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1922년에 발효된 워싱턴 조약과 그 이후의 런던조약 때문이었습니다. 즉, 일본해군이 보유가능한 주력함의 총 톤수는 영·미에 비해 60% (영·미 = 135,000톤 / 일 = 81,000톤)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이것은 일본이 가상적국인 미국에 대해 최저선으로 설정했던 대미 전력 70%선이 무너진 것을 의미했죠. 일본해군은 더 이상 자국이 보유한 주력함만으로는 미국의 주력함대를 상대할 수 없게된 것입니다.
그러한 배경하에서 일본해군은 주력함을 영격할 수 있는 중뇌장의 신형 보조함정들(특형 구축함 후부키 등)을 건조함으로써 주력함의 열세를 만회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보조함의 건함경쟁으로 인해 곧 런던조약이 체결되었고, 일본은 또다시 보조함정에서도 영·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의 함선만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해군의 전력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양과 질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것인데 이제 그중 한 축이 무너져버린 것이죠. 따라서 일본해군은 질로써 양의 부족을 만회한다는 발상으로써, 1척의 함선에 무리할 정도의 성능을 요구하는 철저한 "개함우월주의"를 일관되게 추진했습니다.
모가미 또한 그러한 발상이 설계 밑바탕에 깔려있었습니다.(동급 최강을 철저하게 추구한 덕분에 이름마저도 동급최강을 추구해서 「모가미(最上 : 최상)」랄까요? ^^;;) 어쨌거나... 모가미가 건조된 배경은 런던조약의 제한 때문이었습니다. 런던조약으로 중순양함의 건조가 제한된 결과 일본은 겨우 12척으로 중순의 건조를 마치지 않으면 안되었고, 이는 가상 적국인 미국이 18척까지의 중순양함 건조가 가능했던 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던 것이죠. 이미 주력함인 전함세력에서도 열세를 강요받고 있던 일본에게는 중순양함에서도 이러한 열세가 나타난다는 것은 매우 곤란한 일이었습니다.
중순양함의 열세를 어떻게 만회할 것인가? 고심 끝에 착안된 생각은, 런던조약의 헛점을 이용해서 비교적 여유 배수량이 남아있는 경순양함을 건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경순의 배수량 제한 한계 내에서 6척의 준 중순양함이라고도 할 만한 경순양함을 건조해서 미국에 대항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죠. 런던 조약에 따르면 중순양함과 경순양함의 차이는 오로지 주포의 구경에 있고(배수량이 얼마나 되는가는 상관이 없습니다), 6.1인치(155mm)를 넘는 주포를 갖는 함을 중순양함, 6.1 인치 이하의 포를 갖는 함을 경순양함이라고 했던 것이죠. 이 문구에 의하면, 155mm 구경의 주포를 갖는 대형의 경순양함을 건조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따라서 모가미급은 설계의 표준을 중순양함 기준에 따르면서, 단지 주포만을 155mm포로 하였고 덕분에 조약상으로는 경순양함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일본이 중순양함에 손색하지 않는 경순양함을 건조했다는 소식은 곧 각국에 전해지고, 대형에 강력한 경순양함의 건조가 주요 해군국에서도 곧 시작되었습니다.(미국의 브루클린급이 대표적이죠)
모가미급 건조시에 극비리에 고려되고 있었던 것은 조약이 파기되고 무장탑재의 제한이 없어진 후에는 155mm포를 중순용의 8인치(203mm)포로 교체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포탑 기부의 설계로부터 중량 배분, 탄약고내의 구조 등 고려해야 할 것이 상당히 많았고 설계 단계에서 주도면밀한 대비를 하고 있지 않으면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가미급은 처음에는 중순양함의 대용, 후에는 명실 공히 중순양함이 되기 위해 건조된 것이고 결국 조약이 파기된 후에 실제로 주포가 8인치 포로 교체된 것은 일본이 애초부터 조약을 성실히 이행할 의사가 없었음을 증명했죠. 그러나, 주포가 8인치 포로 교체된 이후에도 서류상으로는 여전히 경순양함으로 분류되고 있었다고 합니다.(정말 얍삽하군요-_-;;) 미드웨이 해전 당시까지도 미해군은 이 모가미급이 6인치급의 함포를 가진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이후에야 8인치급인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하죠.
