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 되는 법 서 정 오
옛날 옛적 어떤 부잣집에 팔자 좋은 한량이 하나 있었어. 얼마나 팔자가 좋았느냐면, 날이면 날마다 맛난 음식 배불리 먹고, 철이면 철마다 비단 공단 좋은 옷으로 치장을 하고, 눈만 뜨면 활쏘기 말 타기에 꽃놀이 들놀이 매사냥 술타령으로 세월 가는 줄 몰랐으니 그보다 좋은 팔자가 어디 있겠나. 그런데 이 한량, 아무리 좋은 놀음이라도 하루 이틀이라야 말이지, 허구한 날 놀던 놀음 또 놀고 하던 놀음 또 하다 보니 어지간히 지겨웠나 봐. 나오느니 하품이요 내놓느니 푸념이라, 하루는 생각하기를, “세상에는 신기하고도 재미난 일이 널렸을 텐데, 내가 이렇게 한곳에 틀어박혀 있을 일이 아니지.” 하고서는, 그길로 들메끈 조이고 집을 나섰어. 신기하고 재미난 일을 찾아 조선팔도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단 말이지.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지나는 말로 듣자니, 강원도 금강산 일만 일천 봉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에 도술 잘 부리는 영험한 도사가 숨어 산다고 하거든. 그 말을 들으니 눈이 번쩍 띄고 귀가 솔깃해지네. “옳다구나. 내 이럴 게 아니라 그 도사를 찾아가 도술이나 배워 보자. 도사가 되어 도술을 부리면 그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겠나.” 그길로 금강산에 들어가 여러 날을 헤맨 끝에, 일만 일천 봉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에 숨어 사는 도사님을 만났어. “도사님, 도술 좀 가르쳐 주십시오.” “도술을 배우겠다고? 그걸 왜 배우려고 하는가?” “맛난 음식도 물리고 좋은 옷도 싫고 온갖 놀음에도 질려, 세상에 신기하고 재미난 것 찾다 보니 도술만큼 좋은 것이 없을 것 같아 그럽니다.” “허허, 세상에는 힘들여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너는 빈둥거리고 노는 데 질렸단 말이냐? 그 죄가 몹시 크고 무거우니, 그 죄 씻기 전에는 얼씬도 마라.” “그럼 저는 도술을 못 배우는 것입니까? 무슨 방도가 없나요?” “앞으로 십 년을 쉬지 않고 일하되, 세 끼 건너 한 끼 먹고 사흘 건너 한 번 자고 석 달 건너 하루 쉬며 일한다면 모를까, 그러기 전에는 어림도 없다.” 이 한량, 도술 배우고 싶은 욕심에 그날부터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는데, 세 끼 건너 한 끼 먹고 사흘 건너 한 번 자고 석 달 건너 하루 쉬며 죽어라고 일을 했네. 평생 일 안 하고 빈둥빈둥 놀기만 하던 사람이 쉬엄쉬엄 일을 해도 쉽지 않을 텐데, 허리가 휘도록 뼈가 빠지도록 일을 하려니 그 고생을 어찌 말로 다 할까. 하지만 그저 도술 배우려는 마음 하나로 참고 또 참으며 일해서 드디어 십 년이 지났어. 그래 그 길로 다시 도사를 찾아갔지. “도사님 말씀대로 세 끼 건너 한 끼 먹고 사흘 건너 한 번 자고 석 달 건너 하루 쉬며 십 년 동안 일하고 왔으니 이제 도술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것으로 빈둥거리고 논 죄는 씻었다마는, 너는 본디 부자로 살면서 남을 돕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느냐? 그 죄도 크고 무거워서 안 되겠다.” “아니, 남한테 해 끼친 일 없이 내 돈 내가 쓰고 살았는데도 죄가 된단 말입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죄이니라.” “그럼 어찌하면 좋습니까?” “앞으로 십 년 동안 세상을 돌아다니며 남을 돕되, 먹을 것이 생기면 남 먼저 먹인 다음에 네가 먹고, 입을 것이 생기면 남 먼저 입힌 다음에 네가 입고, 돈이 생기면 남 먼저 준 다음에 네가 가지기를 십 년 동안 한다면 모를까, 그러기 전에는 어림도 없다.” 한량이 그날부터 여기 저기 떠돌아다니면서 남 돕는 일을 했어. 음식이 생기면 반드시 굶주린 사람 먼저 먹인 다음에 제가 먹고, 옷이 생기면 반드시 헐벗은 사람 먼저 입힌 다음에 제가 입고, 돈이 한 푼이라도 생기면 반드시 가난한 사람 구제부터 했지. 이러면서 십 년을 지내고 거지 중에 상거지가 돼서 다시 도사를 찾아갔어. “도사님 말씀대로 남 돕는 일을 십 년 동안 했습니다. 이제 도술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것으로 자기만 돌본 죄는 씻었다마는, 아직 다른 죄가 남아 있어서 안 되겠다.” “아이고, 또 무슨 죄가 남았다고 그러십니까?” “네가 세상을 돌아다닐 적에 남의 논에 있는 나락 이삭 한 움큼을 훑어 먹은 적이 있지 않느냐? 농사꾼이 피땀으로 가꾼 곡식을 훔쳐 먹은 건 죄 중에 큰 죄니라.” “그땐 하도 배가 고파서 그랬습니다.” “세상에 배고픈 사람이 어디 너뿐이며, 그 사람들이 다 너처럼 한다더냐?” “그럼 이제 어찌하란 말입니까?” “어찌하긴 뭘 어찌해? 소가 되어 남의 농사일을 십 년 동안 해 주면 모를까, 그러기 전에는 어림도 없다.” 도사가 지팡이 한 번 휘둘러 소로 만들어 주니, 그 날부터 한량은 소가 되어 남의 집 농사일을 했어. 소라고 하는 것이 말을 할 줄 아나, 글을 쓸 줄 아나. 그저 주인이 몰면 모는 대로 가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고, 때리면 맞고 차면 차이고, 이러는 거지. 그렇게 온갖 설움 받아 가며 일하기를 십 년 동안 했어. 십 년을 채우고 나니 저도 모르게 도로 사람이 됐는데, 사람이 되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제 제 몸도 옛날 자기 몸이 아니고, 마음도 옛날 자기 마음이 아니야. “아이고, 그동안 남의 집 머슴살이 십 년에 떠돌이 십 년에 소가 되어 십 년, 어느덧 삼십 년이 지났구나. 그 사이에 검은 머리 백발 되고 곧은 허리 굽어가고, 그 좋던 청춘은 어느새 늙은이가 되었네 그려. 이제 맛난 음식은 입이 안 받아 못 먹겠고, 좋은 옷은 몸에 안 맞아 못 입겠고, 꽃놀이 술타령은 누가 하라고 굿을 해도 못 하겠네.” 한탄하며 그 몰골로 다시 도사를 찾아갔어. “도사님 말씀대로 소가 되어 남의 농사일을 십 년 동안 해 주고 왔습니다. 이제 도술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니까 도사님 하는 말이, “너는 이미 도사가 되었는데, 무슨 도술을 또 배우려고 하느냐?” 하거든. 한량이 놀라서 되물었지. “예? 제가 이미 도사가 되다니요? 여태 굶주리고 헐벗은 채 남 도와주느라, 소 되어 뼈 빠지게 일하느라 도술 하나 배운 적 없는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러니까 도사님이 허허 웃으면서, “그게 바로 도술이요, 그렇게 사는 사람이 바로 도사니라. 뜻을 이루었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거라.” 하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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