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가요 정읍사(高麗歌謠 井邑詞)
1. 출처(出處)
백제(百濟)부터 구전(口傳)되어 왔다. ≪고려사(高麗史)≫에 춤과 노래의 기록(記錄)이 있으며,
《악학궤범(樂學軌範)》에 한글로 가사(歌詞)가 실려 있다.
※ 아래의 7. 전거(典據)에 원문(原文)과 해석(解釋)을 달았다.
2. 작자(作者) :미상(未詳)
3. 연대(年代) :삼국시대(三國時代)의 백제
4. 구성(構成) :3련6구(3聯6句)
5. 내용(內容)
(1) 원문(原文) : 《악학궤범》
前腔 하노피곰도샤어긔야머리곰비취오시라어긔야어강됴리
小葉 아으다롱디리
後腔 全져재녀러신고요어긔야즌드욜셰라어긔야어강됴리
過篇 어느이다노코시라
金善調 어긔야내가논졈그셰라어긔야어강됴리
小葉 아으다롱디리
(2) 해석(解釋)
- 제1연
달님이시어 높이높이 돋으시어 멀리멀리 비추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 제2연
온 시장을 다니시나요 어긔야 진 곳을 디디올세라
어긔야 어강됴리
- 제3연
어느 곳이든 놓아버리시라
어긔야 내가 가는데 저물을세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 각각의 음절(音節)의 풀이에 여러 가지 견해(見解)가 있다.
하 : ‘하’가 존칭이므로 달님이시어
노피곰 : ‘곰’이 강조하므로 높이높이
도샤 : 돋으시어
어긔야 : 가락을 맞추기 위한 조흥구(助興句)
머리곰 : 멀리멀리
비취오시라 : 비추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 가락을 맞추기 위한 조흥구
아으 다롱디리 : 가락을 맞추기 위한 조흥구
전져재 : 온 시장에, 전주 시장에
녀러신고요 : 녀러이신고요, 다니시는가요, 가시던가요
즌 : 진 곳을, 흙탕물이 고인 곳을
드욜셰라 : 디디실세라, 디디시면 어쩌나, 디디실까 두려워라 : 의구형(疑懼形)
어느이다 : 어느 것이나 다, 어디에나, 어쩌다가, 어느 누구에다, 어느 것에다
노코시라 : 놓고 오시라, 놓으시리라, 놓고 계신가요, 놓으십시오, 놓고 계십시오, 놓여져라, 놀고 계신가요
내 : 나의, 내 사람이
가논 : 가는 곳, 놀던 곳
졈그셰라 : 저물을세라, 저물게 할세라, 저물게 될세라, 잠길세라, 빠질세라
※ 이에 따라 가요(歌謠) 전체의 풀이에도 여러 가지 견해가 있으나, 그 열거(列擧)는 생략한다.
6. 정리(整理)
(1) 백제로 밝혀진 하나 뿐인 가요이며, 한글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가요라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그러나 전주(全州)라는 지명(地名)을 근거로 신라 경덕왕(新羅 景德王) 이후의 민요(民謠)라는 견해가 있으며,
무고(舞鼓)의 이혼(李混)과 관련하여 고려 충렬왕(高麗 忠烈王) 무렵에 만들어진 민요라는 견해가 있다.
(2) 삼국속악(三國俗樂)으로 전승되어 고려(高麗)에서는 무고정재(舞鼓呈才)에서 가창(歌唱)되었다.
조선(朝鮮)에서는 나례(儺禮)에서 처용가(處容歌), 봉황음(鳳凰吟), 삼진작(三眞勺), 북전(北殿) 등과 함께 가창되었으나
(※), 중종(中宗) 때에 궁중(宮中)에서는 폐지하고(※) 새로 만든 악장(樂章)인 五冠山(오관산)으로 대체되었으며,
다만 《대악후보(大樂後譜)》와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등에 이후에도 계속 연주되었던 것으로나타나고,
민간(民間)에서는 아롱곡(阿弄曲)(※)으로 바뀌어 불러졌다.
※ 다음에 이 블로그에 올려질 ‘처용가(處容歌)’ 참조
※ 중종실록(中宗實錄) 13년 4월 : 대제학(大提學) 남곤(南袞곤)의 상소(上疏)에 따른 것이다.
