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제: 옛날 사람의 반성문과 유치원생의 걸음마
“삼성전자 6만 원에 사서 10만 원 넘어설 때 몇 개 팔고, 지금 600% 수익률이거든.”
“나도 좀 알려주지...”
“아빠는 주식을 언제는 갬블링, 야바위 같은 것이라 해놓고...”
어제저녁, 20대 딸아이와 식탁에 앉아 주식 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그만 할 말이 없어지고 말았다. 6월 1일 기준 내 계좌의 세전 수익률은 약 25%. 한 달간 거시 경제를 공부하며 나름대로 선방했다고 자부하던 성적표였는데, 딸아이의 600%라는 숫자 앞에서는 짐짓 무색해졌다. 딸아이와 주식을 매개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문득 내가 이제는 고집만 남은 ‘늙은 옛날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돌이켜보면 내 주변에서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고 당당히 말한 사람은 신가철물점 사장님(그분은 IMF 시절 이전부터 주식을 해왔다고 한다)과 내 딸아이, 단둘뿐이다. 딸아이는 고작 200만 원이라는 소액을 투자금 삼아 월급의 대부분은 정기적금에 넣고, 용돈을 쪼개 주식을 해온 지 벌써 3년 차라고 했다. 어느새 나보다 시장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평생 주식의 ‘주’ 자도 모르면서 이를 철저히 멀리했던 데에는 뼈아픈 역사가 있었다. 20대 초반 시절, 동네 6촌 형님이 주식으로 패가망신했던 이야기를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고향에서 농사 세 마지기 짓던 형님은 인근 대구로 떠나 어렵게 도시 변두리에서 음식점의 남은 음식물을 수거해 돼지를 키웠다. 그러다 대구 도시가 점점 확장하면서 돼지농장 자리가 아파트 부지로 둔갑했고, 형님은 1차 일확천금을 쥐며 부자가 되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 돈을 쥔 형님은 주식시장에서 돈 놓고 돈 먹는 ‘꾼’으로 변신했다. 명절 때마다 고향에 내려와 “농사지어봐야 소용없다, 논밭 다 팔아서 주식을 해야 한다”라며 온 동네에 설교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큰소리도 잠시, 몇 년 뒤 형님이 결국 빈털터리가 되었다는 씁쓸한 소문이 동네에 돌았다.
그 강렬한 기억 때문에 내 머릿속에 주식시장이란 실물경제 없이 돈 놓고 돈 먹는 야바위판으로 단단히 박혀 버렸다. 과거 이명박 대통령 시절 쯤 집필했던 내 단편소설 「두렁」에서도 나는 실물 경제에 대한 나만의 고정관념을 장황하게 늘어놓았었다. 땀 흘리지 않고 쉽게 버는 돈은 없으며, 실물 없는 자본은 허상이라고 소설 속에서 목소리를 높였었다.
그런 내가, 이제 예순셋의 나이에 주식 계좌를 트고 매일 엑셀 셀을 채우고 있다.
시대가 변했다. 과거의 주식시장이 누군가에게는 야바위판이었을지언정, 지금 내가 목도하고 있는 세상은 미래 가치를 현재로 끌어다 쓰는 ‘금융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구조적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이를 비껴갈 수 없다면 정면으로 마주하고 공부하는 것이 생존법임을 이제야 인정한다.
딸아이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던 어제저녁의 기억을 복기하며 생각한다. 나는 이제 주식시장에서 겨우 걸음마를 배우고 있는 유치원생이다. 6촌 형님처럼 일확천금을 바라는 ‘꾼’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의 엔진에 내 자본을 정교하게 탑재하는 ‘배우는 주주’가 되고자 한다. 늦깎이 유치원생의 걸음마는 투박할지라도, 내 형편에 맞춘 단단한 원칙이 있기에 이 발걸음은 결코 패가망신으로 향하지 않을 것이다.
단편소설 「두렁」 by 솔거책방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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