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인혈(天刃血) 021(제1권 21)/1021
8장 울어라 생사도
☆울어라 생사도(1)
갑작스런 *적무강의 살기에 *흑기대의 얼굴에 곤혹스런 빛이 떠올라 있었다.
그들이 받은 명령은 무공을 모르는 철방의 사람들을 죽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그들이 무공을 익혔다는 이야기는 전혀 듣지 못했다.
때문에 지금의 사태는 무척이나 뜻밖의 것이었다.
*사만호가 *적무강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네 녀석, 무공을 숨기고 있었구나. 역시 *문상이 괜히 네 녀석들을 처리하라는 것이 아니었어.”
사만호는 적무강이 무언가 목적이 있어 십자성에 침투한 간자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일반 양민을 죽인다는 한줄기 죄책감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이 녀석을 잡아라. 죽지만 않으면 된다. 나머지 놈들의 행방은 그 후에 알아낸다.”
사만호가 부하들에게 죽음의 명령을 내렸다.
그에 흑기대가 흉흉한 눈빛을 하고 적무강을 향해 다가왔다.
적무강은 자신을 향해 포위망을 좁혀오는 흑기대를 보면서도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아니, 한 가지 변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의 눈빛이었다.
너무나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한줄기 혈선이 그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적무강이 살심을 품었을 때 나타나는 그만의 독특한 현상이었다.
“죽여야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주마.”
사람을 죽이는 것은 싫다.
그러나 망설임으로 인해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한다면 평생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때문에 적무강은 단호히 마음을 먹었다.
스스슥!
흑기대가 말을 몰고 적무강을 향해 다가왔다.
그러나 우거진 수풀 덕분에 달려오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적무강이 원하던 바였다.
“제발 살려달라고 빌게 만들어주마.”
“크하핫! 이 창의 첫 번째 제물이 네가 되다니 불쌍하구나.”
서너 명의 흑기대가 수풀사이로 거칠게 말을 몰며 적무강에게 맨 먼저 접근해왔다.
그들의 손에는 하가철방에서 만든 창이 섬뜩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마음껏 울어라.”
적무강의 허리가 비틀렸다.
동시에 폭발적인 기운이 적무강의 손으로 몰려들었다.
웅웅웅-!
*생사도가 도명(刀鳴)을 터트렸다.
부르르 몸을 떠는 생사도의 모습은 진짜 흐느껴 우는 것 같았다.
슈우우-!
“····생사도여!”
순간 적무강의 손에서 생사도가 횡으로 휘둘러졌다.
위-이잉!
생사도에서 일어난 무형의 기운이 제일 앞장서 달려오던 흑기대를 향해 덮쳐갔다.
“뭐····뭐냐?”
“이런!”
흑기대들은 갑작스럽게 날아오는 기운에 놀라며 급히 자신들의 창을 들었다.
그러나 잠시의 시간이 지나도 그 어떤 이상도 보이지 않았다.
그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졌던 선두의 흑기대가 화를 냈다.
“이 녀석이 감히······.”
투두둑!
그때 등 뒤에서 들리는 무언가 터져 나가는 소리.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니 그들의 뒤에 있던 나무들이 사선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베어진 단면은 마치 유리처럼 반질거렸다.
“용서 따위는 없다.”
그때 적무강이 그들을 지나쳐가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에게 한말이 아니었다.
바로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이···녀··석!”
“아···니?”
갑자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어 불같이 올라오는 뇌리를 하얗게 태워버릴 것만 같은 통증.
가슴을 내려다보니 어느새 한줄기 혈흔이 횡으로 길게 번지고 있었다.
“언·····제? 느····낌도 없었는데.”
남자들이 황당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들이 중얼거린 순간에도 혈선은 점점 뚜렷해져 몸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투두둑!
적무강의 등 뒤로 그들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이것이 바로 *생사구⑨류도의 *일①초식인 *단천혈(斷天血)의 위력이었다.
이제까지 제대로 내력을 실어본적이 없었는데,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본래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드러난 생사구류도의 위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
충격적인 모습에 숲속이 조용해졌다.
그 누구도 적무강이 이런 무공을 숨기고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단 일도에 흑기대가 대항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몸이 두 쪽이 난 것은 그야말로 심장이 떨어질 듯한 충격이었다.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자구. 아직 생사도가 울고 있거든.”
파-앙!
그때 갑자기 공기가 터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적무강의 몸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디냐?”
