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말 제가 순천조례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소풍을 가는 장소는 왕지나 음곡에서 서면으로 넘어가는 노리재 아니면 신성포였지요.
지금은 순천에서 금당지구,신대지구 개발로 한동네가 됐지만
그 때는 왜그리 멀었는지요.
벤또(도시락)를 까먹고 거기에다 바다고동이나 작은 게를 잡아 한가득 갖고오곤 했지요
충무사 부근에서 보물찾기도 했고 국민학생이 걷기에는 꽤 먼 왜성까지 가서 구경했답니다.
충무사에 걸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가 지금도 선합니다.
왜성은 무슨 용도로 누가 쌓은 성이었는지도 모르고 흩어지다시피 널린
돌무덤 정도로 봣었지요.
그러던 신성포를 개인적으로 37년만에 가봤습니다.
가장 친했던 고교동창네 집에 군인시절에 한 번 가 봤었지요.
여기가 충무사 - 소풍가서 사진을 가장 많이 찍었던 곳
정유재란(1598년) 당시 왜교성 전투를 비롯하여 왜적 섬멸에 헌신하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막하에서 충무공을 도와 전공을 세운 정운, 송희립 장군의 영정을 봉안하고 탄신일과 귀천일에 제향을 모시는 사당이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숙종 16년(1690)에 주민들이 사당을 짓고 충무공의 위패를 모셨으나 1944년 일본인들이 불태워 순천향교 유림들이 광복 이후 1949년에 사당을 건립하고 매월 초하루 분향하고 있으며 사단법인 이충무공 유적 영구 보존회가 관리하고 있다.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48호로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위치해 있다.
충장 정운(1543∼1592)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선조 3년(1570)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서 옥포·당포·한산도 등 여러 해전에서 큰 공을 세웠다. 9월 부산포 해전에서 우부장으로 선봉에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송희립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운 장군의 군관으로서 영남지역에 원병파견을 주장하였고 이순신의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건물은 모두 4동으로 중심 건물인 사당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다.
|
|
|
저기 맨 윗계단에서 찍었지요.4학년때 정동일 선생님과
계단 아랫부분에는 양쪽으로 비석들이 많이 세워져 있습니다.
옹구막-삼동-성산-신대를 지나야 신성포에 도착했는데
신대쪽에서 흘러 들어오는 민물과 만나는 곳-다리 아래서 문절이(망둥이) 많이 잡았지요
바다쪽 -전체가 갯뻘이었는데 지금은 수로만 남기고 양쪽을 다 매립 하였습니다.
당시는 꼬막양식을 많이 하다가 나중에 굴양식으로 바꿨지요.그 흔적이~~
갯뻘이었던 곳이 매립지가 됐습니다.조만간 공장들이 들어서겠지요
신성포 마을이 보입니다.지금은 바닷가 포구가 아니라 내륙의 마을이 됐습니다.
마을도 옛날보다 많이 커진 것 같았습니다.
광양 쪽으로의 바다에는 이제 현대제철이 들어섰습니다.
왜성 쪽에서 마을을 보고 찍었습니다.
개인적인 추억이 있는 신성포입니다.처가가 될 줄 알고 친구집에 갔었지요^^
친구집은 잘 기억이 나지 않을정도로 마을이 변했더군요.
친구 여동생과 결혼들 많이 하지요?
친구 어머니가 지금 많이 아쉬워 한답니다.
여느 시골처럼 빈 집이 생기면 이렇게 텃밭이 되지요.
;
첫댓글 충의사가 아니라 충무사 아니냐?
충무사가 맞네~이정표를 의자로 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