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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무엇을 받으셨습니까? / 2026년 7월 26일 주일 예배
본문 / 에스겔 27:1-36
한국의 세계적인 인기 아이돌 그룹인 BTS가 얼마 전에 유럽에서 공연을 마쳤습니다. 티켓은 순식간에 매진이 되었고 수 많은 사람들이 공연장에 모여 들었고 표를 구하지 못해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공연에 관한 기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습니다.
공연 중에 BTS의 한 멤버가 한 여성 팬에게 다가가 자신이 입고 있던 자켓을 벗어 준 것이었습니다. 그 여성 팬은 한글로 9년을 기다렸습니다! 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한 멤버가 그 정성에 감동하고 보답을 하고 싶었는지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옷을 받은 여성 팬이 반응이 놀라웠습니다.
자켓을 선물로 받고 반응하는 여성 팬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좋아한 나머지 기절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감당할 수 없는 그 기쁨에 어쩔 줄 몰라하는 그 표정을 보며 저렇게 좋은가 라는 의문도 하였습니다. 미칠 듯이 너무 좋아하는 것이 실신할 것 같았습니다. 몇 천만 원 짜리 골드 바를 준 것도 아니고 돈이 두둑한 지갑을 준 것도 아니고 명품 브랜드의 새 옷을 준 것도 아니고 단지 땀에 젖은 입고 있던 옷을 준 것 뿐입니다. 그 옷은 그 여자에게 맞지도 않으니 입을 수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기뻐서 오열을 하는 겁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 여성 팬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땀에 젖은 옷이 아니겠는가 라는 맘이 듭니다. 오히려 돈이나 새 옷을 주었다면 그것은 그냥 고마운 선물로 끝났을 겁니다. 그 여성 팬이 BTS에게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닐 겁니다.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팬이 된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입고 있는 옷은 어떻습니까? 어쩌면 그것은 자신을 주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자기 몸을 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자신이 입은 옷은 줄 수 없는 나의 몸을 대신하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성 팬이 미친 듯이 기뻐하며 오열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에게 몸은 줄 수 없으니 옷을 대신 주는구나! 옷을 두 손으로 꼭 움켜쥐고 오열하는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단지 피와 땀에 물든 옷을 주신 것이 아니라 자기 생명을 아낌 없이 다 주셨지 않습니까? 내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지 않습니까? 자기의 살과 피를 주시지 않았습니까?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나의 흉악한 죄를 대속해 주시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용서해 주신 겁니다. 그 은혜를 믿을 때에 사망에서 생명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심판에서 구원으로 옮겨 주셨습니다. 천하를 주고도 살 수 없는 영생을 주신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의 모든 죄를 자기 죄로 짊어지고 나를 대신하여 치욕과 부끄러움과 고통과 심판을 받고 아버지께 버림까지 받으셔야 했던 주님의 그 대속의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어떻습니까? 마음 깊은 곳에 기쁨이 있습니까? 감당할 수 없는 영혼의 감격이 있습니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구원이 기쁨이 있습니까? 그 구원을 믿음으로 이루어가는 인내와 소망이 있습니까?
이이돌 스타에게 받은 그 옷이 그 여자의 삶과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괴로울 때 그 옷을 만지고 품으면 평안이 올까요? 그 옷이 죄를 사하는 능력이 있습니까? 그 옷이 사망을 이기게 하겠습니까? 그 옷이 그 영혼을 구원하겠습니까? 그 옷이 영생을 줍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한복음 3:16-18.
아이돌은 우상 즉 숭배의 대상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아이돌을 숭배하는 그 팬들이 아이돌에게 원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자신이 섬기는 아이돌에게서 무엇을 받는 것일까요? 팬들은 인터뷰에서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자신이 숭배하는 스타에게서 삶의 위로와 희망을 얻었다는 겁니다. 이제 엔터테인먼트가 종교가 되었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얻었다는 겁니다. 돈도 재물도 풍요와 번영이 아니라 말입니다.
아이돌 그 우상이 사람들의 종교의 영역에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세상의 재물과 돈을 기대하는 것이 아닌 겁니다. 그런데 진짜 경배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은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에게 어떤 영역에 계신 것일까요? 성도들은 주님께 무엇을 받기를 원하는 것일까요? 무엇 때문에 주님을 좇는 것일까요?