갑작스런 사태에 놀라면서도 사만호가 적무강의 궤적을 찾아 눈을 움직였다.
그러나 단련된 그의 안력으로도 적무강의 움직임은 잡아낼 수 없었다.
쉬이익!
적무강이 다시 나타난 곳은 흑기대 서넛이 몰려 있는 위쪽의 공간이었다.
흑기대의 눈에 보인 것은 우습게도 생사도에서 요동치고 있는 혈옥의 모습이었다.
눈부시도록 붉은 모습, 그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이 살아서 한 마지막 생각이었다.
섬뜩한 도기가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투두둑!
털썩!
흑기대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여덟 걸음을 지배하는 보법, *팔⑧황보의 위력이었다.
여덟 걸음은 적무강의 공간이다.
*생사구류도를 펼치기 위한 최적의 공간, 그것이 바로 적무강의 공간이었다.
때문에 그의 여덟 걸음 안에 있는 자는 그 누구라 할지라도 감히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쉬이익! 피릿!
어지간한 무기는 침입을 하지 못한다는 경갑주도 소용없었다.
적무강의 생사도는 자신에게 거치적거리는 모든 것을 베어 넘겼다.
그때마다 혈옥이 출렁이며 붉은 빛을 반사시켰다.
“크아악!”
“으악!”
적무강이 움직일 때마다 반드시 흑기대가 피를 뿌리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온통 나무로 둘러싸인 공간, 적무강이 이곳으로 유인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적무강은 만약을 대비해 이곳으로 움직였다.
이렇게 걸리는 것이 많은 공간에서 말을 타고 공격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때문에 흑기대는 자신들의 특기를 살리지도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사만호가 소리쳤다.
“모두 말에서 내려 대응해라.”
그의 명령에 이제까지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허둥거리던 흑기대들이 서둘러 말에서 내렸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적무강의 눈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숲속에서 창을 주 무기로 쓰는 부대를 보낸 것은 정말 멍청한 짓이다.’
그의 눈에는 흑기대가 이미 죽은 시체로 보였다.
숲속에 말을 타고 창을 휘두르면서 들어온 시점부터 이미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것이다.
틱틱!
역시 적무강의 예상대로 기다란 창은 나뭇가지와 넝쿨에 걸려 별 쓸모가 없었다.
제 아무리 좋은 무기를 주면 무엇 하는가?
제대로 활용을 하지 못하는데.
생전 처음 하는 실전이었지만, 생전 처음 하는 살인이었지만 적무강은 망설이지 않았다.
한 번의 망설임이, 한 번의 방심이 얼마나 큰 후회를 불러오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야앗! 죽어라, 이놈!”
“감히 철방의 대장장이 따위가······.”
파파팍!
거치적거리는 나뭇가지에 몸이 걸리면서도 흑기대가 억지로 초식을 펼쳤다.
그러자 마치 검기와도 같은 기운이 창에서 일어나며 주위의 나뭇가지들이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나뭇조각이 허공으로 날리고 나뭇잎이 시야를 가렸다.
그러나 흑기대는 그에 상관하지 않고, 계속해서 창을 휘둘렀다.
창을 휘두르는데 방해되는 모든 것을 부숴버릴 듯이 말이다.
순간 적무강의 눈이 빛났다.
어지럽게 날리는 창기도, 칼날 같은 바람도 겁이 나지 않았다.
그는 마치 바람 속을 노닐듯이 걸음을 옮기며 *생사도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출~렁!
생사도의 혈옥이 요동치는 듯 하더니 갑자기 도기를 폭출해 냈다.
예리하게 정련된 도기는 난무하는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뚫고 흑기대를 덮쳤다.
퓨퓨퓩!
무언가 꿰뚫리는 듯한 소리가 숲속에 울려 퍼졌다.
이번엔 비명조차 없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들의 가슴과 이마에서는 한 송이 연꽃처럼 피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혈수련(血水蓮).
한줄기 붉은 연꽃이 피어나니 살아있는 모든 것이 핏물에 잠길 것이다.
그것이 생사구류도의 *이②초식인 혈수련을 뜻하는 말이었다.
적무강은 그렇게 죽음을 부르는 붉은 연꽃을 연신 펼쳐냈다.
그에 흑기대는 변변히 대항 한번 하지 못하고 차가운 숲속에 몸을 누였다.
“으···으! 이건 꿈이야. 이건······ 악···몽이야.”
*사만호가 벌벌 떨며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곳에 올 때만 해도 그저 여흥을 즐기러 온다고 생각했다.
