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끝나지 않은 모리의 가르침
이따금 내 노은사를 다시 찾아뵙기 이전의 나를 돌아본다. 난 그(이전의 미치)에게 말하고 싶다. 무엇을 찾아야 할지. 어떤 실수를 피해야 할지를 말이다. 그리고 더 마음을 열라고 말하고 싶다. 광고로 인해 만들어진 헛된 가치에 유혹되지 말라고, 사랑하는 사람이 말할 때는 생애 마지막 이야기인 양 관심을 기울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또 그에게 비행기를 타고 메사추세츠 주의 웨스트 뉴턴에사는 노은사를 찾아가라고, 그 노인이 병들어 춤출 힘을 잃기 전에 찾아뵈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다. 이미 지나간 삶을 되돌릴 수도 없다. 하지만 교수님이 내게 가르쳐 준 게 있다면 인생에서 '너무 늦은 일'따윈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작별 인사를 할 때까지 계속해서 변했다.
교수님이 세상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페인에 있는 동생과 연락이 되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에게 "네가 유지하려는 거리를 존중해."라고 말했다. 다만 가까이 있고 싶을 뿐이며 예전처럼 지금도 가까운 관계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허락하는 만큼 내 삶에서 그를 껴안고 싶다고.
"넌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이야, 널 잃고 싶지 않구나. 사랑한다."
나는 그렇게 말했다.
전에는 동생에게 그렇게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며칠 후, 팩스가 한 장 들어왔다. 동생답게 구두점이 엉망이고 대문자로만 적힌 메시지였다.
"안녕, 난 90년대에 합류했어!"
편지는 그렇게 시작됐다. 한 주 동안 뭘 하며 지냈는지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와 두세 가지 농담까지 적혀 있었다. 그리고 끝에 그는 이런 식으로 서명했다.
"지금 가슴이 막히고 설사가 나서 기분이 개떡 같아. 나중에 얘기하자고."
ㅡ 아픈 송곳니
나는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
이 책을 만드는 것은 모리 교수님의 생각이었다. 그는 이 책을 우리의 '마지막 논문'이라고 불렀다.
멋진 프로잭트가 모두 그렇듯 우리는 이 책을 만들며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여러 출판사에서 관심을 보일 때마다 교수님은 기뻐했다. 비록 출판 관계자를 직접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말이다. 이 책의 선인세는 교수님의 엄청난 치료비에 충당되었고 그 점에 대해 우리 둘 다 무척 감사했다.
이 책의 제목은 교수님의 서재에서 우리 둘이서 정했다. 모리 교수님은 사물에 이름 붙이기를 좋아했다. 그가 몇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하지만 내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라고 하자 교수님은 환하게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의 의미를 알았다.
교수님이 돌아가시고 대학 시절의 자료들이 담긴 상자를 뒤졌다. 교수님이 강의하는 과목을 들으면서 쓴 학기말 리포트가 나왔다. 색이 바랜 20년 전의 리포트였다. 앞 페이지에 내가 연필로 모리 교수님에게 보내는 몇 마디의 글이 적혀 있고 그 아래에 교수님이 쓴 답이 적혀 있었다.
내 글은 이렇게 시작됐다.
"코치님께."
그리고 교수님의 글은 이렇게 시작됐다.
"선수에게."
그 구절을 읽어 보니 모리 교수님이 더욱 간절하게 그리워진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진정으로 그리워할 만한 스승이 있는가? 당신을 있는 그대로 귀한 존재로, 닦으면 자연스럽게 빛날 보석으로 봐 준 그런 스승이 있는가? 혹시 운이 좋아서 그런 스승을 기억 속에서 찾아낸다면 그에게 다시 가는 길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머릿속으로만 그럴 수도 있고 나처럼 교수님의 침대 곁으로 직접 찾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내 노은사의 마지막 수업은 일주일에 한 차례씩 교수님 댁의 서재 창가에서 이루어졌다. 그가 작은 화분에 핀 분홍빛 히비스커스 꽃을 볼 수 있는 그곳에서 말이다. 수업은 화요일에 있었다. 책은 필요 없었다. 강의 주제는 '인생의 의미'였다. 교수님은 경험에서 실제로 얻은 바를 가르쳤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나를 다시 깨어나게 해 준 글이었다
스코틀렌드에서 이 글을 쓴다. 이곳은 영국에서도 상당히 북쪽이라 5월의 끝자락인 지금, 오후 10시나 되어야 해가 진다. 지금은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어슴푸레하다. 이제 여름이 더 깊어지면 밤 11시까지도 해가 지지 않을 것이다. 덕분에 늦은 시간까지 푸르름만은 눈이 시리도록 볼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초록의 색조가 40가지라고 했다. 햇빛이 초록을 비추면 그 따스하고 싱그러운 색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또 그 아래 호수가 가슴이 서늘해질 만큼 얼마나 고운지 모른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순간 머릿속이 아득해질 때가 있다.
