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ert, Ivanovich,Kabalevsky, Ketelbey, Khachaturian, Langgaard,
Lehar, Leoncavallo, Ligeti
(1) 이베르(Jacques Ibert, 1890~1962프랑스)
1890년8월5일에 파리에서 태어나,파리음악원에서 폴 비달에게 음악을 배웠으나,세계1차대전의 발발로 음악을 중단하고 해군장교로 복무하였다. 이 때 배를 타고 지중해 연안을 돌아다니면서 이국의 진기한 풍물을 접하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이 인상이 훗날 교향 모음곡‘기항지’의 제재가 되었다).
그후 학업을 계속하게 되어1919년에는 한번 만에 로마대상을 받았다. 1937년 로마에 있는 프랑스 아카데미(French Academy)의 예술 감독을 맡아 세계2차대전 기간을 제외한1960년까지 역임했다.
그러나 또 다시 세계2차대전의 발발로 들어선 친 나치정부인 비시(Vichy)정권이 그의 활동을 금지하자 스위스로 망명하였다가, 1944년에 드골 장군의 입국 허락으로 귀국하여 음악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
1955부터1957년 그의 건강이 악화 될 때까지 파리오페라와 오페라코믹극장의 지배인으로 활약하다가 은퇴한 뒤1962년에71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사망하였다.
(2) 이바노비치(Iosif Ivanovich,1945?~1902루마니아)
(3) 카발레프스키(Dmitry Kabalevsky, 1904~1987러시아)
소련의 작곡가 중에서 가장 이색적인 존재로서,유머와 위트에 넘치고 또 어린이들 세계로 통하는 작품을 많이 썼다. 1904년12월18일(또는30일)에 레닌그라드에서 출생했는데,하차투리안과는1년6개월 차이가 난다.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작곡을 미야스코프스키에게,피아노를 골든바이젤에게 배웠다.또한「제1교향곡」은1932년,「제2교향곡」은34년에 완성했으며,가장 큰 규모의 작품인「제3교향곡」은1933년 작으로,이것은‘레닌에의 레퀴엠’이라 일컬어지고 있다.「제4교향곡」은1956년에 완성했고,그 밖에 피아노 협주곡·바이올린 협주곡·첼로 협주곡 등이 있다.
(4) 케텔비(Ketelbey,Albert William ; 1875~1959,영)
영국의 버밍검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작곡에 천재적인 능력을 보여주면서, 11세 때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는 엘가의 칭찬을 받았다. 13세 때 빅토리아여왕 장학금을 얻어 런던의 트리니티 칼리지로 진학16세 때에는 센트 존 교회의 오르간 주자가 되었다.그 뒤 피아노,현악기 그 밖의 연주를 몸에 익혀 통속적인 관현악곡의 작곡으로 이름을 떨쳤다.각 악단과 극장 등의 지휘자를 역임한 뒤 작곡가로서 관현악에 의한 묘사적인 라이트뮤직에 전념하게 되었으며 영국의 화이트 섬에서84세의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에는「페르시아의 시장에서」,「중국의 사원의 뜰에서」등,그 밖에도1910년대부터50년대에 걸쳐 작곡한 관현악곡에는 동양이나 동화 등을 테마로 한 환상적인 묘사곡이 많다.
(5) 하차튜리안(Aram Ilyich Khachaturian 1903~1978러)
조지아 티플리스(트빌리시)에서 가난한 아르메니아인 제본공(製本工)의 아들로 태어나 고향에서 일하다가1921년 모스크바로 이사하여,그네신음악원(Gnesin Institute)에서 첼로와 작곡을 배우고, 3년 뒤에는 모스크바 음악원으로 옮겨 마이스코브스키에게 작곡을 배웠다.
1954년에는 소련 국민예술가, 1963년 아르메니아 과학아카데미아 회원이 되었다.소련 평화위원회 회원으로 사회운동에도 참여하는 한편,모스크바음악원과 그네신음악원의 교수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지휘자로도 활약하였다.