상대라고 해봐야 기껏 철방의 대장장이들뿐, 도무지 그들이 동원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뒤처리를 깔끔하게 하라는 의미로 알아들었다.
그런데 눈앞에서 벌어지는 지옥 같은 상황은 무엇이란 말인가?
저 악마 같은 녀석이 도를 휘두를 때마다 그의 부하들이 하나씩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있었다.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그는 지형을 이용할 줄 알았고, 자신들은 가진 무기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평상시에 적의 무기를 훌륭히 막아주던 경갑주도 지금 이 순간에는 움직임을 둔화시키는 짐에 불과할 뿐이었다.
“어···어디서 저런 놈이 튀어 나왔단 말인가?”
그가 보기에 적무강은 악마나 다름없었다.
어찌 저리 순하되 순한 얼굴로 저렇게 무지막지한 살수를 쓸 수 있단 말인가?
흑기대는 정예였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덕분에 적무강은 생사구류도 중 단 두 초식만 적절히 섞어 쓰면서 그들을 몰아갔다.
‘한 놈이라도 살려 보내면 안 된다.’
하나라도 살아나가서 이곳의 사정을 알리게 된다면 자신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그것은 적무강이 원하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때문에 그의 손속에는 결코 자비가 없었다.
웅 웅 웅!
생사도의 혈조를 타고 피가 혈옥으로 흘러들었다.
피는 넘쳐흐르고 극히 일부만 혈옥에 고였다.
생사도가 휘둘러질 때마다 혈옥이 마치 악마의 눈동자처럼 번뜩였다.
생사도의 울음소리가 마치 귀신의 호곡성처럼 들렸다.
그것이 적들의 심령을 뒤흔들었다.
살아남은 흑기대의 눈에 공포의 빛이 어렸다.
그들의 의지는 창을 들고 대항하려 했지만 그들의 본능은 어서 도망가라고 속삭인다.
어서 저자로부터 멀어지라고, 저자는 결코 네가 대항할 수 없는 자라고.
“으으·····!”
결국 누군가 뒷걸음을 쳤다.
그러자 살아남은 몇 명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 순간 적무강의 눈이 번뜩였다.
만약 하나라도 도망가 이 사실을 알린다면 그의 계획이 틀어지기 때문이다.
쉬익!
적무강이 그들을 따라 몸을 날리며 생사도를 휘둘렀다.
그러자 생사도가 공기와 마찰을 일으키며 마치 늑대의 포효와 같은 소리를 발산해냈다.
캬우우우-!
퍼버벅!
순간 도망가던 흑기대원들은 마치 늑대가 자신의 뒷덜미를 물어뜯을 것만 같은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의 몸에서는 늑대가 뜯은 것과 같은 상처가 팔다리 구별할 것 없이 온몸에 생겨났다.
“크흐흑!”
“비···러··머글!”
그들이 온몸에 피를 흘리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나뒹구는 그들의 몸에는 처참하게 으깨진 상처가 보였다.
이것이 바로 *생사구⑨류도의 *삼③초식인 지옥랑(地獄狼)의 끔직한 위력이었다.
지옥랑에 당한 자는 마치 수십, 수백 마리의 늑대에 의해 살점이 뜯긴 것만 같은 상처를 입고 처참한 고통 속에서 죽어야 했다.
순식간에 장내는 평정되었다.
두발로 서 있는 사람은 오직 적무강과 사만호 뿐, 그나마 사만호는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적무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무강이 그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사만호가 망연히 중얼거렸다.
“너··· 넌 도대체 누구냐?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나? 너희들이 죽이려고 했던 하가철방의 장인이다.”
“거···거짓말 하지 마라. 어떻게 일개 장인이 이런 무공을 익힐 수 있느냔 말이다. 넌 누구냐?”
사만호의 마지막 말은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그러나 적무강은 단호히 말했다.
“난 장인이지. 그리고 너희들이 적으로 삼은 남자야. 나는 원치 않았지만 너희들이 그렇게 만들었지. 내가 말했잖아. 몸서리치게 후회할 거라고.”
말과 함께 적무강이 *생사도를 집어넣고 대신 *철죽을 꺼내 들었다.
“이젠 네가 그 대가를 치러야 될 거야. 그리고 너도······.”
적무강이 철죽을 들어 나무 위 한쪽을 향했다.
그러자 섬뜩한 파장이 숲속으로 번져 나갔다
(우각 지음, 고향설 추천, 연곡 rema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