2. 모가미급의 설계상 특징들
1) 무장 경순양함시 모가미급이 탑재했던 주포는 155mm/62구경 3식 함포였습니다. 장포신이기 때문에 초속이 빠르며 사정거리는 8인치(203mm)급 포에 필적했다고 하는군요.(보통 일본이나 영국의 8인치 포의 구경장은 50구경, 미국의 구경장은 55구경이었다고 합니다) 이 포는 100mm 65구경 고각포와 함께 제2차 대전당시 일본의 걸작포로 손꼽히며 그 핵심 포인트는 포신의 구조에 있었습니다
[(좌)초창기에 탑재한 155mm 함포 / (우)203mm 2연장 포탑]
포의 구경은 언제나 일정해야 하지만, 발포 순간 폭발가스의 압력으로 팽창하여 구경이 커지게 됩니다. 이 변형을 막기 위해 종래의 포는 포신 내통의 주위에 장력을 강하게 건 와이어를 칭칭 감아, 이 와이어의 장력과 가스압을 함께 적당히 조절하여 포신의 팽창을 막는 성층식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방식으로는 포신이 대단히 무겁게 되므로, 구경장을 50구경보다 더 길게 하면 포신 끝의 쳐짐현상이(포신 자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끝이 쳐집니다) 심해서 명중율이 저하됩니다. 그래서 모가미의 155mm 포는 자긴식이라고 불리는 방식을 채용하였고, 이는 포신 내통에 잔류 응력을 발생하게 하여 가스압 조절과 함께 포신의 변형을 막아 62구경이라는 장포신을 탄도 특성의 희생없이 달성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포탑 배치 형태 비교 : (좌)묘코 / (우)모가미]
주포부분에 관한 또 하나의 특징은 3연장 포탑 5기의 배치에 있었습니다. 이전의 묘코급·다카오급에서는 2번 포탑이 1단 더 높은 위치에 있고, 이 뒤에 3번 포탑을 역행으로 피라미드 형태로 탑재했죠. 반면에 모가미급은 1·2번 포탑을 낮은 위치에 나란히 배치하고, 3번 포탑을 1단 더 높게 하여 2번 포탑의 후방 상부에 배치했습니다. 이 결과 3번 포탑의 사계가 넓어지게 되었고, 이 3번 포탑과 후방부의 4번 포탑 사이는 갑판도 한 계단 더 높게 하여 그 전후단을 3·4번 포탑의 바벳에 연결하는 선체 구조로 했습니다. (그러나 이 설계는 나중에 주포탑의 선회 불능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낳았습니다)
한편, 1939년에 주포를 155mm 3연장 5기에서 8인치급(203mm) 2연장 5기로 교체했다는 사실은 앞서 말했습니다만, 주포의 교체 문제는 일본 해군 내에서도 꽤나 말이 많았다고 합니다. 즉, 6.1인치(155mm)에서 8인치급(203mm)으로 주포를 교체하면 탄중량이 늘기 때문에 공격력이 증강된다는 주장과, 포의 명중 정밀도(일본 해군은 이 명중정밀도에 광적으로 집착했습니다. 백발일중의 포 100문과 백발백중의 포 1문이 싸우면, 백발백중의 포 1문이 이긴다는 전투철학을 가지고 있었죠), 포구초속, 연사성능 등의 모든 점에 있어서 155mm포가 더 우수하며, 포문수도 교체 이전의 2/3 수준이 되어 버리게 되므로 실질적으로 공격력이 떨어진다고 보는 주장이 강하게 대립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역시 애초부터 중순양함이 되어서 주력함을 상대하기 위해 건조됐던 만큼, 모가미급의 주포는 예정대로 8인치급(203mm) 2연장 5기로 교체됩니다.