※ 아롱곡(阿弄曲)
月阿高高的上來些(월아고고적상래사)
遠遠的照着時阿(원원적조착시아)
漁磯魚堪釣唎(어기어감조리)
阿弄多弄日日尼(아롱다롱일일니)
달아 높이높이 솟으사
멀리멀리 비추시라
어기어감조리
아롱다롱닐닐리
《투호아가보(投壺雅歌譜)》는 투호를 하면서 즐기는 노래를 모아 놓은 책으로,
투호를 하여 진 쪽의 동기(童妓)의이마에 아롱다롱 칠을 하고 야유하는 놀이가 있었다고 한다.
(3) 전강(前腔)은 앞마디이고 후강(後腔)은 뒷마디이며, 소엽(小葉)과 과편(過篇)과 금선조(金善調)는 장단(長短)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수제천(壽齊天) : 아악(雅樂)에 속하는 국악합주곡(國樂合奏曲)으로 정읍(井邑)
또는 빗가락정읍(橫指井邑]이라고도 한다.
(4) 전강과 소엽을 제1련, 후강을제2련, 과편과 금선조와 소엽을 제3련으로 보는데, 후렴(後斂)을 제외하면
3련6구가 되고 또한 그 음절이 3음 또는 4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시조(時調)의 근원(根源)으로 보기도 한다.
(5) 후렴을 보면 제1련과 제3련은각각 ‘어긔야 어강됴리’ 와 소엽 ‘아으 다롱디리’로 되어 있으나,
제2련은 ‘어긔야 어강됴리’뿐이고 소엽 ‘아으 다롱디리’가 없다. 이에 대하여는 ‘후강’이라는 악조(樂調)의 이름에
‘전(全)’을 붙여서 ‘아으 다롱디리’가 없는 것이 완전하다는 뜻으로 ‘후강전(後腔全)’이라고 표시하였다고 하고 그에 따라
제2련의 첫 음절을 ‘져재’로 보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다른 어떠한 문헌(文獻)에도‘후강전’ 이라는 악조가 보이지 않고,
나아가 악률(樂律)로도 소엽 ‘아으 다롱디리’가 있어야 어울리며, 특히 후렴이 있는모든 고려속요(高麗俗謠)는 모든 연에
후렴을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본래 후렴이라는 것은 같은 것을 되풀이하는 것이어서, 후강에서는소엽 ‘아으 다롱디리’가
전승되는 동안에 탈락하였다고 보아야 하므로 ‘후강’을 악조의 이름으로 하고 그에 따라 제2련의 첫 음절을 ‘全져재’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6) 성격(性格)은 서정적(抒情的)이고, 비유적(比喩的)이다.
서정 : 지아비를 향한 아내의 감정(感情)을 읊고 있다.
달 : 달은 모든 것을 아는 절대적 존재를 상징하며, 소망(所望)과 기구(祈求)의 대상인
민속신앙(民俗信仰)과 연결된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즌 데: 아내의 입장에서 지아비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정황(情況)을 상징한다는 견해가 있다.
어느이다 : ‘어느 것’은 ‘재물(財物)’이아닌 ‘지아비의 불안스러운 행적(行跡)’인 동시에
‘아내 자신의 고뇌(苦惱)’로 보는 견해가 있다.
내 :‘내’가 아닌 ‘나의 님’으로 이해하는 것은 부부(夫婦)가 일체(一體)임을 나타낸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내 가논 : ‘지아비의 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졈그셰라 : 저물게 되는 것은‘날(日)’이나 ‘달(月)’이 아니라 ‘지아비의 마음’이라는 견해가 있다.
(7) 제재(題材)는 지아비에 대한염려(念慮)와 기원(祈願)이다.
제1련은 달에 행상(行商)을 나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지아비의 무탈(無頉)을 간구(懇求)한다.
제2련은 지아비의 소식을 몰라 불안(不安)과 의념(疑念)을 떨치지 못하고 부심(腐心)한다.
제3련은 지아비의 신변에 대한 걱정을 걷잡을 수 없게 되어, 다 놓아두고 어서 돌아오라고 애원(哀願)한다.
