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막제조의 과정
1) 성막에서 섬기는 아론의 예복은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이 청색과 자주색과 주홍색 실로 성소에서 섬기기 위하여 입는 섬김의 예복을 만들고 또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의복들을 만들었더라"(출39:1)
성막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이 입을 옷을 주님의 명령대로 만들었습니다. 그들 중 대제사장이 걸치게 될 에봇 역시 주님의 명령대로 만들었습니다.
"그가...에봇을 만들었으며....그들이 에봇에 쓰려고 어깨 조각들을 만들어서....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출39:5)
에봇의 어깨에 다는 금 장식 핀 역시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았습니다(출39:7). 흉패의 고리들과 에봇의 고리들을 묶어서 서로 떨어지지 않게 했는데 이것 역시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았습니다(출39:21).
에봇에 바쳐 입을 청색 옷을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방울 하나와 석류방울 하나를 돌아가면서 그 겉옷의 단 주위로 달았습니다. 이것 역시 모양을 내기 위한 것이라든지, 당시 옷을 제작하는 패션 디자이너의 구상에 의해서라든지...그런 것이 아니라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이 되었습니다(출39:26).
또한 대제사장들이 입을 속옷, 반바지 역시 그냥 되어진 것이 아니며 주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이 되었습니다(출39:29). 그리고 대제사장이 쓰는 관의 모습도 역시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이 되었습니다(출39:31).
"이와 같이 회중의 장막 곧 성막의 모든 작업이 끝났고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니라"(출39:32).
2) 성막의 기구들은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제사장 의복에 관한 것을 끝으로 해서 성막의 기구들을 준비하는 모든 작업이 끝났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준비되었는가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대로 다 행하므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출39:33-43).
성막의 기구들은 아무개의 생각에 의해서 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투표과정을 거쳐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대로 지어진 것도 아닙니다. 지어져 가는 과정을 살펴보십시오. 그것은 모두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었습니다. 그 모든 재료며 기구들은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지어졌던 것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세우는 과정을 보십시오. 준비된 모든 것을 가지고 성막을 세울 때 어떻게 되어졌는가?
성막을 세우고 그 안에 증거궤를 들여 놓는 것, 휘장으로 그 궤를 가리는 것(출40:3), 또 상을 들여놓고 그 위에 가지런히 놓을 것들을 정렬하는 것(출40:4), 금으로 된 분향제단을 증거궤 앞에 두고 성막 문에 현수막을 치는 것(출40:5), 번제단을 놓고, 물두멍을 놓고, 돌아가며 뜰을 세우고 뜰 문에 현수막을 다는 것(출40:6-8), 모든 성막의 기구들에 기름을 발라 거룩하게 구별하는 것(출40:9-11), 아론과 그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구별하여 섬기게 하는 것(출40:12-15), 이 모든 것이 주께서 명령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모세가 그와 같이 행하되 곧 주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더라"(출40:16).
17절부터 더 자세히 그와 같은 것들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막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 성막 위에 장막을 넓게 펴고 그 위에 장막 덮개를 덮었으니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출40:19) "또 그 궤를 성막 안으로 들여놓고 가리는 휘장을 쳐서 그 증거궤를 가리니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출40:21) "또 주 앞에서 그 상 위에 빵을 가지런히 놓으니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출40:23) "또 주 앞에서 등잔들에 불을 켜니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출40:25)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태우니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출40:27) "또 회중의 장막 곧 성막 문 옆에 번제 헌물 제단을 두고 그 위에 번제 헌물과 음식 헌물을 드리니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출40:29) "그들이 회중의 장막에 들어갈 때와 제단 사이에 두고 거기에 씻었으니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출40:32)
성막과 거기에 필요한 기구들을 만드는 설계는 누가 했습니까? 그것은 모세가 임의대로 한 것입니까? 백성들의 의견을 받아서 설계한 것입니까? 성막과 거기에 필요한 기구들은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무엇이 기준이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대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되어졌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주님의 명령대로 설계되었으며 주님의 명령대로 준비되었고 주님의 명령대로 완성된 것입니다.