엊그제도 그런 경험을 했다. 어떤 정원에서 400가지도 넘는 진달래꽃, 철쭉꽃을 봤다. 촌색시 치마저고리 빛깔의 진달래가 있는가 하면 고아한 상앗빛 꽃도 있고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자란 꽃나무도 있고......... 하지만 나무 아래 보랏빛 물결을 이룬 작은 블루벨스가 더 아름답게 보였다. 색색으로 물든 꽃 사이로 난 조그만 나무 다리를 건너며 난 이글을 읽을 독자들을 생각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역자 후기를 마음에 담고 떠난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번역가란 이름으로 긴 시간을 지내는 동안 내 책상 위에 일이 놓여 있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그만치 즐거웠고 한편으로는 일의 무게에 짓눌리기도 했다. 사실 단어 하나, 글 한 줄마다 읽어 줄 이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나의 글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읽어 줄 이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독자마저 잊고 오직 모리 교수님만 생각하며 온전히 몰입하여 번역했다. 아니, 내가 독자가 되어 함께 호흡했다고 말하는 편이 옳으리라. 절말 기막힌 경험이었다.
여기 모리 슈워츠라는 사회학 교수가 있다. 사지를 쓰지 못하다가 결국 숨쉬기도 힘들어지는 루게릭병이라는 희귀한 병을 앓으며 죽음을 앞둔 환자이다. 그런 그가 살아 있는 우리들에게 살아 있음의 의미, 죽어 감의 의미를 들려준다.
그는 마지막 숨을 모아 "우리에게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알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 수 있다."라는 메세지를 보낸다.
이 책은 모리가 세상을 떠나기 전 서너 달 동안 그의 제자 미치와 매주 화요일에 함께했던 수업 내용이 정리된 것이다. 이 수업의 주제는 '인생의 의미'였다. 이 글을 읽으면서 우리는 메사추세츠 주 보스턴 근교의 서재에서 모리 교수가 들려주는 삶과 죽음에 관한 수업에 참여하게 된다. 이것을 통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곱씹어 보게 된다. 세상이 중요하다고 선전하는 무의미한 것들에 매달리는 대신 타인을 동정하고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을 배우게 된다. 또 사는 것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 죽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배우게 된다.
내겐 유나라는 딸 아이가 있다. 그 아이가 모리 교수처럼 강하고 고운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며 엄마로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번역했다. 아니, 그보다 내 자신이 그처럼 강하고 고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 될 각오로 번역했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이 책은 나를 다시 깨어나게 해 준 글이었다.
번역에 오점이 있을 까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모리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우리 유나에게 바치는 그런 마음으로 여러분께 이 글을 바친다.
지금쯤 모리 교수가 천사가 되어 우리에게 삶이 조금 힘겨워도 괜찮다고, 진짜 의미 있는 것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라고 등을 두드려 주면 좋겠다. 그리고 이제 이 글을 끝맺고 김치를 담그러 부엌으로 가는 내게도 그 사람 좋은 웃음을 보내주었으면 좋겠다.
1998년의 어느 봄날
공경희
첫댓글 인생의 의미....사랑!
감사합니다..
모리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사랑하라. 나를 사랑하고 내 삶과 나의 죽음까지도 사랑하고.. 삶의 모든 순간과 그때 내 곁에 함께 있는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채워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코치~~ 그리고 레아님~~ ^^
사랑하는 사람이 말할 때는 생애 마지막 이야기인 양 관심을 기울이라고 .....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알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 수 있다.....감사합니다.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당신을 있는 그대로 귀한 존재로, 닦으면 자연스럽게 빛날 보석으로 봐 준 그런 스승이 있는가?
귀한책 읽을수 있어서감사합니다. 수고많이 하셨어요. 레아님~~
우리도 사랑깊고 훌륭하신 스승을 모시고 있으니 그 얼마나 행운인지요!
도반님들과 벗할 수 있어 감사하고 스승님께 늘 배우고 또 배우니 감사합니다^^
레아언님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