전체적으로 지아비의 안녕(安寧)을 기원하는 아내의 간절한 심정(心情)과 음성(音聲)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8) 감정의 함축(含蓄)과 표현의 절제(節制))로 아내가 지아비를 기다리는 지순(至純)한 사랑이 애틋하게 느껴진다. 《고려사》의 배경설화(背景說話)에 나타나듯이 행상을 나간 지아비의 야행(夜行)의 위험을 염려하는 아내의 정성을 나타낸 사랑의 노래로서 정절(貞節)의 미덕(美德)을 지닌 전통적 여인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렇다면 ‘全져재 녀려신고요’를 ‘아예 시장에 사시는가요’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는 《중종실록(中宗實錄)》에 음사(淫詞) 내지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라하여 폐지되었다고 나타나듯이 집을 나가 오래 돌아오지 않는 지아비가 객지(客地)에서 여인(女人)과 놀아나거나 색가(色家)에 빠지지나 않을까 하는 근심과 질투를 표현하는 비속(卑俗)한 노래로 보거나, 여인의 육체(肉體)를 다룬 음란(淫亂)한 노래로 보는 견해가 있다. 제목(題目)의 정읍(井邑)을 지명이 아니라 ‘샘골’로서 여성(女性)의 성기(性器)를 상징하며, ‘즌’는 주색(酒色)이나 국부(局部)를 가리키는은어(隱語)이며, ‘드다’는성교(性交)를 나타내는 방언(方言)이라고 한다. 그렇다면‘내 가논ᄃᆡ 졈그셰라’를 ‘내가 가운데를 잠그라고 할세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전체를 종교적(宗敎的) 기원(祈願)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달에 환하게 비추어 달라고 기원하는 제1련은 물론이고, 제2련도 진 곳을 디디지 않게 해달라고 하는 기원이며, 제3련도 ‘내 가논’를 ‘내가 살아가는 인생(人生)’으로 보아 저무는 일이 없게 하여 달라고 하는 기원이라고 한다.
※ ‘녀다’를 ‘살다’ 또는 ‘지내다’로풀이한다. : 이 블로그의 ‘동동(動動)’ 참조
7. 전거(典據)
(1) ≪高麗史≫ 卷七十一 志第二十五 樂二 三國俗樂 百濟(《고려사》 권71 지제25 악2 삼국속악백제)井邑
井邑全州屬縣縣人爲行商久不至其妻登山石以望之恐其夫夜行犯害托泥水之汚以歌之世傳有登岾望夫石云
정읍
정읍전주속현현인위행상구부지기처등산석이망지공기부야행범해탁니수지오이가지세전유등점망부석운
정읍
정읍은 전주에 속한 현이다. 현의 사람이 행상을 나가 오래 동안 돌아오지 않으니, 그 아내가 산의 돌에 올라가 기다리면서
그 지아비가 밤에 다니다가 해를 입을까 두려워서 진흙탕의 더러움을 빌어 노래하였다.세상에 전하기를 고개 위에 망부석이
있다고 한다.
※ 범해(犯害) : ‘해를 당하는 객체(客體)’가 아니라 ‘해를 범하는 주체(主體)’로 보기도 한다.
즉 안전(安全)의 우려(憂慮)로 보는견해와 외도(外道)의 의심(疑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 등점(登岾) : ‘고개에 올라’이나, 정읍 북쪽의 지명이라는 견해가 있다.
(2) ≪樂學軌範≫ 卷三 高麗史樂志俗樂呈才 舞鼓(《악학궤범》 권3 고려사악지속악정재 무고)
※ ≪高麗史≫ 卷七一 志第二五 樂二(《고려사》 권71 지제25 악2)의 무고(舞鼓)· 동동(動動)·
무애(無㝵)의 부분을 ≪악학궤범≫에 전게(轉揭)한것이다.