2. 주님의 명령대로 지어진 성막의 결과
그렇게 주님의 명령대로 성막을 다 지었을 때, 구름이 회중의 장막을 덮었고 주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습니다(출40:34,35). 거기 그곳에 주님의 임재의 상징인 주님의 영광이 가득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곳으로서 표시가 나타났습니다.
"그 뒤에 구름이 회중의 장막을 덮고 주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중의 장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그 위에 있고 주의 영광이 성막 안에 충만하기 때문이었으며"(출40:34,35)
"이에 제사장들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의 영광이 주의 집에 가득하였음이라"(왕상8:11)
이것은 성전 봉헌을 할 때의 장면이었습니다. 솔로몬 성전조차도 마음대로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이신 식양에 따라 되어졌습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거기에 주의 영광이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3. 오늘날 하나님의 집에 해당하는 것
오늘날 이 하나님의 집 성막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리니 이는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하며 너희가 곧 그 성전이기 때문이라"(고전3:16,17)
여기서 말하는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거룩히 구별되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곧 고린도 교회, 그 성도들을 말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집은 건물이 아닙니다. 천막이 아닙니다. 이것은 교회로 모인 구원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화해된 사람들(엡2:16)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집에 속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엡2:19). 성도들은 그 안에서 하나님의 거처로 지어져가는 교회가 되었습니다(엡2:20-22). 예전에 하나님께서 텐트에 계셨다면 이제 하나님은 교회로 모인 우리들을 거처로 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 계십니다.
"그러나 내가 오랫동안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알게 하려 하노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3:15).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집이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씀하십니다. 솔로몬은 성막을 끝내는 건물 성전을 지었는데 성경은 그것을 가리켜 "주의 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만일 우리의 교회가 "주님의 집"이 분명하다면, 만일 우리의 모임이 "하나님의 집"이 분명하다면, 또한 우리들의 연합이 바로 "주님의 거처"가 분명하다면 우리는 이것을 주님의 명령대로 세워가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성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던 것처럼 인천생명침례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냐? 너희 몸이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 이는 주께서 값을 치르고 사셨음이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하나님의 집이 집다와지면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인 우리들이 바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만일 주님의 명령과 순종하려는 마음이 없고 순종하는 삶에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이론으로 끝나는 신앙이 되고 말 것입니다.
"모세가 이르되, 이것은 주께서 너희에게 행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니 주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나리라."(레9:6)
우리는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경우를 많이 듣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을 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공부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결혼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만일 주님의 명령에 예민해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영광은 고사하고 자기 영광이나 구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님은 "가라"고 했지만 나는 "이게 더 좋습니다"라고 몸으로 말할 때가 있습니다. 입으로가 아니라 몸으로 말입니다. 몸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냥 그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면서 자기 몸이 익숙한 어떤 것을 하기 좋아합니다. 그러면서 "이걸로 주님 기쁘시게 하겠습니다."라고 몸으로 대답합니다. 또 주님은 "그런 일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주님, 때때로 이런 일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너무 각박하게 멀리하면 어떻게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제가 주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서는 간간히 이런 휴식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몸으로 말합니다. 자기의 편리, 자기의 쉬운 것...결국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님의 명령은 무시당합니다.
오늘 제가 드리는 이 말씀은 주님의 명령에 관심을 갖고, 그것대로 살아가기를 구하고, 또 실지로 살아보고...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과 이 교회 안에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4. 성막 기구들의 모습들
성막의 여러 기구들이 예수님을 예표한다고 배우고 있습니다. 또한 동일하게 그 모든 기구들은 예수님을 모신 우리들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고후4:10,11). 번제단은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인 동시 또한 우리들이 주님과 함께 죽은 사람들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두멍은 바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교제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섬기는 제사장마다 하나님을 섬기려 할 때,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었습니다. 번제단이 죄인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준다면 물두멍은 성도들의 변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그분은 우리의 물두멍이 되십니다. 우리가 언제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변호하시는 분이십니다. 늘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께서 우리의 발을 씻어 주셨듯이 서로를 씻어주는 물두멍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통해 용기를 얻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가 있습니다.