저는 아이돌에 열광하며 그들을 따르는 팬들이 자기 우상에게 위로를 받았습니다!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여러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마음이 심난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주님을 섬기는 교회와 성도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제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주님을 좇고 무엇을 원하는지 우상을 섬기는 그들보다 순수하거나 순결하지 못한 불순한 마음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저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나)보다 낫구나! 왜냐하면 저는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거저 받고 잠시 기뻐하고 즐거워하다 곧 본색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 본색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고 타락한 육체의 정욕과 탐심으로 내가 주인으로 있는 나의 육적 자아를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풍요와 번영으로 섬기길 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힘과 영광와 기쁨과 즐거움을 요구하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습니까? 나의 죄와 사망과 심판을 대속해주신 주님의 그 십자가의 은혜로는 만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이돌이 자기 옷을 팬에게 벗어 주자 그 옷을 받은 팬이 별 것도 아닌 것처럼 시큰둥하게 받으며 돈이나 지갑을 함께 달라며 소리를 치면 어떨까요? 그 순간 정래미가 확 떨어지지 않을까요? 제가 아이돌이라면 보고 싶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니, 돈을 왜 나 한테서 찾아? 돈 때문에 온 거야? 구걸하러 온 거야?
우리가 주님께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까? 정래미가 확 떨어지게 하는 사람 말입니다. 내가 주님께 그런 자였음을 깨닫고 고백합니다. 대속의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쏟아주신 그 주님께 세상의 풍요와 번영과 힘과 육신의 영광과 만족을 원하고 요구한 것이 아닙니까? 그런 제 자신을 돌아보면 사람도 아닙니다. 은혜를 모르는 벌레이며 짐승이 아닙니까?
은혜를 받아도 자신이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까? 육신에 속한 자가 아닙니까? 주님이 자신을 위해 지신 그 대속의 십자가를 마음과 영으로 만나지 못하여 회개하고 거듭나지 못한 것이 아닙니까?
은혜를 받고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여전히 육신에 속하여 세상을 사랑하는 자가 두로입니다. 두로는 해상무역으로 큰 풍요와 번영을 누렸습니다. 세상의 힘과 영광을 자랑하며 아주 교만해진 것입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과 지혜로 이룬 것이라고 말입니다.
세례 요한은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고 증언합니다. 두로가 누린 번영과 풍요는 모두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재물을 얻을 능력도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잊지 말라고 말입니다. 내 힘과 능력과 지혜와 열심으로 이룬 것이라고 착각하고 교만하지 말라는 겁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라는 겁니다. 그런데 두로가 자신들이 누리는 풍요와 번영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임을 압니까? 감사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 앞에 겸손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과 지혜로 이루어 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는 두로와 같은 성도들이 많습니다.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한량 없는 대속의 은혜를 받았지만 그 은혜를 마음과 영으로 즉 믿음으로 받지 못하여 자신이 무엇을 어떤 은혜와 사랑을 받았는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여 그 은혜를 업신여기고 세상을 바라보며 세상의 힘과 영광과 육신의 만족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혜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지금 자신이 누리는 세상의 힘과 영광도 하나님의 은혜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늘 주님을 향해 불만을 품으며 원망과 불평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향해 늘 불만을 품었지 않습니까? 애굽의 종살이에서 탄식하던 그 노예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하여 주었더니 말입니다. 구속의 그 은혜를 모르고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잠시 기뻐하다가 곧 광야에서 본색을 드러낸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육신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구하지도 말라. 그것은 하나님이 없이 사는 이방인들의 삶이다!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이 다 아신다! 두려워하지 말고 너희 염려를 주님께 맡기라고 하십니다.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받은 성도의 삶은 이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러 구원을 이루어가야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그래서 바울은 이제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고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로 부름을 받은 성도들 가운데 그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자신을 십자가에 부인하며 구원을 이루어가는 성도들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주님의 은혜가 고마워 잃었던 생명을 찾았고 광명을 얻은 것을 기뻐하며 날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을 박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자들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주님은 청함을 받은 자들은 많지만 택함을 입은 자들은 적다고 말씀하십니다. 은혜를 받아도 많은 사람들은 십자가가 없는 넓고 편한 길을 갑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는 기쁨으로 받아도 그 말씀으로 인하여 고난과 환난이 오면 은혜를 떠납니다. 육체의 정욕과 세상의 탐심을 이기지 못하고 재물의 유혹과 세상의 걱정과 염려에 시험에 들고 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좁은 길은 찾는이가 적은 것입니다.
