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정세 변화와 한반도 전쟁위기, 영세중립화의 길
〈2024 살림학연구소 첫돌맞이 한마당잔치〉
모셔배움(강연) ③
한반도 안팎에서 전쟁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남북 간, 미국과 중국 간의 전쟁 영향 때문이다. 남쪽에서는 전단 풍선을 보낸다. 그에 맞서 북쪽에서는 오물 풍선을 보낸다. 남쪽에서는 대북 확성기를 틀고, 북에서는 이를 방해하기 위해 소음방송을 보낸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또한 거세지고 있다. 대만이 중국과 하나라는 정책을 추진하는 중국과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대만의 민진단(소위 대만 토착세력)과 대만에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전략이 맞물려 전쟁의 위험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하면, 주한미군이 참여할 뿐 아니라, 한국 군대도 개입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 미국과 함께 베트남 전쟁에, 이라크 전쟁에 한국군이 참여했던 바가 있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도 많은 군비를 지원하며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중립은 전쟁에 개입하지 않고 그 가운데 서는 것입니다. 미국과 러시아든, 미국과 중국이든 모든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중립의 조건입니다. 그래서 중립화 운동은 굉장히 민감한 운동입니다. 주한미군 철수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쟁으로 먹고사는 나라와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한, 우리는 전쟁에 휘말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10월, 살림학연구소 첫돌맞이 한마당잔치에서 이재봉 공동대표가 한 말이다. 이날 열린 강연에는 이재봉 한국중립화추진시민연대 공동대표, 강종일 한국중립화추진시민연대 자문위원, 나경 살림학연구소 살림꾼이 ‘한반도 영구평화지대 중립화 운동’을 주제로 함께했다.
일본의 조선 침략과 고종의 영세중립 정책
우리 사회에서 ‘영세중립’은 낯선 주제일 수 있지만,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한반도에 영세중립을 실현하고자 했던 사례로 고종의 영세중립 정책이 있었다. 강종일 자문위원은 임오군란(1882), 동학농민운동(1894) 등 조선의 국내 정치 상황과 조미수호통상조약(1882), 청일전쟁(1894), 아관파천(1896), 러일전쟁(1904) 등의 굵직한 사건들 속에서 고종의 영세중립 정책(1891~)이 어떻게 시작, 전개되었는지 밝혔다.
조병식, 현영운, 이승만, 헐버트, 알렌, 이상설 등 특사를 통한 외교적 시도들과 함께 고종의 영세중립 선포가 있었지만, 일본이 일으킨 러일전쟁(1904),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 영일동맹(1905), 포츠머스 조약(1905), 을사늑약(1905)으로 이어지며 영세중립 정책이 무산된 안타까운 과정 또한 설명했다.
“우리나라 국사에 제가 발표할 내용은 한 자도 없을 겁니다. 아마 우리 역사에도 고종이 영세중립 했다, 그런 말은 없어요. ··· 일본의 사학자인 하야시 타이스케가 만든 《조선통사》를 기반으로 우리나라 역사가 기술되어 있기 때문에 고종의 영세중립의 ‘영’자 하나 안 나와요. ··· 그래서 우리가 가장 빨리 해야 될 것은 ‘역사’를 찾는 것입니다.”
일상의 ‘생명평화’로 열어 가는 ‘비무장 영세중립’
남과 북의 분단이 만들어 내는 분단적 사고의 뿌리를 짚어가다 보면 결국 우리 일상의 문제로 가닿는다. 쉽게 구분하는 남과 여, 장애인과 비장애인, 내 아이와 경쟁하는 다른 아이들, 농촌과 도시, 요즘에는 이민자들과의 관계도 우리 사회 갈등의 지점이 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경 살림꾼은 한반도 영구평화지대 중립화 운동이라는 큰 담론 앞에 자칫 관념화되기 쉬운 현상을 짚으며, 일상에서 만들어 가는 평화에 주목했다. 나와 너를 구분 짓는 선 긋기에 익숙한 모습을 돌아보고, 나와 상대를 고유한 생명으로 바라보며 평화를 지어 가는 일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참 생명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평화를 멀리 있는 목적물로 추구하기 전에 오늘 내가 사는 하루 안에 평화가 있는지에 대해 깨어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외부에 근거를 두지 않는 내적인 평화, 내 몸과 마음의 평화, 무의식과 의식의 평화가 중요합니다.”
막연할 수 있는 비무장 영세중립, 평화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과 실천 사례를 살림꾼과 길벗들의 설문을 토대로 설명했다.
나에게 영세중립이란?
- “비무장 영세중립은 사회적 상식, 통념에 맞서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사고의 대표적 예시다.”
- “힘에 의한 평화라는 통념에서 벗어나 사랑과 설득으로 평화를 이루어 내려는 운동이다.”
- “비무장 영세중립이란 평화가 평화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 “강력한 무력으로 평화를 지키는 것이 참으로 모순적인데 그런 관념을 그저 나와 동떨어진 일이라 무심히 지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일상과 삶은 작은 곳에서부터 국가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다층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무기를 내려놓고 진정한 평화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라 생각된다. 우리나라가 참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라 생각된다.”
- “한국 사회의 능력주의나 가족주의, 출세 지향주의 같은 것이 한국전쟁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해석이 생각났어요.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 닥쳤을 때 국가에 버림받은 경험이 자기 가족, 사적인 끈을 만들고 타인을 배제하는 태도로 나타났겠지요. 그렇다면 삶 속 영세중립 운동은 사적인 권력과 가족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인종이나 국적, 정체성 따위로 차별하지 않고 차별받지 않는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일 수도 있겠어요.” |
내 삶 속의 영세중립을 어떻게 해가고 있나?
- “살면서 마주하는 사건에서 이성적, 합리적, 분석적으로 소통하거나 해결하지 않고 먼저 타자를 배려하고 그 입장에서 풀어 가면서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한다.”
- “권력과 욕망의 사회에서 약자(젠더, 연령, 지역, 학벌, 경제력, 기득권 등)의 불평등한 일상을 살피고 대안을 마련하는 것.”
- “내 안의 화, 원망, 미움, 억울함 따위가 나로부터 아무 데로도, 누구한테로도, 이 세상에 전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내며 수신하고 마음 닦는 것으로 제 삶의 영세중립 평화운동 해가요.” |
“우리가 겪은 전쟁과 분단은 나와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싸워서 생긴 일이 아니고 국가주의에 기반한 지배 세력들의 싸움입니다. 어찌 보면 내가 싸운 것도 아닌데, 그 싸움의 파장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것이지요.”
나경 살림꾼은 국가주의를 전제하는 중립에 대한 사고를 넘어 “다른 생명과 공존하는 생명평화를 일구는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 내는 것”이 진정한 평화임을 환기시켰다. 전쟁과 분단이 만들어 낸 통념과 일상에서 일어나는 폭력 상황을 분별하며 극복해 가려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강연을 듣고, 질의하는 살림학연구소 길벗들. ⓒ살림학연구소
“저는 30살 무렵부터 마을살이를 시작하고, 지금은 농촌과 도시를 오가는 마을공동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반도 땅에서 농촌과 도시가 더불어 사는 삶을 먼저 경험하는 것은 갈라진 남북이 하나되는 것에 대한 굉장히 소중한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단체제 속에서 대립과 갈등으로 신음하는 이 땅에 생명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실천입니다. 그뿐 아니라 어떤 환경의 변화가 있더라도 갑자기 통일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답을 이미 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마을공동체를 토대로 평화 빚는 일상을 만들어 가고, 그러한 마을들의 연대로 확장해 갈 때, 생명평화 문명을 일구는 토대가 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