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류동학 원장] 전두환은 5공화국 대통령으로 재임 하던 중 대기업들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김영삼 문민정부시절인 1997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2205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현재 미납 추징금만 1673억 원이다. 그러나 ‘전 재산이 29만 원 밖에 없다’고 버티다가 결국 검찰이 칼을 빼들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와 자녀들은 물론 친인척과 지인들의 재산까지 샅샅이 살펴보기 위해 서울중앙지검 김형준 외사부장을 비롯한 8명의 검사와 20여 명의 수사관, 대검찰청의 계좌추적, 회계분석 전문가로 구성된 ‘전두환 일가 미납 추징금 특별집행팀’을 꾸렸다.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의 자녀들과 형 전기환 씨 등 일가는 물론 측근의 집과 관련 회사까지 모두 31곳을 압수수색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전 중정부장에 의해 시해된 10·26사건 이후에 보안사령관이자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역사의 무대에 전면적으로 등장한 전두환은 이후 약 35년 간 한국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다닌 인물이다. 전두환을 자평명리학으로 분석하면서 그의 족적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는 완산 전씨(完山 全氏)다. 완산은 현재 전주를 말한다. 2000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全(온절할 전)을 사용하는 온전전씨는 73본(1985년에는 66본), 15만3208가구, 49만3419명으로 21위며 전체의 문헌에 178본이 기록돼 있으나 이중 18본을 제외한 나머지 본관은 시조 및 유래는 전해오지 않는다.
전씨의 도시조(都始祖)는 전섭(全攝)이다. 그는 백제 개국공신으로 고구려 동명성왕 주몽의 셋째 아들 온조가 어머니 소서노, 형 비류와 함께 동명성왕이 유리왕을 후계자로 삼는데 반발해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를 개국할 때 오간, 마려, 을음, 해루, 흘우, 한세기, 곽충, 범창, 조성 등과 함께 백제 개국에 공을 세워 십제공신(十濟功臣)의 한사람으로 계유년(BC 18년)에 환성군(歡城君, 환성은 천안의 고호)에 봉해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본관인 완산전씨의 시조는 전집(全潗)으로 도시조 전섭의 30세손이다. 그는 고려 공민왕 때 중랑장으로 두 차례에 걸쳐 홍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완산백에 봉해졌다. 그 후 문하시중평장사에 추증됐다. 중랑장은 고려 중앙군인 2군6위(二軍六衛)를 구성하는 단위부대로 1000명 단위의 장군(將軍:정4품)이 지휘하는 영(領)이 있었는데, 중랑장은 각 영의 정5품직의 부지휘관이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정선 전씨에서 분관해 완산을 본관으로 해서 대를 계승하고 있다. 한편 전주 전씨와 완산 전씨는 본관을 다르게 사용할 뿐 뿌리가 같다. 2000년 현재 전주 전씨는 1만6434명으로 완산 전씨 7568명에 비해 많다. 이들을 모두 합치면 2만4002명에 이른다.
역사상 전씨[全氏]가 배출한 인물로는 봉군 35명, 정승급 12명, 판서급 43명, 참판 4명, 대장 7명 등인데, 대부분 고려때 인물이다. 조선조에서 전씨는 조선조에서 주로 무신을 많이 배출했으며, 1894년 갑오농민혁명의 지도자 녹두장군 전봉준(全琫準)이 유명하고 현대에 와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배출했다. 전두환 전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정화사업으로 황토현 기념관·전봉준 장군의 동상 등을 세우도록 했다.
전남 영광과 접한 무장현 봉기 장소에 있는 기념비에는 갑오농민혁명 당시 포고문이 새겨져 있다. “인민은 나라의 근본이요, 그 근본이 깎이면 나라가 잔약해진다. 보국안민의 방책은 생각지 않고 바깥으로는 고향집만 꾸미고 오직 제 혼자 온전할 방법에만 힘쓰면서 녹봉과 벼슬자리만 도둑질하니 어찌 다스려지리오”라는 문구를 보면서 민중의 지도자 전봉준이 민중을 탄압한 전두환일가에게 훈계하는 글귀처럼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류동학 원장 프로필
△혜명동양학아카데미 원장(현) △대전대 철학과 외래교수(현)
△전 안동정보대학 교수 △고려대 한국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대전대 철학과 박사과정 △단국대 법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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