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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聖誕)
매년 12월25일은 교회 다니는 사람이든지 안 다니는 사람이든지 기다려지는 날입니다.
왜 기다릴까요?
연인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하려고,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선물 받으려고, 나이를 좀 먹은 사람들은 글쎄요.
한 살 더 먹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시간은 가더라.
그래서 이 날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사람은 각자 이유가 있어서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기독교인들에게 성탄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2,000년 전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가 떠오르고 아기 예수께 경배 드리는 동방박사 세 사람들이 생각납니까. 성경에 마굿간이 없는데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이 마굿간이라고 지금도 설교하는 목사님들이 참 많습니다.
동방박사 세 사람이 예수님께 경배 드리는 장면을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하지 못하지만 예전에 주일학교에서 성극이라해서 참 많이 했지요.
성경에도 없는 동방박사 세 사람. 그러고 보면 교회다는 사람들, 믿는 사람들은 성경대로 믿지 않고 전해져 내려온 전통이라고 할까요.
이런 영향을 많이 받아 성경에도 없는 설교를 하고 믿기도 합니다.
오늘 주제가 성탄입니다.
진짜 성탄의 의미를 알고 있는 기독교인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면 ……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성경대로 아는 것이 성탄 아닐까요. 왜 예수님이 오셨을까.
이것도 각자 신앙의 의미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이는 병을 고치기 위해 오셨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오셨다고, 어떤 이는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해, 또 어떤 이는 세상 물질을 나에게 주어 부자 만들어 주시기 위해 오셨다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듯 각자 생각하는 대로 성탄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한 번 보십시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예수님은 당신이 오신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시면서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시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과정부터 생각해 봅시다.
1960∼70년 경 한국에서 유명한 신학박사인 박00박사의 창세기 주석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이 분의 주석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천국에 세 보좌가 있고 중앙에는 성부 하나님이 앉아 계시고 오른편에는 성자 예수님이, 왼편에는 성령 하나님이 앉아 계시면서 이 세 분은 동등한 지위와 위치를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만들었는데 이 만드신 아담과 하와가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자 하늘에 비상 회의가 열리고, 이제 어떻게 할꼬! 이 때 성자 예수님이 당신이 입고 있던 왕관과 왕복을 벗고 성부 하나님께 “내가 세상에 내려가서 피를 흘려 죽어서 이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하고 내려오신 분이 예수님이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위해 결정된 시간이 이 때이겠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자 예수님이 오시기로 됐을까요.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딛1:2)
요10:10 “생명을 얻게”하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고 이 생명이 바로 영생입니다.
따라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자 예수님이 오시기로 예정되신 것이 아닙니다.
이 분의 신앙관에 대해서 성경과 맞지 않는 것이 있는데 첫 째는 여자가 선악과를 먹을 줄 몰랐을까?
성부 하나님은 신(神)인데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둘째 뱀이 여자를 유혹하고 먹는 순간 하나님이라면 먹지 말라고 하실 수 없었는가?
“여자야 먹지 마라”, 아담에게는 “이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하신 하나님이 왜 먹지 말라는 말씀을 못하셨는가? 셋째 신인데 하늘에 비상 회의가 열리 것도 참 이상합니다.
전지전능한 신(神)이 결국 뱀에게 뒷통수 얻어맞아 회의를 하는 꼴이 참으로 신답지 않습니다.
이 분의 성탄은 아담이 선악과 먹은 문제를 해결하시려 오셨고 그 해결이 피를 흘리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피를 흘리셔야 됩니다.
그러면 피를 흘리셔야 되는 목적이 단순하게 아담이 먹은 선악과를 해결하기 위해 피를 흐리셨다면 가장 중요한 문제는 보지 못한 것입니다.
2. 예수님이 이 땅에 성탄하신 목적에 대해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한 알의 밀”이신 예수님은 죽으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죽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 이유는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그 분이 피를 흘리신 이유와 죽으신 이유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예수님의 말씀이 있는데 현재 기독교에서 말하는 교리는 “한 알의 밀”과 “많은 열매”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한 알의 밀은 예수님이 맞는데 많은 열매는 한 알의 밀과 다르다는 것이 기독교의 정통 교리입니다.
그래서 성탄은 2,000년 전 아기 예수로 오신 그 분에게만 국한시키게 되었고 2,000년 전 오신 그 분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리고 있습니다.
혹시 제 생각이 잘못됐다고 보십니까?
“한 알의 밀”과 “많은 열매”는 똑같습니다.
밀을 심으면 밀이 나오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속담에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 난다”는 말처럼 콩을 심었는데 팥이 나올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한 알의 밀을 심었는데 쌀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세상 이치에 벗어나는 논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이것이 정통이라고 여기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심었으면 예수님과 똑같은 존재가 나온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사람의 생각을 성경보다 더 위에 두고 “어떻게 예수님과 똑같은 존재가 나올 수 있느냐.
이단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성탄은 2,000년 전 아기 예수로 태어나신 것을 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똑같은 존재가 나오는 것을 축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10:10절에 예수님이 오신 이유가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더 풍성히 주심
“생명을 주시는 것”이 먼저입니다.
생명을 주시기 위해 그 분이 한 알의 밀로 오셨고 많은 열매 곧 한 알의 밀과 똑같은 밀을 얻기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두 번째 오십니다. 휴거시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3:4)
이 말씀을 주님이 공중에 재림하시고 천년 왕국을 이루기 위해 먼저 휴거됐던 자들과 지상에 강림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우리 생명이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언제 그리스도가 당신의 생명이 되셨습니까?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은 적 있습니까?
요10:10절과 요12:24절, 골3:4절 말씀을 연결해서 보시면 답이 나옵니다.
언제 생명이 되는 것일까?
내가 육체를 가지고 살아 있을 때, 주님이 하신 말씀을 가감없이 믿을 때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두 번째 내 안에 들어오실 때 내 생명이 되십니다.
내 안에 거룩한 탄생이 일어났습니다.
천사들이 또 한명의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이것이 지금 나에게 이루진 성탄입니다.
이제 생명을 받았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 풍성이 얻는 것”에 나아가야 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더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
생명을 주셨으면 됐지 왜 더 풍성이 주실까요.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하라고 그러시네요.
예수님보다 더 큰 일!!! 혹시 예수님은 죽은 자를 세 명 살리셨으니까 네 명 살리면 예수님보다 더 큰 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은 오병이어(五餠二魚)로 오 천명 먹이고 12 광주리 남기셨으니까 우리는 일병일어로 만 명 먹이고 30 광주리 남기면 예수님보다 더 큰 일 하는 것일까요.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8:17)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3:29)
후사가 되는 것, 유업을 잇는 것이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하는 것입니다.
후사는 ‘후계자’를 말합니다.
유업을 잇는 것은 아버지가 당신의 가업을 물려줄 때 약속한 아들, 아버지보다 더 번창하게 할 수 있는 아들에게만 유업을 물려줍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유업을 물려 받은 것이 아니라 믿는 내가 하나님 아버지의 유업을 물려 받아서 아버지의 일을 땅에 살면서 성공시키는 것이 예수님보다 더 큰 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한 알의 밀이 되시고 믿는 나도 예수님과 똑같은 밀이 될 때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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