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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은혜의 믿음은 심판도 이기고 구원합니다. / 2023년 7월 30일 주일 오후 예배
본문 / 여호수아 9:1-27
정말 하나님의 은혜는 대단한 것입니다. 이런 식상한 말밖에는 제 마음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답답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내가 하나님이 되겠다고 타락한 하나님의 원수인 죄인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를 반드시 심판하시는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티끌만한 죄도 봐주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를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공의에 의해 반드시 심판을 받고 다 지옥에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원수인지만 어떻게 죄인들이 지옥에 가는 것을 그냥 지켜만 볼 수 있겠습니까?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죄를 그냥 용서해주자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있을 수 없는 일인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들을 십자가에서 심판하셨습니다. 죄인들의 모든 죄를 다 아들에게 전가시키고 아들을 심판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시고 그 대속의 은혜를 믿는 자들의 죄를 다 용서하고 의롭다 하시고 구원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통하여 공의와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의를 동시에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는 천대까지 갚고 죄에 대한 벌은 삼대까지 이르게 하겠다고 하셨는데 죄인을 용서하고 사랑하기를 즐거워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보다 훨씬 크고 광대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죄를 심판하시는 그 공의도 죄인들이 아닌 죄가 없는 아들에게 대신 쏟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공의마저도 죄인들을 구원하는 사랑과 은혜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어떻게 표현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다를 먹물로 삼고 하늘을 두루마기로 삼아도 그 사랑과 은혜를 다 기록할 수 없다는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호흡이 있는 것은 어린아이까지 다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20장에서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 호흡이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곧 헷 족속와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와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진멸이 뭡니까?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죽이고 불에 탈 것은 다 태우고 타지 않는 것은 불을 지나게 하여 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진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심판하라는 것입니다.
진멸하라는 것을 진멸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아간이 여리고 성의 모든 것을 진멸하여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을 어기고 금과 은과 옷을 감추었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신은 물론이고 자식과 모든 재산이 다 진멸을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두려운 분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정말 놀랍습니다. 어쩌면 죽어야 할 죄를 짓고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는 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살려달라고 하면 즉시 심판을 돌이키시고 기뻐하시면서 용서해주시니 말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바꾼 사람들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멸하라고 말씀하신 가나안 땅에 사는 일곱 족속 중의 하나인 히위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괜히 심판하시겠습니까? 그들의 죄가 하나님의 공의에 찼기 때문입니다.
다 죽어야 할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의해 심판이 선포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심판을 선포하고 조석변개하는 분입니까? 하나님의 입에서 한 번 나간 말씀은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인간 왕들도 자신이 인장을 찍어 선포한 조서는 자기 마음대로 바꾸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은 어떠시겠습니까?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한 번 입으로 하신 말씀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은 은혜를 의지하는 자들 앞에서 즉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속도 없는 분처럼 금방 심판을 철회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기 전에라도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전에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며 구원을 이루어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니느웨가 요나 선지자를 통하여 선포된 하나님의 심판을 듣고 믿은 것처럼 이 기브온 사람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그대로 보고 믿었습니다. 가나안의 다른 족속들이 이스라엘을 대항하여 전쟁을 준비하고 싸우려고 할 때 이들은 현실을 인식했습니다.
현실이 뭡니까?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우리는 다 죽었다는 겁니다. 기생 라합 같이 하나님이 자기들이 사는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하여 심판하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닫고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신다. 우리는 성과 땅과 집과 재산이 아니라 목숨을 다 빼앗기고 죽을 것이다. 이것이 기브온 사람들이 깨달은 현실에 대한 인식입니다. 이 상황에서 그들이 선택한 것은 신기하게도 그러면 우리가 앉아서 가만히 있다가 죽어야 하느냐? 우리가 정말 살 길이 없겠느냐는 겁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현실에 대한 인식과 물음이 지혜를 발동하게 하였고 은혜로 나아가게 한 것입니다.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꾀를 내어 사신이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그 날에는 낡아서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가 난 떡을 준비하고 그들이 길갈 진영으로 가서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나이다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읍시다.” 말씀합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들입니까? 정말 신기하지 않습니까? 죄로 다 죽어야 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된 그 사람들 중에서 심판을 깨닫고 은혜를 의지하며 심판을 이기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말입니다.
심판이 선포된 가나안은 이 세상이 아닙니까?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선포한 말씀은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을 향하여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다 죽어야 할 죄인들인 겁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이 떨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그 현실을 인식하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는가? 살 길을 찾고 아!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면 즉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면 죄를 용서받고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회개하고 나오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기브온 사람들일까요? 죄악이 가득하여 심판을 떨어진 가나안 땅에 은혜를 의지하는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지만 지금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운 마음으로 깨닫고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며 믿음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브온 사람들이 은혜를 의지하기 위해 꾸민 것이 또 신기합니다. 낡은 옷과 낡은 신을 신고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와 다 마르고 곰팡이 난 떡을 준비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먼 곳에서 온 사람들로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가나안 땅에 있는 족속은 다 죽이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나안 땅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던 것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해 준비한 이 세상에서는 가치가 없는 낡은 옷과 떡과 포도주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즉 십자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고 죽으실 때 옷을 벗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라고 한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내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내 살은 참 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 된 음료라고 하신 것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의지하며 나간 것입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신들을 심판해야 할 이스라엘과 화친하는 조약을 맺은 것입니다. 기가 막히게도 심판해야 할 이스라엘로부터 보호를 받게 된 것입니다.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조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였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심판을 받을 자들과 화친을 맺고 조약까지 맺겠습니까? 하나님은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학살한 사건으로 이스라엘에게 비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사울의 집안이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심판을 준비하는 그 믿음 즉 은혜를 의지하는 그 믿음을 보시고 심판에서 구원으로 옮겨주신 것입니다.
