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에게 (1966년 제대하기 전 전령 증 가지고 김성섭 하사와 함께 심척 배 옥선(고종 6촌 동생)
집에 하룻밤 자고 속초 강릉, 설악산 서울 뚝섬 부여 안성 천안을 지나
목포 유달산 광주, 남원으로 긴 여행을 하였음)
0 에게
아슴아슴하지 않은 날에 너로부터
어쩜 광맥의 빛이 보일지 몰랐다
뻐꾹새가 울고 잠자리가 날아드는
긴 생지 장의 여백에서
어쩜 넌 지금의 흩어진 사연이 아니었을까?
단발머리 나부끼며 사색에 잠겼던 강둑
소라껍대기가 되고 싶었던 바닷가에선 지금도
찬연한 도색의 옆에서 봄의 새싹처럼 피어나려던
너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엉뚱한 서신으로 날려 보낸 사연이 어쩜 너의 운명이라도
수많은 별 가운데 자기의 별을 찾으려던
그리워도 아쉬움은 남느니 나같이 오늘의 인연은 없을까만
뽀그르르 의 합창곡 미움은 사랑의 여백이 아닐 끼만
어쩜 넌 흘러가는 하늘빛 기류같이 맑고 푸른 먼 그날 속에서
다시금 남길 수 없는 내 광명의 빛이 보일지도 몰랐다
너에게도 도덕의 미풍이 무너져 버린 건 알 수 없지만
자기를 알아 달라는 사람같이 밉지는 않다
예쁘장한 여고생에게 외출을 통제해야 하는 건
사제 간의 윤리를 져버린 이성을 둔 질투
올바르게 보는 0 주위의 새빨간 혀를 가진
틀림없는 그 사람들일 것이다
기다림이 없다면 어쩜 그것이 최고의 생활일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일이지만 남의 일같이
지겹고 권태롭고 인내심을 가져야 하는 날들이 아니었을까?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겠지만
그러길래 우리에겐 나에게도 기다림이라는 게 있다
어쩜 넌 거기에서 난 새로운 나를 발견 했는지도 모른다.
얄팍한 감정이 요동치기 쉬운 그것뿐만이 아니였다.
진실은 어디까지나 숨어다닌다는 것이기에
어쩜 너에게도 그것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안타깝게 수집의 취미로 봐야 했던건
취미로 부쳐야 했던 것만은 열차의 바퀴가 더 닳은 후에야
남행열차와 북행 열차의 교차점에서
어느 차에던지 올라타 가야만 할 것이다.
어디로 갈 것인가 아직은 모른다.
그러길래 0 에게 0은 무이기에
없는 것에서부터 인간의 창조는 시작되지 않을까?
한쪽 마음만 둬야 할 텐데 두 쪽 다 집착되어 있어 모호할지 모르나?
어쩜 넌 나로부터
낙엽을 후 날려버릴 회오리바람같이 냉갈령이 지속될지도 모른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던 날 넌 긴 성을 쌓아갔고
긴 사연도 어쩜 영원히 읽지 못할 것이 되어 버렸는지도
그러길래 시가 나오고 애착심이 지속하는 것이 아닐까만
어쩜 0은 나와 가장 가까운 것이지도
어쩜 0은 나와 가장 먼것인지도 모른다
진지한 피력은 진정 사라지고 말았는지
영작의 얽매임에 미움만이 여운일까?
애수의 집시여 관동 팔경을 헤매 도는
0 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긴 이별 앞에 서성거리느냐고
아무도 묻지 말아 주었으면 흑백은 아직 멀어 마음 아플 텐데
제2금 강산의 맛을 풍기는
너무나도 자연에 도취하고 싶어 발걸음이 무거웠다.
산새들의 지저귐 알뜰한 산림의 연속
두 처녀를 삼켜버린 비룡폭포도 말이 없구나
아! 자연이 좋아내 여기 설악산 속에서도
미움을 그리워했노라.
신흥사 주지가 세속을 떠난지 몉 년
오늘도 비구니 마음은 아리따운 이성의 그림자를 훔쳐본다.
암담한 석굴에서 애송이 스님의 잿빛이
젊은 향기를 후 날려버리고
계조암 불상 앞에 청춘은 살고 있구나
혼자 걷는 사람같이 외롭지 않다고
내 생각이 여기에 잠깐 묶어 두고
새벽닭이 울기 전 속초 시민들의 자기들마다 떠들어 대는 소리
강원 여객의 차장 신호에 동해 물결 위로 사라지고
붉은 해님이 여인처럼 시원스럽게 다가왔다.
즐겁고 피곤한 여행의 진미를 가져다주는 신비의 광경을
뽀얀 먼지와 함께 어떤 그림자처럼 버스는 달린다.
대낮의 어둠이여 제발 낮잠을 깨워 주었으면
호주머니를 여닫은 것이고 무려 열두 번
혹시나 불안감에 다리를 오므렸다 폈다 햇던 건
뚝섬 강변에서 먼지를 털고
벽돌과 죽은 나무가 무성한 시내에 들어서니
인간이 낳은 구르는 쇳덩이도 많구나
옛말로 시골 촌놈이 어리둥절한
시가지의 변두리는 자꾸 뻗어나가고
아침나절의 긴 행렬이 시발점에서부터 승강구 앞에 줄지어 섰구나
옛 성터에서 보는 서쪽 호수가 안성의 소녀는 너무 어렸다.
호남선 군 객이 도착하는 곳 연산에서 부여길
백마강은 오늘도 흐르는데 옛 인걸들은 찾아볼 길 없네!
뱃사공이 노를 젓는 물 위엔 성터가 실루엣으로 변하고
나그네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건 삼천궁녀 들이여 그대 들은 한국의 여성이었느니라.
비틀거리는 자세로 다시 듣는 건 은 진 기슭에 미륵불은 변함이 없구나
거기서 의자왕과 탁주 한잔을 나누고 싶었는데
또 땅과 하늘은 하나로 만드는 시간 이길래
또 날이 새면 삶의 활동은 계속되는 것
인간들끼리 끼리의 보이지 않는 애
열차는 시발점에서부터 종착역으로 달리는데
어린이가 놓쳐버린 붉은 풍선은 하늘로 솟아 갔다
아늑한 꿈같은 밤엔 머리가 어지러워
몸부림치다 잠들곤 해 버리는 나와 오월의 명상
대기실 잠자리와 같았지만 달리는 것은 있었다.
잠결에 들리는 오메 어쩔 것이야.
내가 들어본 첫날 밤 지도책을 폈다 접었다 몇 번이었던가
어두운 땅덩이 위에서 목포행 완행열차는 미끄러져 간다.
유달산 기슭에 해가 기울기 전 태극호는 달린다.
여기는 광주랑 께
춘향이 초심이 안타깝지만
지금은 이 도령도 없는 남원은 다음으로
제3 국도에 깔린 가벼운 것들
나의 두 굴속까지 쳐들어왔지만, 새끼손가락으로 후벼보니 검게 변해 버렸네
땅과 하늘은 또 하나로 묶여 졌는데
초승달만 살며시 웃는구나!
1966년 오월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