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례성 가는 길
나는 백제의 후손이다 라고 말한다면, 21세기 최첨단 시대에서 무슨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라는 비웃음을 살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반도 지형상 충청도에서 천안을 중시하고 있는 나의 관점으로 볼 때 백제 시대를 소환케 하는 위례성이 이 지역 지명으로 소재한다는 사실은 호기심을 발동하기에 충분하다.
이미 3년 전에,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을 지나 찾아간 곳이 북면 방향이었고 구불구불 산길을 오르다 보니 고갯길의 짧은 터널 입구에 작은 주차장이 보이고 위례산 안내도 보였다. 그러나 안내표시의 무성의로 인하여 반대쪽 부소산을 향하게 됨으로서 위례성 답사는 실패한 기억이 있다.
그 이후에도 위례성에 대한 궁금증으로 입장면 방향을 지날 때마다 가고 싶은 욕구가 항시 살아 있었는데, 드디어 오늘 재차 도전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부소산이 고개를 도착점으로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재차 답사의 실행은 상당한 고민도 있었다. 지난 여름에도 도전하고 싶었으나 무더위가 걱정되었으며 그보다 유명 코스는 아니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무성한 풀과 나무줄기도 무시할 수 없다는 상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10월 초순이기 때문에 시도할 만하다는 결론에 따라 무조건 내비게이션에 의존하여 도착지점에 주차하였는데 지난 3년 전의 장소와 같다는 기억이 떠오른다. 금북정맥으로 불리는 부소산이 고갯길에서 하차하니 싱그러운 산바람이 재방문을 환영한다.
우선, 위례산이라는 표시판부터 확인했는데 분명히 화살 표시가 있고 그 방향대로 산행을 시작하였다. 다시 3년 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중간 쯤 올라간 위치에서 진행 방향은 부소산이고 위례산은 아래 방향으로 표시가 나타났던 것이다. 당시 점점 불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오가는 사람이 뜸하니 뾰죽한 방법도 없다. 같이 동행한 아내의 표정이 싸늘하였다. “우리 나이 70이 코 앞인데 어디로 가나요?” 라고 짜증 낼 기세에서 중도포기 하산함으로서 그날의 부부간 위기는 모면한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또다시 재도전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아내에게는 앞으로 술을 끊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나의 포기할 수 없는 백제후손 열기의 호기심을 다시 발동한 것이다. 위례산으로 가는 화살표시를 또 한 번 확인하고 발길을 옮겨간다. 아직은 단풍이 시작단계라서 그런지 나뭇잎들이 푸릇푸릇 자태를 유지하며 한여름 싱싱함을 지키려는 듯 미련을 갖고 있다.
오를수록 등산길에는 낙엽들이 부스럭거리고 산밤나무 밤송이들도 등산화 바닥에 밟힌다. 문득 나무 위를 바라보니 청설모 한 마리가 앞발을 손처럼 비비면서 마주보고 말을 건넨다. “밤송이를 더 꼭꼭 밟아 주세요 알맹이가 튀어 나오도록...” 밤송이 가시가 부담스러워 하는 부탁일 것이다.
안내표시를 자세히 읽어보니 이 산줄기는 금북정맥에 해당하고 성거산과 태조산으로 이어지면서 최종 서해의 태안 안면도에서 끝을 맺는다고 한다.
낙엽에 미끌어질까 조심조심 오르는데 나무숲 사이에서 가지를 두드리는 듯 소리가 귀를 긴장시킨다, 시선을 집중해보니 머리끝 빨간색 댕기와 목에 하얀색 줄이 보이는 딱따구리가 한 마리가 우리의 산행을 경계하면서 나무를 찍어대고 있다. “산길은 위험하니 조심하세요” 라고 말하는 경고로도 들린다.
가을 산길의 낙엽은 갈색이 맞는데 길바닥에 푸른색 낙엽도 종종 보인다. 아직 단풍이 덜 들었지만 성급한 나뭇잎들이 덩달아서 떨어진 듯하고 그중 이름을 알 수 없는 가느다란 나뭇가지 작은 잎들이 무슨 일인지 길 위에 우수수 떨어져 있기도 하다. 자연의 수많은 현상을 누가 모두 설명하리오. 중간 지점에 이르자 이제는 길옆에 조용하게 자리를 잡은 돌멩이 탑들이 수행자처럼 가부좌를 틀고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진안 마이산 탑사의 돌탑들을 축소해 쌓은 것처럼 그 정성과 집중이 상당한 기술로 보이지만 누가 언제 무슨 이유로 쌓았는지 알 수가 없다. 스님일까 도를 닦는 사람일까 또 아니면 예술가일까. 돌멩이 탑은 심심치 않게 간간이 나타나 말없이 존재를 알리려 한다.
등산길은 험하지 않고 비교적 잘 다듬어져 있다. 시민들이 자주 찾는 명소는 아니라고 생각은 들지만 금북정맥이라는 상징성이 있어서인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산악회 리본들이 외지에서 다녀간 흔적들을 남기고 있다.
전국 유명산을 다니다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풍경으로서 묘지들도 있다. 이곳 역시 등산길 옆으로 잘 다듬어진 묘역이 보인다. 도대체 어느 집안에서 이 산중 깊숙이 찾아와서 어렵게 묘역을 만드는 것일까. 잠시 등산길을 이탈하여 묘비를 읽어보니 여양 진씨라고 새겨져 있다. 조금 더 오르다 보니 또 하나의 묘지가 나타난다. 나주 정씨라고 묘비가 세워져 있다.