舞隊(皂衫)率樂官及妓(樂官朱衣妓丹粧)立于南樂官重行而坐樂官二人奉鼓及臺置於殿中諸妓歌井邑詞鄕樂奏其曲妓二人先出分左右立於鼓之南向北拜訖跪歛手起舞俟樂一成兩妓執鼔槌起舞分左右俠鼓一進一退訖繞鼓或面或背周旋而舞以槌擊鼓從樂節次與杖鼓相應樂終而止樂徹兩妓如前俛伏興退舞鼓侍中李混謫宦寧海乃得海上浮査制爲舞鼓其聲宏壯其舞變轉翩翩然雙蝶繞花矯矯然二龍爭珠最樂部之奇者也
무대(조삼)솔악관급기(악관주의기단장)입우남악관중행이좌악관이인봉고급대치어전중제기가정읍사향악주기곡기이인선출분좌우립어고지남향북배흘궤렴수기무사악일성양기집고퇴기무분좌우협고일진일퇴흘요고혹면혹배주선이무이퇴격고종악절차여장고상응악종이지악철양기여전부복흥퇴무고시중이혼적환영해내득해상부사제위무고기성굉장기무변전편편연쌍접요화교교연이룡쟁주최악부지기자야
춤의 무리(검은 장삼)가 악관과 기녀(악관은붉은 옷, 기녀는 단장)들을 거느리고 남쪽에 선다. 악관들이 두 줄로 앉으면,
악관 2인이 북과 받침을 들어다 대전의 가운데에 놓는다. 모든 기생이 정읍사를 노래하며, 향악은 그 곡을 연주한다.
기생 두 명이 먼저 나가 좌우로 나뉘어 북의 남쪽에 서서 북쪽을 향하여 절을 한다. 끝나면 꿇어 염수하고 일어나서 춤춘다.
악이 한 번 끝나면 두 기생이 북채를 쥐고 일어나 춤을 추는데, 좌우로 나뉘어 북을 끼고 한 번 나아갔다 한 번 물러났다 한다.
끝나면 북을 돌며 마주보기도 하고 등지기도 하며 돌면서 춤추고, 북채로 북을 치는데, 악의 절차에 따라 장구와 서로 응하다가
음악이 끝나면 멈춘다. 악을 다 마치면 두 기생은 앞에서 처럼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물러간다. 무고는 시중 이혼이 영해에
귀양가서 벼슬을 하였는데 이에 바다에서 뗏목을 얻어 무고를 만드니, 그 소리가 굉장하였다. 그 춤이 바뀌어 가면 한 쌍의
나비가 꽃을 감도는 듯 너울대고 두 마리의 용이 구슬을 다투는 듯 씩씩하니 악부의 기묘한 것으로 으뜸이다.
※ 원문에서 ‘분좌우협고(分左右俠鼓)’의 ‘俠’은 ‘挾’을 오기(誤記)한 것으로 본다.
※ 고려시대의 속악정재인 무고·동동·무애의 세 가지 가운데에서 무고만 현재까지 국립국악원(國立國樂院)에 전승되고 있다.
※ 무고의 고(鼓)와 대(臺)에 대하여는 《악학궤범》 권8(卷八)의 향악정재악기도설(鄕樂呈才樂器圖說)에 도면(圖面)과
설명(說明)이 있다.
※ 염수(斂手) : 무용에서 손을 여미는 동작
※ 李混(이혼 : 1252∼1312) : 《고려사》에열전(烈傳)이 있는 문신(文臣)으로 충렬왕(忠烈王)과충선왕(忠宣王) 때에
재상(宰相)을 지냈다. 예안 이씨(禮安李氏)의 시조(始祖)이고, 호는 몽암(蒙菴)이며, 시호(諡號)는 문장(文莊)이다.