등잔대는 고난받으셨지만 빛을 발하시는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해 세상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빛을 말씀하시기 이전에 우리를 향해 소금이라고 했습니다. 소금이 먼저 나옵니까? 빛이 먼저 나옵니까? 만일 우리가 소금인 것을 알지 못한다면 빛인 것은 고대할 수도 없습니다(마7:13-16). 사람들은 빛만을 생각합니다.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왜 우리를 몰라주느냐는 식입니다. 내가 이 정도 했는데도...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가 빛이 날려면 소금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소금처럼 녹아서 맛을 내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자기가 죽지 않고는 맛을 낼 수가 없습니다. 진정으로 소금같은 사람이 없는 것이 안타까운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는 고난받으면서 빛을 내는 등대입니다.
성소 안에는 빵과 빵을 진열하는 상이 있습니다. 열 두 조각의 빵은 열두 지파를 나타내며 이스라엘의 연합, 곧 교제를 의미합니다. 이 연합을 위해서 가루는 곱게 부서졌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연합되기 위해 부서지신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좀처럼 부서지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가루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연합이 이루어지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부서진 가루로서 빵이 되어 진열상에 오르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모습이지만 또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성소 안에는 분향제단이 있습니다. 그것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거기 이상한 향을 드리지 말라고 했습니다(출30:9). 아침마다 그 향을 태우도록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중보하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절 위해 기도하지 않아도 주님은 저를 위해 중보하시는 분입니다(롬8:26,34). 나와 하나님 사이에 서서 나를 위해 하나님께 말해주시는 분이 되시는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러한 예수님을 모신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하나님께 아뢰 드립니다. "저 형제를 도와주십시오. 저 형제가 저런 식으로 나가는 것은 그 자신에게도 교회에도 유익하지 않습니다. 바로 잡아주시고 인도해주십시오...."
휘장이 있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것은 찢기신 주님의 몸을 말해줍니다(히10:20). 그분이 찢기심으로 그분의 죽으신 몸을 신뢰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화해케 하는 제사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통해 어떤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찢기지 않는다면 아무도 거기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복음전도를 위해 시간을 찢고 있습니까? 우리는 다른 이들을 섬기거나 좀더 주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 물질을 찢고 있습니까? 혹은 가족관계나 친구관계를 찢고 있습니까?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께로 향하는 길에서 막고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싶어했던 삭개오에게 주님을 따르는 수많은 군중은 장애물이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라고 외쳤던 소경 바디메오에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조용히 해라"라고 그 입을 막는 방해꾼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을 통해 지금 누가 휘장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뵙고 싶어하는데 여전히 가로막이 되어 가는 길을 방해하지 않습니까? 나는 좀더 우리의 교회가 복음을 전하고 구령하는데 헌신해야 하는 위치에 있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성도들은 자기의 찢어지지 않는 삶으로 인해 다른 이들이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휘장은 예수님이시자 또한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법궤...그것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법궤 안에는 십계명의 두 돌판과 만나 항아리,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열 가지 명령이 적힌 돌판처럼 하나님의 공의가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분이 되셨습니다. 또한 하늘에서 오신 생명의 빵이 되셨습니다.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섬기는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아론의 지팡이는 누가 제사장의 권위를 갖는가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찌 이것이 그리스도에게만 해당합니까? 우리 안에는 십자가로 새겨진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있습니다. 또한 생명의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십니다. 영적으로 굶주린 우리들을 채워주는 양식이십니다. 또한 우리는 부활생명을 가지므로 말미암아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법궤 위에 덮혀진 긍휼의 자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만나주시는 곳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그 자리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히4:16).
모든 성막에 나타난 기구들은 예수님이시자 동시에 우리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주님의 집이 주님의 명령대로 지어지는 것을 원했습니다. 거기서 섬기는 종들도 주님의 명령대로 준비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럴 때,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천생명침례교회가 주님의 집으로서 바르게 세워지려면 하나님의 명령에 관심갖는 성도들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기구가 됩니까? 물두멍이 되겠습니까? 번제단같이 되겠습니까? 휘장이 되겠습니까? 향단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여러분 자신이 될 때, 이 교회는 주님의 영광이 가득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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