좋은 땅의 기운을 받아 산맥을 타고 좋은 기운을 전해주면 후손에게 발복이 된다는 풍수지리 의 동기감응 이론이 맞을까, 아닐까 하는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자손으로서 조상을 편히 모시려는 효심은 대단하다고 여겨진다. 조상의 덕으로 발복을 기대하려는 자손의 이기심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정상에 가까워진다는 생각이 드는데 길이 갑자기 우회하여 아래로 내려간다. 올라오는 중간지점에 안내표시도 없으므로 불안한 마음이 또 앞서는 것이다. “시청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좀 더 친절하게 안내표시를 달아주면 어디 덧나나” 하는 아쉬움 속에서 계속 진행하니 앞이 터지고 정상으로 보이는 고지가 시야에 들어오면서 이제야 안내표시가 나타난다.
드디어 정상 지점에 다다르니 성곽은 보이지 않고 나무들만 무성하다, 한쪽에 위례산성 이라는 표지석이 설치되었지만 크기가 나의 무릎에도 미치지 못한다. 해발 480미터로서 험준하지는 않지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산성으로서의 가치가 쉽게 이해되지도 않는다.
왜 이곳이 위례산성인지 알기 위하여 옆에 서 있는 안내판으로 가보니 퇴색되어 글자 식별이 거의 불가능하다. 또다시 시청의 무관심에 대하여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으로 오래되기는 하였지만 백제의 최초 도읍지로서 알려져 왔고 학계나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백제의 초도가 서울시 몽촌토성, 경기도 하남지역에서 발생했다는 주장들이 엇갈리고 있다. 천안시 직산을 시작으로 인근 성거산. 위례산이 백제의 본거지이었다는 주장을 전제로 위례산성을 행정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유의미한 역사성에도 불구하고 그 관리 상태는 너무 허술하여 아쉽다.
하지만 3년 전부터 벼르고 벼려왔던 정상과 산성을 드디어 답사한 사실에 대해서는 성취감과 함께 마음이 가벼워진다. 청량한 산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서서 단전 깊숙이 맑은 공기가 들어가도록 크게 심호흡을 하였더니 산의 정기가 몸속 가득 찬 느낌을 받는다. 심신이 병든 사람들이 산속에 들어와서 살다 보면 치유가 된다는 자연의 신비한 능력이 새삼 실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목표한 산의 정상을 밟았다는 짜릿한 기분을 뒤로하고 하산을 시작한다. 오를 때에는 등산로만 쳐다보며 걸어왔기 때문에 정상의 지형상태는 유심히 보지 않았는데, 하산의 여유라서 그런지 더 넓게 보인다. 다른 산의 정상 부분이 대부분 비좁았던 경우와 달리 비교적 여유있게 형성되어 있다. 즉 산성이라는 지명에 그런대로 부합한다고 생각이 달라진다. 성벽은 낭떨어지 형태로서 성곽의 흔적은 없다. 그러나 정상 땅에서 군대나 사람들이 거처할 만한 다소의 공간은 확보가 가능하게 보이고 군대가 주둔할 만한 입지적 조건은 그런대로 갖추어진 셈이 된다.
그러한 나름대로의 평가를 내리고 하산을 서둘렀다. 한참을 내려가는데 앞에서 중년 남녀로 보이는 등산객이 올라온다. “안녕하세요? 수고하십니다” 라는 인사를 여유롭게 건네고 또 내려가다보니 다시 돌멩이 탑이 눈에 들어온다. 다가가 자세히 보려는데 발이 미끌어지면서 한 손으로 돌탑을 건드렸고 결국 상단이 무너지고 말았다. “아이고 일을 저질렀구나” 배낭을 내려놓고 다시 흩어진 돌멩이를 주어서 쌓아본다. 그러나 원형대로는 복구되지 못하여 실수의 죄책감이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누군가 뒤에서 “도망가지 말고 거기 서시요” 라고 호통을 치는 듯하다.
하산을 계속하여 한참을 내려가는데 아무래도 올라왔던 길이 아닌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럴 때에 증간 중간 안내표시가 있으면 또 얼마나 편리할까” 혼자 중얼거려 보지만 소용이 없다. 출발지와 다른 장소에 도착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는 생각이 불안감도 가중된다. 그리고 부주의로 돌탑을 무너트린 죄책감이 머리속을 더욱 무겁게 한다.
하지만 다시 뒤돌아 올라가면 더 힘들 것 같아서 죄값을 톡톡히 받을 것을 각오하고 계속 진행하였다. 도착점이 다를 경우를 대비하기 위하여 탈출방법을 고민하고 있는데 앞에서 등산객 한 분이 올라온다, “길을 좀 물어보려고 합니다. 부소산이 고개를 가려고 하는데 맞는가요?”
“조금만 더 내려가면 안내표시가 나옵니다” 라는 답변을 들으니 기사회생한 기분이 든다.
결국, 아무도 안보는 숲속에서 죄를 지은 값으로 예정보다 40분간 더 산속을 헤매면서 애를 태웠던 것이다.
3년 전, 허탕치고 되돌아갔다가 다시 찾았던 위례산과 산성은 나에게 더 특별한 의미를 남겼다. 오늘도 백제의 후예로 나섰다가 산 속에서 예상치 못한 사연도 있었지만, 역사적 가치를 답사하였다는 성취감과 그 도전정신은 나 스스로 만족스럽다. 집에 무사히 도착하여 아내와 함께 하산주로서 무알콜 맥주잔을 부딪쳤다. 기분이 짱이다.
첫댓글
사랑하는 이와 등산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감동으로
전혀주는 글입니다.
청설모와 딱따구리가 하는 말.
내면으로 들으면서 완주하고
하산주를 부딪히는 순간의
짜릿한 전율을 전해받습니다.
위례성!
백제의 후손으로서 풀어야 할
엉중한 과제를 전달하십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과분한 평가에 힘이 솟아 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