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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오병이어의 기적,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누가복음 9:10~27)
* 본문요약
제자들이 전도실습을 마치고 돌아오자 예수께서 그들을 따로 데리시고 벳새다로 가십니다.
그러나 무리가 이를 알고 예수님을 따르자
예수께서 그들을 맞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고 병든 자도 고치십니다.
날이 저물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그들을 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다고 하자,
예수께서 그것을 가져다 축사하신 후에 나누어주니
남자들만 해도 5,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나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예수님을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시자
제자들은 세례요한이나 엘리야나 선지자들 중 한 사람일 것이라 하더라고 대답합니다.
이어서 예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고 물으십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은 이 비밀을 지키라고 경고하십니다.
이어서 예수님이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버림받고
죽임을 당하신 후 제 3일에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누구든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찬 양 : 284장(새 198) 주 예수 해변서
235장(새 200) 달고 오묘한 그 말씀
* 본문해설
1. 예수께서 제자들을 벳새다로 데리고 가심(10~11절)
10) 사도들이 (전도 실습을 마치고) 돌아와서 자기들의 행한 모든 일을 예수께 고하니,
예수께서 사도들을 데리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가셨으나(물러가셨으나)
11) 무리가 이 사실을 알아채고 따라오니,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반기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며 병든 자들을 고치시더라.
- 벳새다(10절) :
요단강이 갈릴리 호수로 들어가는 부근의 강 우측에 있던 마을입니다.
12 제자들 중 베드로, 안드레, 빌립이 벳새다 출신입니다.
‘고기집’이란 뜻을 가진 이곳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고(본문),
소경을 고치셨으며(막 8:22), 고라신과 함께 ‘화 있을진저’라는
예수님의 책망을 받기도 했습니다(마 11:21, 눅 10:13).
2. 오병이어의 기적(12~17절)
12) 날이 저물자 열두 사도가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우리가 있는 이곳은 빈 들(외딴곳)이니, 무리를 보내어
제각기 근처의 마을과 촌으로 가서 잠잘 곳도 구하고 먹을 것도 얻게 하소서.”
13)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사도들이 여짜오되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니다” 하니
14) 이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남자만 해도 오천 명이나 됨이러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을 오십 명씩 떼를 지어 앉게 하라” 하시니
15) 제자들이 그대로 하여 모두 다 앉게 한 후
16)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감사의 기도를 드리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17) 사람들이 모두 먹고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거두니 열두 바구니가 되었더라.
- 축사하시고(16절) : 율로게오
‘축사하다’에 해당하는 ‘율로게오’는
‘➀ 축복하다, ➁ 찬양하다, ➂ 하나님께 감사드리다’의 뜻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식사 기도를 드리셨다는 뜻입니다.
3. 베드로의 고백과 예수님의 첫 번째 수난 예고(18~22절)
18) 예수께서 따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있더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19) 제자들이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세례요한이라고도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고도 하더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하니
21) 예수께서 “이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엄히(단단히) 경고하시고
22) 이르시되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제 3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4. 나를 따라 오려거든(23~27절)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25) 사람이 만일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든지 빼앗긴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의 영광(예수님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2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 자기를 부인하고(23절) : 아르네오마이
‘부인한다’에 해당하는 ‘아르네오마이’는
‘단호히 거절하고, 철저히 부인한다’라는 뜻으로
자기의 주장, 자기의 고집, 나를 위한 삶을 철저히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 자기 십자가를 지고(23절) :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자기의 고집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삶을 포기하는 것이라면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주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나를 포기하는 것을 뜻합니다. 내 목숨을 버릴 각오로 주님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 자기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24절) :
자기 삶, 자기 생애에 대한 애착 때문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들을 소홀히 하면
영적인 생명을 잃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24절) :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을 행하기 위해 자기의 삶을 포기하는 자,
주님을 믿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
-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27절) :
누가복음 9:28 이하에 나오는 변화산의 변모사건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단순히 예수님이 변화된 모습만 보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 묵상 point
1. 제자들과 따로 있기를 원하신 예수님
1) 전도실습 후 제자들과 함께 있기를 원하신 예수님(10절)
예수님은 전도실습을 하고 돌아온 제자들의 보고를 받으신 후에
그들을 따로 데리고 벳새다로 가셔서 전도실습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를 원하셨습니다.
