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척간두 진일보
(百尺竿頭進一步)
심완 박전상환
1.
드넓고
푸른 하늘(蒼空)
허(虛)와 공(空)이
무상(無常)이요
사계절(四季節)
춘하추동(春夏秋冬)
녹수청산(綠水靑山)
무상(無常)이라
하물며
사람의 육신(肉身 몸)
생노병사(生老病死)
없으리
2.
남겨짐(餘)
하나 없고
모자람도
일체(一體)없네
신(神)께서 주신 이 몸(肉身)
나(我)라는 이 존재(存在)여
참되고
참 된 진여(眞如)는
생성소멸(生盛消滅)
없더라
3.
나(我)와 너(汝) 있다 없다
경계(境界)로서
시비분별(是非分別)
본래심 본래청정(本來淸精)
한 물건도 없었는데(無一物)
어디서
생겨났는가
그대에게 묻는다.
4.
어설푼
알음알이(智識)
견해(見解)의
마른 지혜(固定智慧)
헛 되고 헛되도다(번뇌 망상)
잡된 지식 다 버려라(방하착)
무상(無常)은
다함(終)이 없네
무상(無常)의 법(法)
찾아라
5.
온 우주
천지만물(天地萬物)
너와 내가
무상(無常)이요
생(生)과 사(死)
희노애락(喜怒愛樂)
인연(因緣) 또한
무상(無常)이라
무상(無常)을
뛰어 넘어라(열반 해탈)
한 걸음 더
나가라.
ㅡ 마음그릇 心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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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척간두 진일보
(百尺竿頭 進一步)
마음그릇 心椀 박 찬
선가(禪家)의 말씀중에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
라는 말이 있다.
이 것은(是卽) 사실
하나의 화두(話頭)이지만,
이 화두가
떨어지는 지점(경지)으로
곧바로 들어가기 전에
그 의미성을
조명(照明)해 보는 것도
내 사유(思惟 생각)의 범주를
넓히고 확장해 준다는 점에서
가치(價値)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길 목,
그 어디에도 피 할 곳이 없고,
그 어떤 누구도의 도움도 없는
절박한 상황과 접할 때가 있다.
살다가
살아가다가 돌아보면
누구나 이러한 절망적이고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막다른 상황에 부딪치곤 한다.
과연 이러할 때
우리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 ?
1척(單一尺)이
약 30센티 정도이므로
백 척(一百尺)은
대략 30미터(30M)가 되는
높이(層高)이다.
흔히 6척 장신이라고 하는데
그 것은 180센티보다
약간 더 큰 키(신장)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여하튼
백척(百尺)이라고 하는
30미터(30M)의 높이(層高)는
매우 높은 높이를 드러내는
말이며
그 높이 위에서 내려다보면
모든 것이 아찔할 정도로 높다는
의미에서는 차이가 없을 것이다.
간두(竿頭)란
빨래 줄을 높이 올리는
긴 막대기나 장대의 끝을
말한다.
빨래를
기다란 빨래 줄에 걸쳐
그냥 놓으면 줄이 축 처진다.
때문에
빨래줄 중간쯤을 긴 막대기로
받쳐주면 줄이 처져 땅에 닿지
않기 마련이다.
간두(竿頭)는
이러한 빨래줄을 받쳐주는
막대기의 정상 부분인 것이다.
그러므로
백척간두(百尺竿頭)란
아주 높고 기다란 막대기 혹은
장대의 끝이라는 의미이며
그 의미를 확장해 보면
아주 높은 곳이나
뾰족한 봉우리를 가리키거나
또는
깎아지를 듯한 천애(천길)의
막다른 절벽 끝일 것이다.
이 것을
우리 삶에 적용하면
백척간두(百尺竿頭)란
해결(解結)하거나
미처 손을 쓸 수 있는 여백이나
틈(間極)이 전혀 없이
완전히 박탈당해
막다른 곤란한 지경에 처한
아주 난감한 상황이나
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선가(禪家)에서는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최고의 깨달음에 견성성불,
또는
바로 앞의 경지(境地)를
백척간두(百尺竿頭)라고 한다.
그런데
그러한 곳에서
한걸음 더 진일보(進一步)
하라는 뜻은 무엇일까 ?
이 것은
곧 아주 작고 미세한
어떠한 겨자(芥子] 씨앗만한
집착이나 고정관념固定觀念)도
다 버리고 비워내어
제 스스로 자정(自淨 정화),
탈락시킬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자아의식(自我意識, 관념)의
흔적마저 철저히 버리라는
것이다.
혹은
깨달음에 대한 집착이나
깨달았다는 집착(集着)까지
모두 다 놓아버리라는 의미로써
비유적 표현인 것이다.
그 것은
일상적인 삶에서도
정상(頂上)에 대한 안주(머뭄)나
집착도 모두 다 놓아버리라는
말의 뜻과 의미인 것이다.
단 한마디로 방하착(放下着) !
백척간두(百尺竿頭)
진일보(進一步)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살불살조(殺佛殺祖)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불조사(佛, 祖師)를 만나면
불조사를 죽이라는 것이다.
이 자리,
지금, 여기,
현재에 존재하는
유상(有像)의 나(我)를 죽여야
영원불멸 고정되어 있지 않는
무상(無常)의 내가 살 수 있다.
부처(佛)를 죽여야만
불교(佛敎)가 살 수 있다.
라는 것이다.
그 것이
곧 부처(不處)이며
그 것이
곧 무상(無常)이요
백척간두 진일보
(百尺竿頭進一步)이며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
무상(無常) 속에 아로새겨진
말씀(佛說 佛法)의 숨겨진
깊고 깊은 심오(深奧)한
본래의 뜻과 의미인 것이다.
여시아문(如是我聞)
나는 이와같이
보고 듣고 배웠다.
- 終 -
강원도 정선 동강 변
별빛총총한
초가삼간두옥
묵우당(墨友堂 글벗터)에서
우바새(優婆塞)
마음그릇 心椀 박 찬
(박전 상환)
두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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