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서경 천도설(遷都說)
조선은 고래로 풍수설(風水說)이 성행하여 거의 일반민심을 지배하다시피 감염이 깊어졌다. 고려에도 풍수설이 일반으로 유행되어 신라 도승 도천의 전한 말로 인하여 개성의 도읍도 그의 말로 인하야 정하였고 이제 또 서경이 풍수설에 의하여 도읍하면 36국이 와서 조공한다는 전설이 있는데 서경에 있는 중 묘청(妙淸)과 일자(日者) 백수한(白壽翰) 등이 음양비술(陰陽祕術)로 무리를 고혹하더니 이때 인종이 이자겸의 난을 인하여 개경에 궁궐이 만큼 불타 버리고 왕이 계실 바 궁전이 없는 고로 왕은 임시로 서경에 옮겨 계시더니 이 기회를 이용하여 왕께 아뢰되 서경에 천도하시면 국운이 융성하고 기업이 완전 하리이다. 묘청의 이 운동은 고려의 모든 적폐를 고치고 나라를 새롭게 만들어 보려는 신운동이다.
왕이 모든 신하를 모아놓고 의논한 결과 김부식 등이 절대 반대하여 이루지 못하였다. 묘청과 백수한 등이 서로 의논하고 인종 13년에 평양에 따로 나라를 세우고 나라 이름을 대위(大爲)라 하고 년호는 천개(天開)라 하고 순민족적으로 새 세상을 만들어 보려하였으나 아직 준비가 부족하고 계획이 서지 못하였다. 조정이 이 변보를 듣고 김부식으로 원수를 삼아 토벌하여 일 년 만에 평정하였다. 이것이 백족들의 특별한 사상으로 일어났고 또 북진주의가 빗어 낸 것이다.
강조와 이자겸의 무리가 불궤를 꾀하여 난을 짓던 야심가들은 일소되고 순민족적으로 나라를 새롭게 하자는 뜻은 그만 이루지 못하였다. 왕은 서경에 유한지 두 달 만에 개경으로 돌아왔다. 묘청이 나라를 세우기 전에 왕께 아뢴 말은 보면 서경 임원역(林原驛)에 지세가 대화(大華)의 세(勢)라고 하였으며 그 곳에 궁궐을 지으면 천하를 통치할 것이고 금국(金國)이 조공하고 따라서 36국이 조공한다고 말씀을 드리었다. 왕은 6년에 다시 서경에 행행하여 시랑 김안과 묘청과 백수한 등을 명하여 임원력의 땅을 살피었다. 다시 김안을 명하여 궁궐 짓기를 착수하고 그 이듬해 2월에 왕은 서경 신궁에 드시고 3월에 건용전(乾龍殿)에 군신을 모으시고 하례까지 받으시고 조금 후에 개경에 돌아 오서서 의논한 결과 반대가 일어나 묘청이 필경 반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