피드백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종종 제자들만 있을 때에 무리들과는 다른 말씀을 전하곤 하셨습니다.
더욱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는
그 제자 중에서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2) 예수께서 특별히 더 사랑하신 사람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모든 사람을 다 똑같이 대하지는 않으십니다.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을 기회를 가졌다는 뜻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이방인들은 주님의 사랑을 받을 기회조차 없었으나
이제는 아무리 악한 자라도 주님의 사랑을 받을 기회가 있습니다.
그들도 주님을 믿으면 주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사랑과 은혜에 얼마나 반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느냐에 따라
예수님 역시 그들을 달리 대하십니다.
세리도, 창녀와 같은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예수님의 사랑에 반응하며 그 말씀을 받아들이면
주께서도 그들을 반기시며 그들을 받아들이십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처럼 깨끗하게 살았던 자들일지라도
그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거부하면 말씀 받아들이기를 싫어하면
예수님 역시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
● 묵상 : 예수님의 사랑을 받기를 더욱 간절히 원하는 자가 되십시오.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고 해서
내가 가만히 있어도 자동적으로 주님의 사랑 안에 있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 사랑을 받을 기회가 열려있을 뿐입니다.
주께서 내미신 사랑의 손길이 아직 거두어지지 않았다는 것뿐입니다.
만일 내가 세상일에 바빠서 주께서 내미신 사랑의 손길을 외면하면
나는 주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자가 됩니다.
내가 만일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 주님이 내미신 구원의 손길을 외면하면
주께서도 나에게 사랑과 은혜를 주실 수 없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주시는 사랑과 은혜 안에 머물기 위해
항상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마십시오.
2. 오병이어의 기적
1) 말씀을 듣기 위해 온 무리를 반갑게 맞아주시는 예수님(11절)
예수께서 제자들과만 따로 말씀을 나누시기 위해 제자들과 벳새다로 물러가셨습니다.
그러나 무리들이 어떻게 알고는 그곳까지 따라갔습니다.
제자들을 특별히 훈련 시키고자 하셨던 예수님의 계획이 방해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말씀을 듣기 위해 따라오는 것임을 알고
그들을 반겨 맞아주시고는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시고 병도 고쳐 주셨습니다.
2) 그의 백성을 충만하게 먹이시는 예수님 : 오병이어의 기적(16~17절)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날이 저물기 시작합니다.
이에 제자들이 예수께 이 사람들이 하루 종일 굶어서 몹시 허기져 있을 것이니
인근 마을로 보내어 양식을 얻게 하자고 말합니다.
그곳은 빈 들이라 양식을 구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이들에게 양식을 주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밖에 없는데
이 많은 사람을 어떻게 먹이라는 것인지 제자들은 기가 막혔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자기들이 가진 것이 이것뿐이라고 말씀드리자
예수께서 사람들을 50명씩 구분하여 앉히라고 말씀하시고는,
떡과 물고기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누어주라고 명하십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제자들이 떡과 물고기를 나눠주는데
제자들이 들고 있는 바구니에서 끝없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남자만 해도 5,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를 남겼습니다.
● 묵상 : 말씀을 듣기 위해 온 무리들을 먹이신 예수님
이것은 말씀을 존귀히 여기며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께서 얼마나 풍성하게 먹이시는지를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의 말씀을 묵상하기를 기뻐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기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되십시오.
3. 주님의 풍성함을 나누는 주님의 백성들
1) 새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복의 근원이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셔서
그를 통하여 세상 만민이 복을 얻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 복의 근원의 사명을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이어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자기들만 소유하려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칭호를 박탈하시고,
그 대신 예수님을 믿는 예수님의 공동체(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칭호를 새로 주셨습니다.
