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관 시인이 본 53선 지식 23. 31. 홍범도 의병 장군은 재가승
홍범도 의병 장군은 재가승이었네!
조선을 통치하는 정신이 유학 중심인데
유학이 무너지고 신 불교를 수용하려는 시기
홍범도는 고종 5년 1868년 8월 28일
평안도 평양에서 태어나 성장하면서
조선 유생들이 잔인하게 성균관을 중심으로
인간 평등적 삶을 망각한 자들의 세상이었네!
홍범도는 금강산 신계사에 1872년경에 출가하여
금강산에 대한 역사를 학습하면서 성장했는데
신계사에 거주하는 승려로부터 조선의 역사를
학습하고 조선 민족에 대한 역사를 알고
일본이 조선을 점령했던 임진왜란에 대하여
신계사 스님으로부터 학습했다네
출가 수행자에게도 임진왜란 시기에
일본군에 저항했던 서산 사명 처영 영규
스님들에 대한 조선 전쟁에 참여했던 역사를
홍범도는 깨달은 이후에 금강산에 거주하는 비구니와
결혼하여 일본에 대한 침략을 막으려고 했네!
홍범도는 금강산에서 부인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와
아들을 낳았다는 말에 대하여 홍범도는 미소를 보였다
홍범도는 참으로 행복한 날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일본이 조선에 대하여 허약한 나라로 인식한 이후에
홍범도는 금강산에서 익히 동물 사냥에 연습을
일본군에 저항하는 운동을 전개하려는 의병조직
홍범도는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의병 활동에 참여
일본군이 조선인들을 학살할 시기에 나타났다
조선에서 일군을 항해 저항하는 의병들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시기에 그 정신으로
일본이 명성황후시해사건을 자행한 사건에 대하여
조선인들이 분노하는 조선인들은 전국적 조직이었다
홍범도는 명성황후시해사건에 대하여 분노하고
전국적으로 일어난 의병이었다
일본이 저항한 의미 사변을
보고만 있었다고 한다면
홍범도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고
부인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사냥이나 하면서
아들 낳고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인데
‘홍범도는 금강산에서 사냥하던 그 훈련으로
특등 사수였다는 사살을 일본군들은 모르고 있었다
홍범도는 의병들을 모아 일본군에 저항했다
일본군에 저항하고 있는 홍범도에게는 국권 상실 시기에
만주 지역에 이주하여 독립군 양성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1919년에는 간도 지역에서 독립군 사령관이 되어
김좌진 장군과 함께 부총재의 자격을 획득하고
1920년 일본군이 봉오동을 공격한 지 3일간
봉오동 전투에서 승리하고 청산리 대첩에서
일본군을 대파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졌다,
봉오동 청산리 전투에서 승리한 홍법도 장군에 대하여
일본군은 무자비하게 조선인들을 주살하기 시각했으며
조선인들은 수천여명이 일본군에 희생당하는 시기에
흥범도를 비롯하여 조선 독립군들은 더 이상
북간도에서 무장 투쟁에 불가능함을 느끼어
1921년에 북간도에서 러시아로 거주처를
홍범도를 비롯하여 조선독립군들이 이주
러시아에서 조선의병활동을 할 수 있기에
홍범도 장군은 러시아인이 되었다
러시아인으로 변신한 홍법도 의병 대장을 비롯한
조선 의병들은 러시아 공산당원이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라
조선에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러시아 공산당원이 된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당시 러시아는 미국과 같은 동맹국이었고
미국에서 공산당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조선에 침략한 일본군을 찬양하고 있는
일진회 회원들의 후예들을 보고 있다면
그들의 가문에 대하여 재산을 몰수할 수 있나
홍범도 장군은 조선 독립운동을 전개하려고
러시아 국경으로 이주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홍범도 장군에 대하여 러시아에서도
조선인이라는 이름으로 소비에트건설에
참여한 슬픔을 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나라 없는 서러움을 당한 홍범도 장군
2023년9월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