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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10: 24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 하 ) - 히 10: 28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⑤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에의 사랑에 기초 위에 성립된다.
* 레 19: 18 -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 요일 4: 11, 21 -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서로가 자기 이웃을 사랑하도록 명령하셨다. 신약에서는 교회가 이웃 사랑을 실현하는 터로 특별한 의미가 주어져 있다.
* 갈 5: 13 -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
ⓐ 사랑은 교회에 주어진 새 계명이다.
성령의 최고의 은사이기 때문이다.
* 요 15: 12 -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 고전 12: 31 – 13: 13 - 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 이웃 사랑은 예수에 의해 원수(적대자)까지 확대되었다.
* 눅 6: 27 -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 갈 5: 13 –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
* 살전 4: 9 -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자기의 형제 - 그리스도에 속한 자를 사랑한다.
* 요일 4: 21 -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 요 15: 12-17 –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 히 6: 10-11 - 10 하나님이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 렘 2: 2-3 – 2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3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위한 성물. 곧 그의 소산 중 첫 열매이니 그를 삼키는 자면 모두 벌을 받아 재앙이 그들에게 닥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계 12: 11 -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교부들은 “docks” 이라는 의미로 아가페를 사용하여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성찬 의식과 또 가난한 사람들이 초대되는 친교의 식사를 모두 가리킬 때 사용하였다.
또한 아가페는 수많은 기독교 작가들이 기독교적인 상황에서 서술해왔다. 아가페(agape)는 '절대적인 사랑'을 뜻한다.
(3) 선행
이것은 돌보는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행위이다(6: 10).
* 잠 19: 17 -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 약 3: 13 -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찌니라.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능동적인 지원과 관심은 당시 시련으로 인해 좌절하기 쉬운 공동체 삶 속에서 매우 긴급하고 중요한 것이었다(Bruce, Peterson).
* 사 1: 17 -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격려와 돌봄은 공동체의 일원들로 하여금 용기를 잃지 않고 소망을 굳게 지켜 확신 가운데 거하게 하며 친교와 확신을 북돋우는 자극제가 된다.
* 딤전 2: 10 -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히 10: 25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가 이런 믿음, 소망, 사랑의 실천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모이기에 힘쓰자고 덧붙여 교훈한다.
사람에게는 게으른 성질이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모이기를 폐하고 그것이 습관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을 본받지 말고 서로 권면하여 주의 재림의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기에 힘써야 한다.
모이는 것은 여러 면에서 유익하다.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리는 시간이다. 그것은 또 성경말씀의 교훈을 받아 힘을 얻고 자라가는 기회이다. 또 그것은 서로 교제하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좋은 기회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주 모여야 한다.
1]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모이기를'(에피쉬나고겐)은 '에피'(그 외에도)와 '쉬나고게'(회당)의 합성어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회당 예배 외에도 다른 특별한 그리스도인 모임을 가졌음을 나타낸다.
이 경우 특별한 그리스도인 모임을 폐하는 것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쉽게 유대인 관습에 빠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과 생활을 잃어버리게 되기에 저자가 그리스도인들의 특별한 예배를 폐하지 말라고 권면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Manson).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에피'라는 접두어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으며 본문 외에 어느 곳에서도 이러한 경우로 해석되는 예가 없기 때문에 다소 무리가 따른다.
모임을 폐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모임의 협동적인 생활을 파기하게 되며 상호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기 때문에 저자는 모이기를 폐하지 않도록 수신자들에게 권면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1) 관습(慣習, Custom)
관습이란 어떤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켜 내려와 그 사회 성원들이 널리 인정하는 질서나 풍습을 말한다.
습관이 개인적 차원이라면 관습은 사회적 차원이라 할 수 있다. 관습 중 불합리한 것을 '인습'이라고 하며, 합리적이고 자랑으로 여기며 소중히 지켜나가려고 하는 것을 '전통'이라고 한다.
관습에는 사회의 유대를 강화하고 동료의식을 심어주며 환경 적응의 방법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사회를 보수화하고 변화에 저항하는 특성이 있다.
고대에는 관습을 신이 재가한 것으로 간주했으며 관습을 어기면 신의 진노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유대인 랍비들은 관습을 불문율로 간주했고, 중세 가톨릭교회는 어떤 의미에서 관습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개신교는 관습을 인정하면서도 모든 종교적 관습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재검토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습의 도덕성에 대해서는 관습이 지역과 문화에 따라 다양하고 그 문화 환경에 전적으로 의존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문화에 보편적인 도덕적 일치를 찾을 수 없다는 주장 및 문화의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문화에 공통적이 목적이 있다는 것은 그것에 공통적이고 근본적인 도덕적 확신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성경은 후자의 입장을 지지한다.