과연 나는 누구입니까?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재물을 두 주인으로 당연한듯이 섬기며 오히려 그 부끄러운 영적인 간음을 축복과 좋은 믿음으로 자랑하는 이 음란하고 패역한 시대에 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주님이 부자와 나사로를 통해 천국과 지옥을 증언하셨지만 그래도 성도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부자가 되길 원합니다. 두로와 같이 세상의 풍요와 번영을 위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고 하셨지만 성도들은 나의 죄를 대속해주신 주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와 세상의 풍요와 번영을 달라고 외칩니다. 세상의 영광과 힘을 달라고 말입니다. 원망과 불평이 어린 마음으로 요구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도대체 나에게 무엇을 주셨는가? 여러분은 그런 불만을 품은 적이 없습니까? 뭐 하나 세상과 사람들에게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겁니다. 가장 눈이 보이는 게 외모 아닙니까? 얼굴도 못 생겼고, 키도 만족하지 못하겠고, 머리는 어떻습니까? 수학을 못하는 것을 보면 돌머리 같고, 그 열등감에 괴로워 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위에 눌립니다.
저는 음악에 아예 재주가 없습니다. 미술도 말할 것도 없고 체육은 가관입니다. 저는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부럽고 그림을 그리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합니다. 왜 내 손으로는 안 되는지 말입니다.
그렇다고 돈 많은 집안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형제 자매들이 성공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몸은 건강한가? 어릴 때부터 허약해서 병치레를 자주 했습니다. 천식으로 십 년 동안 너무 큰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간경화도 있습니다 . 지금 이 십년 째 6개 월마다 검사하고 있습니다. 진력이 납니다. 그것도 모자라 얼마 전에 마음의 병과 육체의 질병까지 함께 얻어 얼마나 큰 괴로움을 받아야 했는지 내가 이 고통을 견뎌 낼 수 있을까? 두려웠습니다.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야 했습니다.
목회하면서 받은 고통은 또 어떻습니까? 왜 나에게 능력이 없을까? 은사가 없을까? 기적이 없을까? 도대체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주셨단 말인가?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정말 인색하구나. 제 자신을 볼 때 너무 평범한 겁니다. 평균이하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 열등감이 짓눌려 사는 것이 아닙니까? 다른 사람이 받은 것과 비교하며 말입니다.
나에게도 저런 얼굴이 있었다면 나에게 저런 머리가 있었다면 나에게도 저런 재능이 있었다면 나에게 저런 능력과 은사가 있었다면 나에게 저런 건강이 있었다면 나에게도 저런 재물과 돈이 있었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칭찬과 인정을 받았을 것인데 나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구나!
어떤 아이돌 가수는 자신을 소개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은 다 잘한다는 겁니다. 다 자신이 있다는 겁니다. 못 하는게 없다는 겁니다. 허풍이 아니라 실제 그렇게 보입니다. 머리도 좋아 공부도 잘해서 전교 1,2등을 다퉜고, 춤도 잘 추었고, 노래도 잘했습니다. 그런데 얼굴도 예쁜 겁니다. 부모님도 부자입니다. 3개 국어를 능숙하게 합니다. 사교성도 좋습니다. 아이돌로 성공해서 젊은 나에게 돈을 긁어 모읍니다. 어딜가나 사람들의 환호와 사랑을 받습니다.
교회에도 그런 성도들이 있습니다. 목사들 중에도 있습니다. 스타가 된 아이돌 같은 목사들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열등감이 심한 학생이었습니다. 목사가 되어서도 그 열등감은 그대로 였습니다. 그 열등감은 하나님에 대한 불만을 갖게 합니다. 왜 나에게는 좋은 것을 주시지 않습니까? 심지어 소풍을 가면 보물 찾기도 안됩니다. 나는 지질이 복도 없구나!
제 생각에는 대부분의 성도들이 저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그럴겁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뭐 하나 세상에 내세울 것 없는 특별할게 없는 평법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은 저처럼 자랑할 만한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런 의문을 품게 됩니다. 과연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가?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동일하게 그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나님이 언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
하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빡칩니다. 저도 교회에서 고난을 받을 때 사람들이 찾아와 하나님이 사랑해서 그런 것이라는 말이 정말 듣기 싫었습니다. 너도 좀 이런 사랑을 받기 원한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조금 더 사랑하면 완전히 죽이것다! 이스라엘도 빡친 겁니다. 나라가 망하고 이방인들의 노예가 되었고 우리는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하십시오! 이게 사랑입니까?