주포 교체후 여유가 부족해진 포탑 간격]
다만 1번 포탑과 2번 포탑 사이의 간격이 8인치 포탑의 크기에 비해 너무 좁아서, 주포 교체 후에는 2번 포탑의 사각이 꽤 좋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한편, 8인치 포로 개장하면서 제거된 6.1인치(155mm) 3연장 포탑은 야마토급 전함의 부포나 오오요도급 경순양함의 주포에 유용되었다고 합니다.
양현에 2기씩 탑재된 127mm 고각포탑]
고각포는 127mm/40구경 포를 8문 탑재하고 있는데, 이는 후루타카급의 120mm포 4문에서 대폭적으로 증강된 것입니다. 사격 통제에는 91식 고사장치가 사용됐고, 어뢰 발사관은 24인치(610mm) 93식 산소어뢰 발사관을 12문 탑재하여 강력한 뇌격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다. 발사관의 배치는, 이전의 후루타카급에서는 전방의 어뢰 발사관이 함교에 대해 아주 가까이 있어서 유폭시에 큰 피해가 우려됐었기 때문에 모가미급에서는 어뢰 발사관이 최대한 후방으로 옮겨졌죠. 2) 기관 이전의 순양함들에 비해 크게 진보했었던 것이, 설계당시 요구된 37노트라는 경이적인 성능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기관부였습니다. 기관의 계획 출력은 152,000 SHP인데, 이는 전함 야마토보다도 더 출력이 강하며 항공모함 쇼오가쿠·다이호(160,000 SHP), 히류(153,000 SHP)에 뒤이어 일본해군 함정 중 3번째의 고출력이라고 합니다. 기관 배치는 모가미, 미쿠마와 2년후에 준공했던 스즈야, 쿠마노가 각각 약간씩 달랐습니다. 모가미·미쿠마는 보일러가 10기인데 대해서 개량형이라고 볼 수 있는 스즈야, 쿠마노는 동일한 출력을 8기로 달성하고 있지요.
[모가미의 기관 배치]
증기 조건은 양쪽 모두 동일하여 섭씨 300℃ 22기압인데, 뒤에 대출력함의 표준이 된 350℃ 30기압에 비할때는 약간 낮은 편입니다. 모가미, 미쿠마는 10기 10실, 스즈야, 쿠마노는 8기 8실의 배치이며, 스팀 터빈은 모두 동일하게 4기 4실입니다. 스즈야의 기관 배치는 기관의 조작이 쉬워서 이후의 고속형 대형함의 표준 배치가 되었으며, 중순양함 도네급, 항공모함 쇼가쿠·다이호 등에 채용되었습니다. 이러한 배치는 선체 중심선에 칸막이벽을 설치하여 침수시 경사를 부르기 쉬운데, Shift배치 (보일러-터빈-보일러-터빈)가 되어 있지 않아 일거에 추진력을 상실할 수도 있는 결점이 있지만, 이러한 배치방식은 모든 일본 전투함정들이 가지는 공통의 것이어서 특별히 뭐라고 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속도 면에서 신조시의 모가미급은 최대 속력 37노트를 발휘했었지만, 선체 강도·복원성 등의 문제에서 큰 문제점이 있어서 성능 개선 공사를 한 결과 속력은 35노트로 저하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수준도 다른 외국의 중순양함에 비하면 충분히 대등한 정도였지요. (*주 : Shift배치에 대해서는 ???님의 블로그에서 "기관 이야기"라는 글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http://danew.net/warship/index.php?pl=41&ct1=4#
3) 방어 방어 방식에 있어서도 모가미급은 이전의 순양함들과 크게 달랐는데, 그것은 현측(뱃전)의 수선부 및 수중방어 방식에 있어서 특히 크게 차이가 났다는 점입니다. 후루타카급 및 묘코급에서는 이 양자가 분리되어 있고 수중방어용의 방어격벽이 수선부 장갑판 하단에서 구부러저서 선체 안쪽으로 들어가서 방어력의 연속성 면에서 문제가 있었지만, 모가미는 수선부 장갑의 하단이 그대로 두께가 줄어들면서 배의 밑바닥까지 늘어져, 어뢰 방어와 수중탄 방어를 겸하고 있었습니다.
