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신문 2010.1.1
농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그동안 전통적인 먹을거리 산업이던 농업이 2·3차 산업으로까지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최근엔 정보기술(IT)과 생명공학(BT), 나노기술(NT) 등 첨단과학과 결합돼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어 내는 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 이로 인해 농업이 의약품과 같은 첨단산업의 신소재 등으로 관심을 끌며 21세기 산업을 이끌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 의료용 소재 등 연구 활발=의료 및 의약품 소재가 가장 주목 받는 분야로 거론된다. 누에고치가 그 대표적인 예.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실(실크)로 인공고막을 만드는 기술을 농촌진흥청이 지난해 세계 처음으로 개발한 것. 이는 인공고막과 뼈 고정판 및 볼트, 치과용 인공치주뼈 등으로 활용이 가능해 경제성이 큰 분야다. 앞서 누에를 이용한 동충하초 재배에 성공했고, 한국판 비아그라인 ‘누에그라’도 개발했다.
식용이 주목적이던 가축 역시 마찬가지. 농진청 축산과학원은 작년 4월 장기손상 환자에게 이식용 장기를 제공하는 형질전환 복제 미니돼지 ‘지노’ 생산에 성공했다. 이는 미국에 이어 세계 두번째다. 한화L&C(엘앤시)도 서울대 등과 2년여 연구과정을 거쳐 형질전환 복제돼지 ‘복마니(Ispig)’ 생산에 성공했다.
또 벌침에 함유된 ‘봉독(蜂毒)’도 가축용 항생제로 쓰이는가 하면, 복제돼지 젖을 통해 빈혈치료제를 대량 추출하는 등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중이다.
농업분야의 유전자원도 신약 등의 원천이 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세계에서 개발된 신규의약품 가운데 60%가 천연물질에서 비롯됐다. 신종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는 중국과 베트남에서 향신료용으로 재배되는 스타아니스에서 추출된 것으로 시장 규모는 연간 30억달러다.
또 버드나무에서 개발돼 하루 1억정 이상 소비되는 진통제 ‘아스피린’과 양귀비에서 추출한 진통제 ‘모르핀’, 주목에서 개발된 항암제 ‘탁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국내에서는 현재 농진청을 비롯한 연구기관과 민간 종자업체가 유전자원을 활용하며 고품질의 신품종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 쌀, 기능성 건강식품으로 변신=주식인 쌀도 진화중이다. 허기를 달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포만감을 주면서도 살이 찌지 않는 기능성 쌀로 거듭나고 있다.
농진청은 건강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 증대에 따라 감귤에 들어 있는 기능성 물질인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함유된 〈감귤쌀〉과 다이어트용 〈고아미2호〉, 혈행개선에 효과가 높은 〈홍국〉, 양조용인 〈설갱〉 등을 잇따라 개발했다. 또 비타민A 부족현상을 방지해 주는 〈황금쌀〉과 일반 쌀보다 당 함량이 6배 이상 높은 〈단미〉 개발도 성공했다.
기능성 쌀은 속속 상품화되고 있다. 전북 임실에서는 다이어트용 〈고아미2호〉를 이용해 피자를 생산 판매하고 있고, 발아현미 쌀은 2~5배의 고부가가치 쌀로 판매되고 있다. 국순당은 지난해 전국 110여 농가와 400㏊(396만㎡·120만평) 면적에 대한 〈설갱〉 생산 계약을 맺었다. 또 자라면서 다양한 색깔을 나타내는 〈카멜레온〉 벼 등 관상용 품종도 선보였다.
◆ 향료 등 고부가가치산업 주목=허브를 비롯한 자생식물들은 향료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사용된다. 특히 향료산업은 시장 규모가 10조원에 이르는 고부가가치산업이지만 국내에선 미개척분야다. 향 원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을 정도다. 전남도는 이를 미리 꿰뚫고 지난 2005년부터 향료산업 육성에 나섰고, 그 결과 100여종의 추출에 성공했다. 향 원료를 생산하는 천연정유 생산법도 국내에서 처음 개발, 특허출원을 마쳤다.
강원도 역시 내년까지 ‘강원 자생식물 천연추출물 표본은행’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할미꽃에서 ‘크리소파닉산’ 등의 성분을 분리해 특허출원하는 등 지금까지 자생식물 37과 88종의 천연향 성분을 추출, 보유중이다.
화장품 개발 연구도 활발하다. 제주도는 작년에 환삼덩굴 등 제주 자생식물의 추출물에 동백기름 등 한약재를 혼합해 아토피 피부염을 개선하는 화장품을 개발했다. 앞서 화장품 기업인 코스맥스도 제주 자생식물인 개서어나무를 이용한 인체의 주름개선 소재물질을 개발했다.
◆ 바이오디젤 각광…잡초까지 자원화=바이오디젤은 대두나 팜·옥수수·고구마 등과 같은 곡물에서 짠 기름. 유럽은 유채를 이용한 바이오디젤을 생산해 실용화하고 있고, 미국과 브라질도 각각 자국의 우위 농산물인 옥수수와 사탕수수를 이용 바이오에탄올을 생산해 연료로도 공급하고 있다. 국내 역시 유채의 품종개발 등에 힘을 쏟고 있다. 현재 농진청은 기름성분이 많은 유채품종 〈선망〉을 보급중이다. 이 품종은 10a(300평)당 수량이 448㎏으로 기존품종과 견줘 50% 이상 많다.
이밖에 잡초를 자원화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농업기술 등의 발달로 농업경영학적 관점에서 벗어나 환경과 생태보전 측면에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인공습지 등의 수질개선 및 정화에 쓰이는 수생잡초인 갈대와 부레옥잠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농업이 첨단과학기술과 결합돼 다방면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신성장 동력원으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그러나 농가의 소득향상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정부의 연구 및 개발이 보다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