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진주임씨 시조 묘소 참배기
2022년 임진년 새해 첫 날 전주(全州)의 아침기온은 영하7도의 한파속에 찬바람이 옷깃에 스며들었다. 차가운 날씨였지만 오전 7시 30분쯤 새해의 태양은 붉게 타오르는 장관을 바라보며 선모재 마당에 주차를 하고 시조 묘소로 향했다. 마른 풀잎은 찬 서리를 맞아 하얗게 물들어 있고 시조의 묘지 앞 한 쌍의 까치다 나를 반겨주듯 노래를 불러주었다.
참배를 하고 주위를 둘러보며 비조이신 諱 덕생(德生) 할아버지와 諱 을일(乙馹) 할아버지가 뇌리를 스쳐갔다. 시조 할아버지 위쪽엔 널따란 공간이 펼쳐져 있었지만 두 할아버지의 신도비 제단이 없다는 것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근본적인 뿌리가 있는 후손으로서 죄송함을 속죄하며 시조 할아버지 바로 아래 모재공(慕齋公) 諱 경무(慶茂) 할아버지 묘소 앞에 서있을 땐 타오르는 둥근해가 고개를 내밀었다. 술잔을 올리면서 진주임씨 후손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고 諱유도(有道), 諱 수현(秀賢), 諱 광좌(光佐), 諱 관우(光佑), 諱 광필(光弼) 5위 제단(祭壇)에 참배를 하고 비문은 자세히 보니 6제종파의 글귀가 띠었다. 이미 대동보에서나 족보 창간 보서문에서도 종파가 거론된바 없었던 6제종파는 과연 어디에서 만들어 졌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필자가 수차례 거론한바 있었지만 우리 진주임씨에는 종파가 없음을 고증을 통해서 글을 올린일이 있다. 진주임씨대종회 카페를 참고하시면 이해되리라 생각된다.
비문과 산소들을 사진으로 저장하는데 날씨가 추워서인지 손과 얼굴이 감각이 없었다. 산소들을 뒤로하고 선모재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난방을 하지 않았는데 바람이 없어서 인지 온기가 돌았다. 작년에 쓸고 닦았던 그 모습 그대로 있었고 빨아 놓았던 걸레를 걷어 깔끔히 치우고 바람에 흔들렸던 주련도 손을 보고 선모재 한 바퀴를 돌아보니 백일홍 나무도 재무이사님께서 전지질을 해서 말끔하게 정리되어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신정이 되면 많은 분들은 해돋이를 보기위해 산과 바다로 향하는데 철없는 내 자신은 시조 묘소를 찾아 참배하는 일로 올 한 한해는 시작한다. 비록 나지막한 산에서 해돋이도 보았고 선조들의 묘소를 찾아 참배를 하는 것도 또 다른 묘미를 느끼며 나름대로 만족감을 느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벌써 23년이 지났고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시제를 지내던 그 당시의 모습에서 나이가 들어보니 아버지가 더욱 그립기만 하다. 자손이 지극한 효심이 있으면 내가 조상을 모셔야 되겠다는 마음이 쓰이는 것으로 자손이 잘되려면 조상을 찾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조상 모시는 일은 남한테 맡기면 맡긴 그 사람한테 공덕이 되는 것이지 나한테 공덕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임인년 시제에도 종인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기대해 보며 종인 모두가 건강하고 활기찬 새해 되시길 간절히 기원해본다.
晋州任氏歷史硏究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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