[장갑구조 : (좌)후루타카 / (우)모가미]
이렇게 현측 장갑이 수중방어 격벽에 연속적으로 연결되어가는 방식은 전함 야마토나 아이오와에서도 채용되어 대 포탄 방어와 어뢰 방어를 능숙하게 겸했던 가장 합리적인 방어 방식입니다. 수선하부에는 당연히 어뢰의 폭발력을 흡수하기 위한 벌지가 장비되어 있었고 수선부 장갑은 외부에 노출되어 있다가 후에 성능 개선 공사를 함에 따라 추가의 벌지가 장착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이 벌지에 의해 덮여진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 모가미급의 방어 등급은 먼저 말했던 것처럼 대 8인치 포탄용이어서 방어력에 있어서는 완전히 중순양함과 동등할뿐만 아니라 실전에 있어서도 높은 방어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3. 준공 후의 트러블
여기까지만 읽고보면 모가미급은 성능상 대단히 우수하고 실전에서도 많은 공적을 쌓았을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 실상은 위와 같은 생각과는 대단히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모가미급은 1만톤 중순양함과 비교할 때 무장·방어력 면에서 동등하며 속력에서는 더 우세한 성능을 가졌지만, 1만톤보다도 훨씬 작은 8,500톤의 기준 배수량으로 이러한 요구 성능을 달성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무리를 가한 결과 실제 운용에 있어서 많은 문제점이 발생했던 것이죠.
[의장공사중인 모가미]
[준공후 공시중인 모가미]
이것은 주로 선체 강도와 복원성의 부족이었는데, 한정된 총 중량속에서 과잉한 성능 요구를 채우기 위해 경량화를 대폭 추진했더니 결과적으로 강도 부족이라는 큰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즉, 모가미급에는 중량 효율과 건조기간 단축을 위해서 건조 당시 많은 부분에 전기용접법이 사용됐는데, 일본의 미숙한 전기용접기술이 원인이 되어 함체의 강도가 형편없이 떨어졌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시운전 때 기관을 전출력으로 운전했더니 그 진동으로 선체에 금이 가고 함수외판에 변형이 생겼다고 하는군요. 또한 큰 무장 중량에 비해서 선체의 크기가 기본적으로 작아서 복원성에도 문제가 있었고, 3번 및 4번 주포탑이 설계의 미비에 따라 선회 불능이 되는 문제도 생겼습니다.
보강공사에 따른 내부 구조 변화]
강도 부족에 대해서는 시운전의 뒤에 보강 공사를 하고 난 뒤 재취역하는 것으로 해결이 된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훈련중에 2번함 미쿠마와 함께 다시 한번 외판에 변형이 생겼기 때문에(-_-;;), 근본적인 성능 개선 공사가 요구되었지요. 그 결과, 1∼5번 주포탑에 이르는 넓은 범위에 대규모 벌지가 2,000톤 가까운 배수량 증가와 함께 설치되었고, 이 중량을 이용하여 고각포 갑판 및 상갑판의 현측 밑바닥에 20mm 전후의 강철판을 추가하여 함체를 보강했습니다.
[포탑 선회 불능 사건의 개요]
주포탑의 선회 불능은 선체 중앙부에 한 계단 더 높은 고각포 갑판을 강도 갑판(피칭, 롤링시 인장력을 견디는 갑판)으로 하고 이 전후단을 3·4번 포탑의 바벳에 직결한 구조를 채택한 탓에, 온도 변화에 따라 일어나는 선체의 신축(그 외 과학시간에 배우는거 있잖습니까? 철로가 여름에는 늘어나고 겨울에는 줄어든다는 이야기..)이 그대로 포탑으로 전해져서 포탑이 변형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결국 고각포 갑판과 바벳을 분리하는 공사를 실시하고 나서야 해결되었죠. 이 공사는 3번함 스즈야의 경우 시운전 전에, 4번함 쿠마노의 경우 진수 전에 행해졌습니다. 개조 공사의 결과 함폭 및 흘수가 증가하여 최대 속력은 당초의 37노트에서 35노트로 저하되었지만, 그간 발생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좌)연돌 주변부 / (우)함교의 디테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