대표작에 발레모음곡「가이느(Gayane)(1942)」 「스파르타쿠스」등이 있다.
(6) 랑고르(Reud Langgaard. 1893~1952덴마크)
1893년 코페하겐에서 덴마크 왕립 실내음악 악단의 둘 다 피아니스트인 아버지 지그프리트와 어머니 엠마사이의 독자로 태어났다. 5세 때부터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아버지와 가정교사에게 피아노를 배워서, 7세에 이르러서는 슈만의‘다빗 동맹행진곡’과 쇼팽의‘마주르카’를 연주하기에 이르렀다.그 때부터 피아노 소품을 작곡하고 오르간을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10세 때부터 구스타브 헬스테드에게 오르간을 공부하면서 발비(Valby)에 있는 예수유치원의 오르가니스토 활동했으며,왈립 오케스트라 단원이였던 페터센(Petersen)에게 바이올린을 사사했다.
11세에 코펜하겐의Frederikskirken (Marmorkirken)에서 첫 공연을 하였으며, 12세때부터 호네만(Horneman)과 로젠베르크(V. Rosenberg)에게 음악이론을 배웠다. 13세에2개의 피아노 소품과2개의 가곡을 작곡했고,한달간 칼 니엘센에게 대위법을 배웠다.
1년 후에는 코펜하겐의 연주회에서 그가 작곡한 합창곡‘Musae triumphantes’이 최초로 공연되었으며, 19세 때인1913년에는「교향곡 제1번‘벼랑의 목가(Klippen Pastorale)’」가 베르린에서 피들러(Max Fiedler)지휘로 베르린필하모니에 의해 공연되었다.
1914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1915~1917에 코펜하겐의 교회에서 보조 오르가니스트로 일했 다. 1922년에는 콘스탄체(Constance)가 코펜하겐의 그의 집에 들어와 어머니와 함께 살다가1926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그 다음 해에 결혼하였다.
30세 때부터 정부 보조금을 받긴 했으나 별다른 직장 없이 살다가46세 때에야 겨우 덴마크의 레베(Ribe)에 있는 천주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일하다가 작곡가로 인정도 받지 못한채59세의 아까운 나이로 타계하였다.
(7) 레하르(Franz Lehar :1870~1948헝가리)
1870년 헝가리의 코마롬에서 태어났다.취주악단의 단장이었던 아버지로부터 기초교육을 받고,1882~88년까지 음악원에서 배웠는데 학생시절에 두 개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하여 드보르작의 눈에 띄어 작곡가가 되라는 권유를 받을 정도였다.
졸업 후 에르벨페르트 극장의 제1바이올린을 맡았으나 작곡할 여가가 없어서 아버지의 악단의 악장 차석이 되었고,1890년11월에 그가 쓴 희가극「빈의 여자들」이 빈극장에서 상연되어 큰 인기를 얻게 되자 작곡엔만 전념하게 되었다.
희가극「메리 위도우」를 비롯한 많은 희가극·교향시·피아노 소나타를 썼으며,「메리위도우」를 필두로 백만장자가 된 그는 왕후를 능가하는 생활로 만년을 보냈다.음악의 보수로써 이토록 호화로운 생애를 보낸 것은 아마도 레하르가 최초일 것이다.
(8) 레온카발로(Leoncavallo, 1857~1919이탈리아)
1857년4월23일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태어나서, 1919년8월9일 프로렌스에서62세의 생애를 마쳤다.처음에 피아노를 배우다가 후에 나폴리 음악원에 입학하여,디플로마를 받고 졸업했다.볼로냐에서 처녀작 가극「차터톤」을 상연,그 이래 가극계에 투신하여 유럽 각국을 편력하며 차츰 명성을 높였다.「팔리아치」는1892년에 상연되어,유명한 테너 가수 카루소가 이 가극을 결정적으로 한층 유명케 했다.
(9) 죄르지 리게티(György Ligeti,1923~2006 헝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