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온나래 큰 잔치 문학초대작가와의 대화에 가다_1
"세상을 살다보면 시시해 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시가 있고, 시는 저를 이 세상에 존재케 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임애월 시인이었다. 단발머리에 모택동 모자를 걸친 그는 꾸밈새나 화장기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 당찬 중년의 여류 시인으로 비쳤다.
4일 오후4시 수원시 가족여성회관 본관 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치 어느 찻집에 온 기분 같았다. 각각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은 손님은 약 40여명, 안쪽에서는 차를 끓이며 은은한 커피향이 분위기를 한껏 고조 시켜주고 있었다.
중학교 때 학교 문집에 내기 위한 시 써오기 숙제를 받고 '눈 내리는 밤'이라는 시를 써갔는데 선생님께서 수정을 해주시니 훨씬 시가 더 빛났다고, 만화책과 소년동아 책을 보며 시의 매력을 느꼈다는 그는 김소월과 박목월 시를 암송하기도 했다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가온나래 큰 잔치 문학초대작가와의 대화에 가다_2 그때 객석에서 한 독자가 문학에 접근하기 가장 어려웠던 시절은 언제였으며, 작품을 쓸 때 어려웠다며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시인은 "엄마들이 다 그렇듯 아이를 낳아 기를 때라며, 지금은 모두 자라서 곁에 있어주지 않아도 된다며 시를 위한 일에 전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작품 주제를 받고 쓴 시가 껄끄럽다, 갑자기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가 제일 쓰기 어려웠다, 목표를 위해 억지로 머리로 짜내야만 하는 글이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질문자는 임병호 시인과는 한때 스승과 제자 사이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동등한 시인이 되고 보니 어떤 마음인가 하고 물었다. 이때 웃음을 보이며 그는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일 뿐이라며 항상 존경하는 분이라고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임애월' 이름에 대해서는 본명이 홍 아무개라고 성만 말했다. 제주도 애월면이 고향이라서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애월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홍애월이라 하고 보니 옛날 어느 기생의 이름 같아서 그만 임애월로 했다고 하여 모두가 웃었다. 애월이라는 이름이 참 좋다고 그는 말했다. 다른 어느 선배 분께서도 애월을 호로 쓰려고 하여 단호하게 기득권을 내세워 만류했다고 했다. 수풀 임자에 물가 애자 달월자라고, 얼마나 아름다우냐며 또 웃어보였다.
그러나 "임애월은 까칠하다, 그런 소리가 저는 슬펐습니다. 남에게 듣기 좋은 소리만 하지 못합니다. 솔직하게 직설적으로 저는 말하는 편입니다. 에둘러서 말할 줄도 모릅니다. 평소에 깊이 있는 대화는 없습니다. 저는 그것이 슬픕니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객석에서는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사막은 세상에서 가장 메마르고 건조한 곳이라며, 그러나 지상에서 가장 말갛게 떠오르는 것이 사막의 달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자 객석의 한 독자는 '사막의 달'이라는 시를 읽었다며, 시인께서는 혹시 사막을 직접 가보았는가 하고 물었다. 이런 질문을 놓고 어떤 시인은 독자가 뭘 몰라서 그런다며 실례라고까지 말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 독자역시 나와 같이 픽션인가 논픽션인가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시는 간접 경험을 통해서도 쓰는 것이라고 하지만 시를 잘 모르고 배우는 입장이라면 왜 궁금하지 않았겠는가.
설령 시를 잘 안다고 하여도 호기심 많은 독자라면 작가에 대해 궁금할 수밖에, 마치 나를 대신한 질문만 같았던 그에 대한 대답은 앞으로 기회가 되면 타클라마칸의 사구로 떠나가 보고 싶다고 시인은 말했다.
류재엽 문학평론가는 임애월 시인의 '사막의 달'을 읽으면서시인의 진실과 일치된 시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며, 그것은 지금껏 시인의 삶이 진실하였고, 끊임없이 자아를 찾고자 하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시 창작에 임하였음을 알게 한다고 시집의 발문에 썼다. 잘은 모르지만 "임애월은 까칠하다, 그런 소리가 저는 슬펐습니다."하는 대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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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독자의 마지막 질문인 것 같았다. 임시인의 시를 만나면 인간애를 느끼게 된다면서 가장 아끼고 기억에 남는 시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임애월 시인은 "촛불처럼 내 몸을 태우며 남을 위해 살지 못합니다. 그리고 '억새꽃에 대하여!'라는 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쓴 시라고 했다. "팔남매의 어린 꿈들 품어준 적 있었네. 천형(天刑)의 바람 속에서도 휘지 못한 시간들, 초겨울 서리 찬 언덕에 은발로 나부끼네."하는 대목들을 볼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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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탁 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임애월 시인과의 대화는 그렇게 화기애애한 가운데 시간 관계상 아쉽게 끝내야 했다. 그리고 양응자 시낭송가의 '억새꽃에 대하여' 심춘자 시낭송가의 '국화차를 마시며'가 낭송된 뒤, 참석한 독자들에게는 임애월 시인의 '사막의 달' 시집의 팬 사인회가 있었다.
'가온나래'는 여성이 중심이 되어 날아간다는 뜻이라 하지 않은가. 앞에 가족이라는 것만 붙지 않았다면 금남의 집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여성들의 천국 같기만 하였던 그곳 수원가족여성회관, 웬만한 뱃심으로는 자리를 지키며 견디기 어렵지 않았을까.
5일은 가온나래 큰잔치 마지막 날로 역시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이 고장 소설가인 김현탁 작가와의 만남이 있다고 한다. 문학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분들께서는 무료로 제공하는 차도 마시며, 주변 분들과 함께 여유로운 나들이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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