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에서 신약 성경의 첫 책인 마태복음으로 넘어가는 성경의 책장을 넘기는 시간은 단 1초도 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종이 한 장 사이에는 역사적으로 무려 400년이라는 거대한 시간의 공백이 존재합니다. 세속 역사는 이 시기를 왕조들의 치열한 전쟁사로 기록하고, 많은 성도는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하여 ‘암흑기’ 또는 ‘침묵기(Silent Period)’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박사 과정 수준의 신구약 중간기 학문(Intertestamental Studies)의 안목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신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정교한 ‘복음의 무대’를 뒤에서 완벽하게 세팅하고 계셨습니다. 400년 동안 제국들의 뼈대가 꺾이고 주인이 바뀌는 격동의 현장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예수님이 오셔서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신 선언의 신학적 알맹이가 해독됩니다. 최고의 깊이를 가장 담백한 언어로 풀어내겠습니다. 자, 3강 1회차 강의 시작합니다!
제3강 1회차: 침묵기를 깨는 신학적 무대- 제국들의 변천과 '신구약 중간기(Intertestamental Period)'에 나타난 '때가 찬' 구속사 해독 -
사역자분들이 신약 성경을 읽을 때 단숨에 당황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구약 말기(느헤미야, 말라기)까지는 분명히 세계 패권국이 '페르시아(바사)'였고, 유대의 지도자는 '제사장과 총독'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약 마태복음을 펼치자마자 느닷없이 '로마 제국'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고, 구약에는 눈을 씻고 봐도 없던 '바리새파, 사두개파, 열심당' 같은 낯선 종파들이 등장하며, 헤롯이라는 이상한 왕이 유대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간격을 메우지 못하면 신약 복음서의 청중들이 왜 그토록 메시아를 갈망했는지 그 절박함을 강단에서 살려낼 수 없습니다. 400년 중간기 동안 유대를 지배했던 세 제국의 신학적 지형 변천을 완벽하게 마스터해 보겠습니다.
1. 페르시아에서 헬라로의 격변: 알렉산더 대왕의 도래 (문화적 세팅)
구약의 마지막을 지배하던 페르시아 제국은 우리가 2강 12회차에서 배웠듯이 피정복민의 종교와 문화를 인정해 주는 '관용 정책'을 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지었고, 제사장들을 중심으로 평화롭게 율법을 연구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333년, 그리스 마케도니아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천재 군주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이 이수스 전투에서 페르시아의 거대 군대를 격파하며 고대 근동의 주인이 순식간에 헬라(Gaza-Greece) 제국으로 바뀌게 됩니다.
알렉산더는 단순히 땅을 정복하는 것을 넘어, 자신이 정복한 모든 영토에 헬라의 정신과 철학, 그리고 '언어'를 이식하는 ‘헬레니즘(Hellenism)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로 인해 고대 근동 전체가 '코이네 헬라어(Koine Greek, 공용 그리스어)'라는 단일 언어권으로 묶이게 됩니다.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해 구약 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LXX)'이 출산한 것도 이 시기입니다.
하나님은 침묵기 전반부를 통해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터져 나왔을 때, 온 세계 인류가 단 하나의 언어로 복음을 즉시 이해하고 전파할 수 있도록" 헬라 제국을 통해 언어의 고속도로를 닦아놓으신 것입니다.
2. 프톨레마이오스와 셀레우코스 왕조의 샌드위치 전쟁 (환난의 용광로)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이 32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자 헬라 제국은 그의 부하 장군들에 의해 사분오열 쪼개집니다. 그중 유대 땅을 사이에 두고 남쪽 이집트를 장악한 '프톨레마이오스(Ptolemy) 왕조'와 북쪽 시리아를 장악한 '셀레우코스(Seleucus) 왕조'가 끊임없이 충돌하게 됩니다.
지정학적으로 또다시 샌드위치 신세가 된 유대 땅은 두 왕조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로 변했습니다. 특별히 북방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라는 미치광이 왕이 권력을 잡았을 때 유대교는 역사상 가장 가혹한 박해를 받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돼지 피를 뿌려 모독하고, 할례를 행하거나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인들을 잔인하게 도살했습니다.
이 혹독한 환난의 용광로를 거치면서 유대인들의 가슴속에 무서운 영적 에너지가 끓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인간 제국들의 잔인한 압제는 우리의 힘으로 끝낼 수 없다! 오직 하늘의 하나님이 친히 개입하셔서 이 사악한 제국들을 끝장내시고 우리를 구원하실 진짜 왕, '메시아(Messiah)'*를 보내주셔야만 한다!"
신약 성경을 지배하는 강렬한 '메시아 대망 사상'과 묵시문학적 열망은 바로 이 중간기의 피비린내 나는 압제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 것입니다.
3. 로마 제국의 등장과 "때가 차매"의 신학적 정점
마지막으로 기원전 63년,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이 예루살렘 성벽을 무너뜨리고 유대를 로마의 속주로 편입시키면서 신약의 최종 무대인 로마 제국(Roman Empire)의 시대가 열립니다.
로마는 전 세계를 정복한 후, 군대의 신속한 이동과 무역을 위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전무후무한 대규모 도로망을 구축했고, 제국 전체의 치안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를 이룩했습니다.
자, 이제 400년의 퍼즐을 학문적으로 조립해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 4절에서 이 순간을 단 한 문장으로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인에게서 나게 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