* 롬 1: 19 -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 롬 2: 14-15 -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결국 모든 관습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도덕적 시비를 따질 수 있다. 또한 선교대상 국가의 관습을 수용하는 것을 '상황화'라 한다.
그러나 복음적인 진리를 훼손하면서까지 '상황화'를 하는 경우 그 지역 주민에게 관습을 지킬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으나 결국 복음은 변질된다.
2]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그 날'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 본서의 기록 연대와 연관되어 예루살렘 멸망의 때를 가리킨다.
Ⓑ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가리킨다.
두 해석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실제로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두 날을 구별하여 생각하였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Hewitt, Bruce).
저자는 그 날 곧 심판의 날이 다가오면 올수록 모이기를 폐하지 말고 더욱 열심을 내어 다가오는 고난과 박해 속에서 서로 격려와 위로를 통해 담대해지기를 권면하고 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오시는 그 때에 불신자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는데 대하여 영벌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날에 성도들은 각자의 삶에 얼마나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섬겼느냐에 대하여 상급의 유무에 대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 고전 3: 10-15 -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히 10: 26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
본 절에서부터 31절까지는6: 4-8과 병행된 구절들로 배교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시사한다.
죄를 범한즉(하마르타논톤, 현재분사)는 계속적 행위를 가리킨다.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는 까닭은 그가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은 구원의 개시를 의미한다.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라는 말은 구원받은 후라는 뜻이다.
2]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죄를 범한'(하마르타논톤)은 현재분사로 계속적으로 죄를 범함을 가리킨다. 즉 '만일 우리가 진리의 지식을 받은 후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버리고 그와 정반대로 행하여 고의적으로 계속 범죄 한다면'이라는 뜻이다.
이런 자에게는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시는 계시와 그리스도를 통해 드려진 희생 제사의 효력을 거부하고 계속적으로 죄를 범하는 자는 더 이상 속죄할 수 있는 제사가 없다.
이런 식으로 죄를 짓는 자들은 사실상 영적으로 양심이 마비된 자들이다.
* 딤전 4: 2 -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왜냐하면 그러한 자는 의도적이며 자발적으로 배교하였으며 유일한 구원의 방법인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히 10: 27 심판을 기다리는 것 -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
의도적으로 배교하고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자에게는 속죄할 수 있는 제사가 없고 오히려 심판만이 있을 뿐이다.
1]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주의 심판은 세상 끝 날에 있을 것이므로 이 때까지 두려움과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방법 외에 별다른 처방이 있을 수 없다.
2] 대적하는 자를 태울(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맹렬한 불'(퓌로스 젤로스)는 문자적으로 '불의 질투'를 의미하는 것으로 백성의 배교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손상되어 생겨난 격정적인 질투를 시사한다(Montefiore).
이것은 사 26: 11을 암시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대적자들을 멸망시킴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 사 26: 11 - 여호와여!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그들이 보지 아니하오나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을 보면 부끄러워할 것이라. 불이 주의 대적들을 사르리이다.
배교자들은 하나님의 대적자로서 그들에게는 오직 맹렬한 불의 심판만이 존재한다.
히 10: 28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시대에 비추어 그의 경고의 말씀을 강화시킨다.
그는 인간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의 벌도 엄중하였다면, 하나님의 아들 실제로 오셔서 주신 복음 진리를 저버린 죄의 벌이 얼마나 더 크고 엄중하겠는가? 라고 말한다.
1]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저자는 본 절에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과 모세의 율법을 비교하여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거부하는 것이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것보다 훨씬 더 엄한 심판을 자초하는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본문은 신 17: 2-7을 인용한 것이다.
* 신 17: 2-7 - ②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어느 성중에서든지 너희 가운데에 어떤 남자나 여자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 언약을 어기고 ③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것에게 절하며 내가 명령하지 아니한 일월성신에게 절한다 하자. ④ 그것이 네게 알려지므로 네가 듣거든 자세히 조사해 볼지니 만일 그 일과 말이 확실하여 이스라엘 중에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함이 있으면 ⑤ 너는 그 악을 행한 남자나 여자를 네 성문으로 끌어내고 그 남자나 여자를 돌로 쳐 죽이되, ⑥ 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으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죽이지 말 것이며, ⑦ 이런 자를 죽이기 위하여는 증인이 먼저 그에게 손을 댄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댈지니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신명기 본문은 우상 숭배를 한 자에 대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에 빠졌을 때 두 세 사람의 증인만 있으면 그들은 용서받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