2) 과거 이스라엘이 했던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 교회들
그런데 과거 이스라엘이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을 세상에 전하려 하지 않고,
마치 태초부터 자기들만이 그 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처럼
그들만의 즐거움을 가지려 합니다.
한국의 지나친 개교회주의도 그렇고,
한국 교회는 도무지 연합 행사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자기 개교회의 이름이 날 만한 일에는 엄청난 역사를 이루면서,
전 교단이 함께하는 일에는 영 신경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복을 나누는 것은 고사하고, 같은 그리스도인들끼리의 협력조차 되지 않는 것입니다.
3) 각자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십시오.
말씀을 가졌습니까?
그렇다면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서 주께서 내게 주신 말씀을 나누십시오.
재물을 가졌습니까?
그 재물도 주께서 나누라고 주신 은사 중의 하나입니다.
혹은 지식이나 재능을 가졌습니까?
이 역시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우라고 주신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주께서 주신 복이 무엇이든 그것을 나누십시오.
그러면 내게 주신 복이 전혀 줄어들지 않으면서
주께로부터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이라는 칭찬도 듣는
일거양득, 마당 쓸고 돈 줍는 두 가지 복을 함께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 묵상 : 주님의 풍성함을 나누는 주님의 제자들이 되십시오.
우리는 주님의 풍성함을 전하는 제자들입니다.
내가 가진 작은 것을 옆의 어려운 성도들과 나누는 사람이 되십시오.
4.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20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더냐고 물으십니다.
그랬더니 혹은 세례요한이라고도 하고, 혹은 엘리야라고도 하고,
혹은 옛 선지자 중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들 한다며 제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다시 정색 하시고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고 물으시자
이번에는 베드로 혼자서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하고 대답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베드로의 이 말을 크게 칭찬하셨다는 말씀이 첨가됩니다.
2) ‘주님을 누구라고 하느냐’에 구원의 문제가 달려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러저러하게 말하더라는 말씀을 들으신 후
주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고 물으신 것은,
그 질문의 답에 구원의 문제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누구로 믿고 있느냐에 나의 영생의 길이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저 훌륭한 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본다면 구원을 받을 수 없지만,
예수님을 나의 왕이시며 나의 구세주로 믿고 고백한다면
그는 죄의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 묵상 :
당신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믿고 있습니까?
분명히 자기 신앙을 주님 앞에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그 고백을 입술로만 할 것이 아니라, 자기가 믿고 고백한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참된 주님의 백성으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5. 예수님의 첫 번째 수난 예고
1) 내가 죽임을 당하고 제 3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21~22절)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후에 예수께 대한 신앙고백을 점검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
장차 주께서 고난을 당하시게 되리라는 첫 번째 수난예고를 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 모든 만민의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해
자신이 친히 유월절의 어린양이 되셔서 죽임을 당하시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2) 제자들의 고백을 기다리신 예수님
베드로의 고백이 예수님의 수난의 첫 단추를 여는 것이 되었습니다.
가령 우리가 압력밥솥이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2~3분을 잰 후 불을 끄고는
이제 곧 밥이 되리라고 말하는 것처럼,
베드로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고 한 이 고백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수난이 시작되는 첫 단추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더라도
주님이 우리의 구세주라는 것을 사람들이 믿어야만 구원을 얻게 되는데,
이 복음을 전해야 할 자들이 바로 주님의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승천하신 후 베드로뿐 아니라 주님의 제자들 모두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며 우리의 구세주라는 것을 세상에 전해야 할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누구신지를 그 제자들은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바로 그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의 수난을 당해야 할 때가 되었다며
그 수난의 첫 번째 예고를 하신 것입니다.
● 묵상 :
그 고난이 얼마나 크고 두려운 것인지를 잘 아시면서도
우리를 위해 그 고난의 길을 친히 걸으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찬양합시다.
