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무밥
이영백
식구 많은 집에서는 늘 부족한 것이 밥이다. 저녁시간이면 때 놓친 사람은 저녁밥이 아예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녁시간은 꼭 지켜야 굶지 않는다. 우리 집 저녁시간은 언제나 정확하였으며, 오후 일곱 시이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식구도 많았지만 과객이나 일 거들어 준 이웃사람인 품꾼들도 많이 있었다. 저녁 답이면 해 지고 어둠 내린다. 마당에 멍석 펴고, 남폿불 처마에 내다걸어 환한 마당에서의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스무여 명 전후의 사람들이 매일 같이 밥을 함께 먹어야 하였다.
늘 부족한 식량이 걱정이다. 점심에는 아침에 해둔 무밥을 먹었다. 반찬이라고는 강된장 끓여둔 것 밖에 없다. 물기 많은 찌~룩한 무밥은 밥그릇마다 비비기 시작한다. 그런 무밥조차 실컷 먹어보지 못하였다.
겨울날 저녁이면 무밥을 앉힌다. 썰어 둔 무는 쌀의 양보다 몇 갑절이나 많다. 썬 무채에다 소금 친다. 쌀과 보리쌀이 부족하여 덤으로 무를 썰어 보충하여야 하였다. 저녁에도 자연히 우렁이 강된장은 최고의 양념이다. 이를 섞어 무밥을 비빌 수밖에 없다. 배고플 때는 그 무밥도 맛이 좋다.
무밥 먹고 밤에 짚공예 물품을 만든다. 새끼 꼬고, 가마니치고, 삼태기 만들고 밧줄 엮는다. 셋째 형은 멍석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제일 어려운 작업이다. 이경 지나고, 삼경 가까워도 모두 잠잘 생각을 못한다. 하던 일 목표량 채워야 마치기에 다시 무밥을 밤참으로 만들어 나온다. 그러나 그 밤참에는 결코 많은 양을 주지 않는다. 그 양은 입가심할 정도로 그친다.
여러 가지 밥 해먹다 보니 밥맛의 차이를 알게 되었고, 어떻게 먹어야 잘 먹는 지 요령도 터득해 두었다. 무밥은 오로지 우렁이 강된장에 비비는 것밖에 없다. 물기가 많은 찌~룩한 무밥은 비벼야 먹기가 좋다. 소화도 잘되어 한편으로는 인기도 있었다. 단지 무밥은 식으면 안 좋을 뿐이다.
무밥 만들려면 셋째누나가 모두 준비하여야 하였다. 무를 깨끗하게 씻고, 잘게 썰어 두어야 하였다. 칼은 내가 수시로 숫돌에다 갈았다. 무밥 하는 일로 양식 줄여 돈 모으는 데 큰 역할 하였으며, 해마다 논․밭을 샀다.
무밥은 엄마의 아이디어로 낸 것이므로 아버지는 대찬성이다. 소농이 돈 모으는 것으로 양식 절약뿐이다. 무밥이 오로지 살림밑천이 되었다.
첫댓글 엽서수필 시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