※ 영해(寧海) :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 부사(浮査) : 떠있는 뗏목
(3) ≪樂學軌範≫ 卷五 時用鄕樂呈才圖儀 舞鼓(《악학궤범》 권5 시용향악정재도의 무고)
樂師帥樂工十六人奉鼓臺具由東楹入置於殿中(先置北次置西次置東次置南)而出樂師抱鼓槌十六箇由東楹入置鼓南而出(每鼓槌二)諸妓唱井邑詞
前腔 하∼∼
樂奏井邑慢機妓八人以廣斂(或四或二臨時啓稟八鼓四鼓則妓數如其鼓數用二妓則共擊一鼓)分左右而進立於鼓南北向齊行跪俛伏起立足蹈跪改尖斂而入舞(俗稱舞踏)訖並斂手跪執槌斂手而起足蹈舞進(左右外立妓先進)左右相連左旋繞鼓而舞隨杖鼓雙聲鼓聲而擊之奏井邑中機樂聲漸促則越杖鼓雙聲隨鼓聲而擊之奏井邑急機樂師因節次遲速越一腔擊拍妓八人斂手而退(左右外立妓先退)齊行跪置槌於本處斂手(廣袖)而立足蹈跪俛伏興足蹈而退樂止樂工十六人撤鼓而出樂師入撤槌而出(中宮宴則置鼓置槌撤鼓撤槌並妓爲之)
악사수악공십육인봉고대구유동영입치어전중(선치북차치서차치동차치남)이출악사포고퇴십육개유동영입치고남이출(매고퇴이)제기창정읍사
전강 ᄃᆞᆯ하∼∼
악주정읍만기기팔인이광렴(혹사혹이임시계품팔고사고즉기수여기고수용이기즉공격일고)분좌우이진입어고남북향제행궤부복기립족도궤개첨렴이입무(속칭무답)흘병렴수궤집퇴렴수이기족도무진(좌우외립기선진)좌우상련좌선요고이무수장고쌍성고성이격지주정읍중기악성점촉즉월장고쌍성수고성이격지주정읍급기악사인절차지속월일강격박기팔인렴수이퇴(좌우외립기선퇴)제행궤치퇴어본처렴수(광수)이립족도궤부복흥족도이퇴악지악공십육인철고이출악사입철퇴이출(중궁연즉치고치퇴철고철퇴병기위지)
악사는 악공 16명을 거느리고 북과 대구를 받쳐 들고 동쪽 기둥을 거쳐 들어와서 대전의 가운데에 놓고(먼저 북쪽에 놓고 다음에 서쪽에 놓고 다음에 동쪽에 놓고 다음에 남쪽에 놓는다)나간다. 악사는 북채 16개를 안고 동쪽 기둥을거쳐서 들어와 북의 남쪽에 놓고 나간다.(북마다 채 2개) 모든 기생이 정읍사를 부른다.
전강 달아∼∼
음악이 정읍의 만기를 연주하면 기생 8명은 광렴으로(4명이나 2명으로도하는데 임시로 계품한다. 북이 8개나 4개인 경우에는 기생의 수가 북의 수와 같으나 기생 2명을 쓰면 북 하나를 같이 친다) 좌우로 나뉘어 나아가 북의 남쪽에 선다. 북쪽을향하여 나란히 꿇어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족도하고 꿇어 첨렴으로 고쳐서 춤을 춘다(속칭 무답이다). 끝나면 모두 염수하고 꿇어 채를 잡고 염수하고 일어서서 족도하고 춤추며 나아간다(좌우의 밖에 선 기생이 먼저 나아간다). 좌우가 서로 이어져서 왼쪽으로돌아 북을 둘러 춤추면서 장구의 쌍성과 고성에 따라서 친다. 정읍의 중기를 연주하고 음악 소리가 점점 빨라지면 장구의 쌍성을 거르고 고성에만 따라서 친다. 정읍의 급기를 연주하면 악사는 절차의 지속에 따라한 가락을 걸러 박을 친다. 기생 8명은 염수하고 물러가(좌우의 밖에 선 기생이 먼저 물러간다) 나란히 꿇어 채를 원래의 자리에 두고 염수하고(광렴) 일어나서 족도하고 꿇어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족도하고 물러가면 음악이 그친다. 악공 16명은 북을 거두어 나가고, 악사가 들어와서 채를 거두어 나간다.
(중궁의연회이면 북과 채를 갖다 두고 치우는 일을 모두 기생이 한다)
※ 장고쌍성고성(杖鼓雙聲鼓聲) : 쌍성(雙聲)은 양면을 함께 치는 소리,
고성(鼓聲)은 궁편(고면 : 궁글채를 사용한다)의 소리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 족도(足蹈) : 발을 떼어 옮기는 춤사위
※ 광렴(廣斂) : 소매를 넓게 염수하는 동작으로 첨렴(尖斂)과 대비된다.
2013년 6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