, 이 에너지는 나무가 태양에너지를 자신 안에 축적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태양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토마스 성인은 이렇게 우주의 모든 운동의 원인을 추적해가면, 결국 모든 운동의 근원이 되는 ‘최초의 행위자’에게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라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피조물이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가운데 당신의 선하심이 드러나도록 섭리하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인간만이 하느님의 선하심을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교황님은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을 인용하시며 “하느님의 선하심은 단 하나의 피조물에 의해서는 적절히 표현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
출처: The Natural Law Theory of Thomas Aquinas - Public Discour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