6. 나를 따라오려거든 :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예수께서 첫 번째 수난 예고를 하신 후에 주님을 따라 올 자는
주님처럼 고난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바른 믿음을 가진 자인지를 알 수 있는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이므로
이 말씀으로 자신을 늘 비춰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 구절을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1) 자기를 부인하고(23절)
신앙은 내 삶의 철학, 내 가치관을 버리고 예수님의 가치관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가 되는 첫 길은
자기의 주관, 자기의 가치관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주님 앞에서 나의 자아, 나의 자존심,
내 고집을 버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욕심, 내 마음에 일어나는 분노와 증오심,
미움과 유혹에 넘어지려는 연약함을 버리기 위해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자신의 죄와 허물들을 주께 고백하십시오.
2)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23절)
예수님의 사명은 세상 만민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란 우리가 담당해야 할 사명을 뜻합니다.
나의 고집, 나의 자존심을 버리기만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후에 주께서 명하신 사명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 가치관을 버리고 주님의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추구했던 것을 버리고,
주께서 명하신 일을 택한 것을 말합니다.
주께서 명하신 일을 하다가 어려운 시련을 당하거나 핍박을 받게 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3) 나를 따를 것이니라(23절)
날마다 나를 부인하고 날마다 주께서 내게 명하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주님을 따르는 일입니다.
말로만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참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으니
내 뜻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내 안에 채우는 일을 날마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4) 자기를 위하여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24절)
누구나 다 자기의 삶, 자기 생애에 대한 애착이 있습니다.
누구나 내 몸이 편안하기를 원하고,
누구나 다 성공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에 대한 애착 때문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들을 소홀히 하게 된다면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는 분인데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는다면
그것이 곧 영원한 생명을 잃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었다고 하더라도
영원한 생명을 잃게 된다면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5)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24절)
그러나 주님을 얻기 위해 내가 세상에서 마땅히 얻을 수 있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면
주께서 우리에게 그 포기한 것의 30배, 60배, 100배의 기쁨을 주십니다.
주일을 지키기 위해 주일 벌어들일 수 있는 이익을 포기한 사람,
주께서 명하신 사명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로부터 미움과 조롱을 받는 일을 각오한 사람,
그 일로 직장을 잃고 사람을 잃게 되었더라도
주님의 사명을 끝까지 지킨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크신 복을 받게 됩니다.
● 묵상 :
내 것을 얻기 위해 주님의 것을 포기하지 말고,
주님의 것을 얻기 위해 내 것을 포기하는 자가 되십시오.
그래야 주께서 주시는 영원한 것을 얻게 됩니다.
6)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그날에 그를 부끄러워하리라(26절)
예수께서 전하신 하나님 나라는
주님의 복음의 말씀과 함께 전달되고 확장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부끄러워하고,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임을 당당하게 밝히지 못하는 사람은
그날에 주께서도 그를 모른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주께서 모른다고 말하는 자는
지극히 작은 죄로 그 죗값을 물어 영원한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살아갈 때에 누가 무엇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리스도인임을 당당하게 밝히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존귀히 여기십시오.
7)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27절)
이 말씀은 곧 있을 변화산 위에서 예수께서 변모되신 일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 일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후일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
아라비아 광야에서 깊은 묵상을 할 때 예수께 친히 말씀을 직접 교육받으면서
소위 삼층천이라는 하나님 나라를 보고 왔습니다.
또 밧모섬에 갇혀 있던 사도 요한도
하나님 나라를 본 장명을 요한계시록을 통해 증거합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주님의 나라를 보고 온 간증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직접 자신의 오감을 통해 경험하기도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말씀을 깨달을 때,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할 때,
예배 중에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경험할 때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 나라의 경험을 통해
예수께서 참으로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심을 진정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 묵상 : 당신도 이 놀라운 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나라의 기쁨을 경험하게 해 주실 것을 간구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의 거룩하신 성령이 여러분 안에 들어와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누리고 경험하게 할 것입니다.
* 기도제목
1. 주님이 참 그리스도이심을
날마다 고백하며 살게 하옵소서.
2. 주님의 나라의 능력과 기쁨을
날마다 경험하며 살게 하옵소서.
3. 날마다 나를 버리고
주님을 내 안에 채우는
건강하고 참된 믿음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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