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제주작가 가을호가 배달되었다. 통권 42호로 특집은 ‘제주문단 이면사’를 다루었다.
시 : 김수열 나기철 양영길 문무병 김경훈 김성주 김문택 김순선 현택훈 강봉수 현경희 시조 : 오영호 이애자 홍경희 한희정 김영숙 김진숙 김영란 공감과 연대 : 전북작가회의 이영종 김성철 김다연 안성덕 오창렬 특집 : 나기철 오영호 강덕환 현택훈 수필 : 문영택 동화 : 부복정 김진철(연작) 단편 : 고시홍 김상신 창작 오페라 : 한진오 故 정군칠 시인 1주기 추모 : 유고시 정군칠, 추모시 홍경희 연속기획 - 제주어 산문 : 김성주 우리 함께 여기에 : 김완하 고경숙 서동인 문봉순 이지연 서평 : 이애자 현택훈
제주작가회의에서는 2013 신인상 공모도 하고 있으며 226면에 값은 1만원이다. 늦가을을 맞은 갈대와 같이 올린다.
♧ 삼복을 지나며 - 김수열
비 한 방울 오시지 않는 계사년 여름 삼복 여든 넘은 어머니 덕에 날 수 있었지
마른 살 발라 자리가 되고 여윈 팔다리 발라 한치가 되고 오징어가 되고 듬성듬성 머리칼 베어 된장 버무려 톳장국 되고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어미니 비 한 방울 오시지 않는 여름 삼복 여든 넘은 어머니 덕에 날 수 있었지
♧ 포트루이스港의 양산 - 나기철 -모리셔스 시 1
부둣가 화단 옆에 앉아 양산 들고 햇빛을 가린 청년과 그의 여자 친구 꼭 붙어 있다
그들의 조상이 타고 동남풍 몰아치는 인도양 건너온 범선의 돛이
이제는 양산이 되어
그들의 부끄러움을 살짝 가리고 있다
♧ 치과 가는 날 - 양영길
씹어야 할 일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낙엽 지는 계절에 일교차 심한 초저녁 같은 고독을 씹다가 이빨에 금이 갔다 찬바람이 불 때마다 속 쓰릴 일 생기듯 이가 시렸다
치과에 간다는 게 구린 내 나는 입 ‘아’ 벌린다는 게
썩고 썩어서 더 이상 방법이 없다 너무 늦게 왔다 볼멘소리 들으며 뿌리 깊은 욕심 썩고 썩어 솎아내듯 뽑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뒤로 듣는다
첫눈이 좀 많이 퍼붓던 날 추억의 앨범을 뒤적이는데 옆구리가 시려오듯 또 다른 이빨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 나비 돼 술집에 온 너에게 우린 막걸리를 따랐다 - 문무병
오늘은, 공철이가 왔다. 단옷날 죽어 어제 5월 여드레, 화장하고, 저녁엔 놀이패 한라산 연습실에서 <귀양풀이>해 잘 보낸 정공철이가 오늘, 하얀 나비 한 마리 술집 ‘영자포차’에 날아왔다. 할 말 이신 듯 펠롱펠롱하는, 말이라도 함직한 작은 팥나비 한 마리 흰나비 한 마리는 술집을 하올하올 날아다녔다. 나비는 하올락하올락 흔들렸다. 무게 없어도 슬픈 만큼 흔들렸다. 자세히 보니 가지 않고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내가 말했는가, 수열이가 외쳤는가. 공철이여, 공철이 온 것 닮다. 무슨 말이 경 하고팠을까. 주위를 맴돌며 떠나지 않는 공철이는 밤늦어도 가지 않았다. 애달픈 게 이신 거 닮아. 술집 ‘영자포차’가 미여지뱅뒨게. 죽은 우리 공철이를 만나서 할 말들 하라고 이 나비 우리한테 말이라도 함직 하지 않으냐? 술이라도 한 잔 따라 주어라. 정말 공철이 살아온 것 닮아. 모두들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그날 하얀 나비를 보며 공철이가 무슨 할 말이 있어 ‘미여지뱅뒤’로 가다 돌아왔다 하였다. <귀양풀이>를 해 보냈는데, 뒷날 술자리에 왔으니, 섭섭한 게 있으면 다 풀고 가라고, 핑계에 술만 더 마셨다.
♧ 공철이형 - 김경훈
“경훈아, 술 하영 먹지말고 담배도 하영 핍지 말고 밥 잘 먹곡, 잘 살암시라.”
귀양풀이에서 이정자 심방이 전한 공철이형의 말이다 마음 미어져 줄줄 눈물만 넘쳐났다
마지막 원미*를 드릴 때 목이 아파 먹도 못하고 야위던 모습 생각나 꺽꺽 마음이 목에 걸려 쇳소리가 났다
“씨발놈아, 이 술 먹엉 가라 이 담배도 핍곡, 마지막 이 밥, 하영 먹엉 잘 가라.”
--- * 원미 : 쌀을 굵게 갈아 쑨 죽. 제주 굿에서 조상이나 망자에게 드리는 음식.
♧ 쇠죽은못 - 김성주
소남모루에서 밭을 간다 갈옷의 청상과부 누렁이 밭갈쇠
채찍바람이 진종일 북을 친다 둥 둥 둥 턱, 턱, 턱,
쇠눈 속으로 붉은 해가 진다 채찍바람을 잠재운 저녁 어스름 북을 궁굴리며 연못 속 비밀의 문으로 사라진다
내 고향 하가리 쇠죽은못에 가면 아직도 밭은 숨소리 들린다는 소식, 질근질근 씹으며 소주를 마신다 저녁 어스름에 한 잔 욱신거리는 몸뚱아리에 한 잔 쇠죽은못에게도 한 잔
♧ 들국화 - 김문택
풀잎도 시들은 돌 틈에 저무는 한줌 햇살을 붙들고 해맑게 웃고 있는 들국화야
반들반들 꽃잎은 동그란 사발에 촘촘히 밝힌 햅쌀밥 같고 어느 집 늦둥이 토끼의 귀염 같구나
소박하고 가여운 네 삶이 언제는 내 것이더니 너만 그리 밝게 울고 있느냐
인고의 설움일랑 갈바람에 실어 보내고 우리 함께 크게 웃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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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김창집
첫댓글 귀양풀이의 의미,..... 귀양 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