삑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구원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야곱을 택하였고 에서를 미워하였다. 나는 야곱만을 사랑한다! 애굽에서 건져내신 그 은혜의 구속의 역사를 말씀하십니다. 그 구원의 역사를 지금도 보이지 않는 손을 놓지 않고 이루어가고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어찌 엄마가 자기 태에서 난 젖먹이를 잊을 수 있겠느냐? 혹시 잊는다 하여도 나는 내 백성을 잊지 않는다. 내가 낳고 내가 택하였으니 내가 안고 업고 갈 것이다! 나는 너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그 은혜로 부른 자들에게 구원 즉 영생을 주기 원하십니다. 나에게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는) 그 주님께 무엇을 원합니까? 세상을 원한 것입니다. 육신의 만족을 말입니다. 두로가 되기를 원한 것입니다.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자 열등감에 빠져 원망한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타락한 자아를 숭배하기 원하는 교만입니다. 내가 높아지기를 원한 것입니다.
주님이 뜻이 즉 나 같은 죄인을 대속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속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영광을 함께 하길 원하는 하나님의 구원과 영생이 내 안에서 이루어기기를 원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나의 뜻과 세상의 소원과 육신의 만족을 이루어주시길 원한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나를 사랑하는 증거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세상에 드러난 자신의 외모와 실상을 보며 하나님이 언제 어떻게 나를 사랑하셨냐고 항변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럴 수 있는 겁니다. 죽을 때까지도 온전한 믿음을 배우지 못하고 원망만 하다가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 사랑을, 주님의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한채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두로와 같이 세상의 번영과 풍요를 자랑하고 의지하는 교만함으로 살다 가고 어떤 이들은 세상을 향한 열등감과 주님을 향한 불만으로 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한 부자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 부자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소출을 거두었습니다. 창고를 더 지어야 했습니다. 부자는 풍요와 번영을 생각하며 자신의 미래를 그려봅니다. 이제 인생을 즐기며 평안이 쉴 것이다! 저 창고에 가득한 이 세상의 힘과 영광을 보라! 부자의 인생에 이 세상의 번영과 풍요를 허락하신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 부자에 관한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을 것이다! 주님은 부자가 되길 원하는 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십니다. 과연 부자가 의지하고 자랑하던 이 세상의 재물은 누구의 것이 되겠는가? 정말 인생은 미련하고 허무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천하를 얻고 네 목숨을 잃으면 무엇하겠느냐 물으십니다. 탐욕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네 생명이 소유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내가 만난 주님을 전해야 겠습니다. 저는 두로가 되기를 원했던 사람입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기를 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올려다 보며 부러워하는 곳에 말입니다. 사람들이 무시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세상에서 겪었던 열등감을 하나님의 교회에서 성공과 만족으로 보상받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을 이용하여 그리하려 했던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다 물거품이 되었을 때 나는 정말 복이 없고 하나님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은 어느 날 그런 저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제 방에는 흰 옷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 흰 옷을 입고 내게 와야 하는데 너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원하는 옷을 입으려고 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옷을 사람들을 시켜 벗겨냈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셨습니까? 여전히 아직도 두로가 입은 세상의 번영과 풍요로 만족하고 자랑하는 육신의 옷을 입으려고 합니까? 그 옷을 구하십니까? 그 옷을 입지 못하여 원망하십니까? 그 옷을 벗겨내신 것을 불평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 소용이 없습니다. 다 쓸데 없습니다. 다 의미와 가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생의 의미와 가치가 됩니다. 다 배설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다 지나가고 사라집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더 헛 될 뿐입니다. 육체는 풀이며 그 영광은 풀의 꽃에 지나지 않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집니다.
주님은 풍요와 번영을 자랑하던 두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많은 민족의 상인들이 다 너를 비웃음이여 네가 공포의 대상이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과 그 나라는 영원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믿음도 영원한 합니다. 영혼이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그 구원을 이루어가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만족하십니까?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이제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고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에게(우리에게)가장 귀한 것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믿음을 주셨습니다. 영생을 주셨습니다.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한다 말씀하십니다. 지금도 팔을 벌리고 기다립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그 큰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그 큰 은혜 안에서 영생을 받고 구원을 이루어가는 자들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