니느웨는 40일 이후에 심판이 온다는 것을 알고 회개하였고 기브온은 가나안 땅에 하나님의 심판이 떨어진 것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였는데 과연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심판을 믿고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의지하며 심판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기브온 사람들이 자신들의 힘을 의지하고 그 힘을 더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과 싸웠다면 심판을 이기고 피하였겠습니까? 타락한 죄인들에게는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그 어떤 방법과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열어주신 방법과 길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누구든지 내 죄를 대속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믿고 회개하고 그 은혜를 의지하면 모든 죄를 다 용서받고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때 심판에서 구원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죄를 대속해주신 십자가의 은혜를 믿는 그 믿음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낡은 옷과 낡은 신발을 가져온 게 아닙니다. 그들은 낡은 옷을 입고 낡은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그래야 먼 곳에서 온 사람인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를 믿는다 하면서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며 세상에 속한 것은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옷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예수님의 옷을 입기에는 불편한 것이 아닙니까?
낡은 옷과 낡은 신발을 들고 오면 되겠습니까? 기브온 사람들에게는 다 해어진 포도주 가죽부대와 곰팡이 난 떡 밖에 없었습니다. 새 가죽부대와 뜨끈뜨끈한 떡을 갖고 있었다면 어떻게 먼 곳에서 온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기브온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해 가나안 땅에 속해 있던 그 모든 것을 다 십자가에 못을 박은 것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항복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의 족속들은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대항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브온이 이스라엘에게 항복하였다는 것을 알고는 가나안의 족속들이 연합하여 기브온을 치려고 한 것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그런 것을 예상하지 못하였겠습니까? 그래서 정말 천국과 지옥과 심판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세상을 십자가에 못을 박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을 박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고 마는 것입니다.
낡은 옷과 신발과 해어진 가죽부대와 곰팡이 난 떡은 자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천하고 낮은 모습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그런 것입니다. 내가 내놓는 행위와 열심과 의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를 30년 했다고 되는 구원이 아닙니다. 주일학교와 찬양대 봉사를 죽을 때까지 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자기 마음대로 신앙생활을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내 죄를 대속해주신 십자가의 은혜를 만나 내가 죽어야 할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고 거듭날 때 되는 것입니다.
내 죄를 대속해주신 십자가를 마음과 영으로 만나 회개하고 그 은혜를 의지하고 믿지 않는다면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죄인이라도 주님의 대속의 십자가를 마음과 영으로 만나 그 은혜를 의지하며 회개하고 순종하는 십자가의 그 좁은 길을 간다면 하나님은 심판을 즉시 철회하시고 구원의 은혜를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요즘은 왜 그렇게 인생에 대한 의미와 가치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지는 말입니다. 특히 잠을 자기 위해 누우면 정말 인생이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 절절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인생 안에 하나님이 주인으로 계시지 않다면 즉 구원을 받지 못하였다면 인생은 저주와 고통 그 자체가 아닙니까?
인생은 잠깐 꿈을 꾸는 것과 같습니다. 잠에서 꿈을 꾸어도 잠을 깨면 그 꿈은 현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꿈에서 아무리 마셔도 깨면 목이 마르고 꿈에 아무리 배가 부르게 먹어도 깨면 배는 부르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나의 만족과 기쁨과 그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위해 살아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인생이 깨면 세상에서 산 인생은 꿈에 불과했던 겁니다. 악몽을 꾼 것입니다. 그런데 꿈을 꾸면서도 기분이 좋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꿈을 꾸고 나면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꿈에서 찬송을 부르다던가. 기도를 한다던가, 말씀을 전한다던가, 믿음으로 싸워 승리하는 꿈입니다. 잠을 깨고 나도 그 기쁨이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잠시 살다가는 이 세상에서의 인생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내 영혼을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하여 영원한 안식과 기쁨만이 있는 하나님 나라에 영원히 두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위하는 게 진실로 나를 위한 것이 아닙니까?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그 십자가의 믿음 안에 있습니까? 내가 인생의 주인이 되어 나를 위해 살던 그 죄악을 회개하였습니까?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의 그 뜻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사는 자로 거듭났습니까?
예수님은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는 죽은 믿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달란트를 받고도 그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둔 종은 악한 종으로 심판을 받고 만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받았다면 은혜를 받은 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나를 십자가에 못을 박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는 십자가의 좁을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한번 뿐이고 인생은 정말 잠시일 뿐입니다. 그러나 죽은 후에 천국과 지옥은 영원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지옥을 향해 가면서도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나는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 십자가 앞에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내 죄를 대속해주신 십자가의 그 은혜를 믿음으로 죄를 다 씻음을 받고 이제는 회개하고 거듭나 남은 인생을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받드는 생명의 길을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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