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강해 시리즈 26
“기준없는 삶”
성경: 빌립보서 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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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유익했던 것들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두 쓰레기로 여겼습니다.”
“기준이 없다”는 말을 듣습니다. 어떠한 일을 시작하거나, 어떠한 판단을 내릴 때 마땅한 기준이 없다는 말이겠습니다. 그때 그때 즉흥적인 느낌에 기대어 판단하며, 그리고 그 판단에 책임을 지지않는 모습입니다. 일관되게 자신을 지탱하는 어떠한 근거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즉흥적인 움직임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라도 제외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선택의 연속인 삶 속에서 매 순간 무언가 선택을 해야하는 우리에게는 “기준”, 즉 “어떠한 사실을 가늠하는 기초”는 너무나도 절실합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기준”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분명 “우리의 삶을 끝까지 지탱해 주는 흔들림없는 가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대가 바뀌면, 상황이 달라지면 쉽사리 바뀌고말 가치는 삶을 지탱하는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기준”이라는 말을 아주 편협하고 엉뚱하게 사용하는 것을 봅니다. 잘 발달된 숫치감각과 손빠른 계산에 근거하여 이해득실을 따지고 이것이 곧바로 자신을 지탱하는 기준이 됩니다. 그러므로 아주 뛰어난 처세술과 적응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다. 여기에서 그때 그때마다 자신의 색깔을 바꾸며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주 그럴듯한 말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자기 자신은 사리지고 오직 겁데기만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발빠른 처세술이 기름진 것들을 먹게 할지는 모르지만, 남는 것이라고는 위선과 술수, 시간의 비듬과 배설물 뿐입니다.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바뀜의 근거를 자신과는 상관없는 외부에서 찾지만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것은 마치 열쇠를 어두운 밤길에서 잃어버리고 환한 방에서 열쇠를 찾으려는 어리석음입니다. “열쇠는 잃어버린 곳에서 찾아야 한다”는 변할 수 없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춥고 어두운 장소일찌라도 그것에서 열쇠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정작 바뀌어야 할 것은 산만하고 즉흥적인 습관이며,처세술에 해당하는 자신의 관행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행동에는 도무지 기준이 없다, 종을 잡을 수가 없다”는 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일단 덮어놓고 닥치고 보자,그때가면 어떻게든 되겠지,복잡하게 생각할 것 있나”라는 투의 말을 버려야 합니다. 쉽게 쉽게 되는대로 생각하고 내뱉는 말 속에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7에 자신의 생각과 판단은 병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삶을 지탱하는 변함없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아주 끈질긴 자신과의 싸움에서 얻어지는 것이지 우연하게 길에서 줍는 것은 아닙니다. 얄팍한 처세술과 계산과의 싸움, 조금도 손해보려고 하지않는 고질적인 이기성, 뒤틀려있는 판단의 방식. 이것이 싸움의 상대입니다. 이것은 어떠한 결별과 탈출의 싸움입니다. 그것이 현실적인 아픔의 과경을 겪는 것일 찌라도 그리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속으로 부터 병들게 하고 뒤틀리게 하는 그릇된 가치와 판단으로 부터 자유로와야 합니다. 그리하여 “고집스러운 기준”을 세우는 겁니다.
우리는 바울의 의미심장한 말마디에 귀를 기울입니다. “나에게 유익했던 것들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두 쓰레기로 여겼습니다.”(3:8) 지금껏 자신을 지탱해 준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회적 지위, 자신의 전통, 사고방식, 재물, 학문 등등 이 모든 것을 “배설물”혹은 “쓰레기”로 여겼다고 말합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를 아는 지식”(3:7)이었습니다. 바울을 끝까지 지탱해 주는 기준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다른 것은 오히려 “장애물”(3:8)일 뿐이었습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하나님의 뜻이 모두에게 자연스러움이 되는 하나님 나라의 계절을 갈망했던 예수, 그리고 하나님의 정의가 끝내 이긴다는 사실을 깨우쳐준 예수의 십자가.” 이것이 그의 기준이었습니다. 다른 것은 배설물이며 쓰레기 였고, 장애물이었습니다. 산다는 것은 분명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의 연속일 수 없고, 이러한 것들을 중심 축에 놓고 여기에 모든 것을 맞추어 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언제까지나 자신을 일관되게 지탱해 줄 수 없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이러한 “먹고 마심의 상황”이 한결같지 않으면 곧바로 좌절하며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것을 발견하였습니다. “항구적인 가치” 자신의 삶을 끝까지 지탱해 주는 변할 수 없는 삶의 기준을 바라본 것입니다.
흔들리는 시대, 산만한 가치관의 시대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우리의 삶은 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까? 누구라도 예외없이 선택 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있습니까? “어떠한 사실을 가늠하는 기초”가 되는 기준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까? “우리의 삶을 끝까지 지탱해 주는 흔들림없는 가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삶의 기준”을 고집스럽게 간직하고 공동체 속에서 함께 그것을 공유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상황이 달라지면 쉽사리 바뀌고말 가치는 삶을 지탱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며 서로를 세워나가는 공동체를 만들어 갑시다.
출처: 설교전문학교 글쓴이: 임평구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