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의 새처럼
최정호
내일 모래는 새벽 잠을 설치고 아침도 거르며 06시 35분 시내버스를 타야한다. 그래야 전주 시청 앞에서 매주 월.수.금. 08시 정각에 출발하고 오후 15에 되돌아오는 광주 보훈병원셔틀버스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일 때문이 아니고 이웃이자 전우인 지인을 위하여 광주보훈병원에 함께 가야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고 어쩌다 부딪치면 내가 먼저 아는 체 하여야 하는 이웃이지만 귀가 어두워 상대방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인지 능력이 떨어져 대화가 원활하지 못하니 심도 있는 대화가 어려운 이웃의 전우에 불과한 사이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담배까지 항상 입에 물고 다니는 골초 마니아이다.
언제나 담배를 물고 다니기에 접근을 멀리하는 사람이지만 그 사람의 인지나 언어나 보행이 딱하여 지난번 광주 보훈병원에 갈 때 자발적으로 동행을 권하였고 파킨슨 검사를 받을 수 있게 인도해 주워서 앞으로도 3 번을 더 가주어야 끝나는 검사라 하루해를 소비해야 하는 피곤을 무릅쓰는 82세가 자비의 경비로 하는 여행이다.
비록 나보다 3살 아래이지만 인지가 떨어져 부인이 동행한다 하면서도 자신 없으니 내가 동행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여러 번 전화를 걸어와서 같이 가달라고 말은 못하지만 속내를 알 수 있고 나 자신도 도와주는 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같이 가 주겠다고 안심을 시켜 주면서 그 날을 허비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 일 때문에 가야하고 숙제를 푸는 것 같이 기다려지는 날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오지랖도 넓다고 생각할 것이나 나는 그런 성품으로 60 년도 십대 때에 굶주리는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몸을 던졌었고 70년도는 가족과 형제 9식구를 위하여 새벽 4시부터 해 저물도록 뛰었고 양부모와 7형제의 가족 대소사를 앞장서 이끌며 다니는 교회마다 헌신으로 앞장서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딸들이 다 자란 후 알게 된 원망이지만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일과 교회의 헌신에만 앞장 서기 때문에 자기들한테는 소호하게 대한 게 원망이 된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으로 이 나이에도 원망의 소리를 종종 듣는 것이다.
내 나이 7~8세 때 일이다 그 시절에는 미비한 의술과 세끼 밥조차 먹기 힘든 시절이이고 집집마다 태어나는 자녀들의 숫자나 사망하는 숫자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고 전염병이나 알지 못하는 질병도 허다한 시절이었고 내 밑에 1~2살 된 기막히게 예쁜 남동생이 질병에 걸려 위태로운 지경에 있었고 나는 그 동생을 업고 다니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를 제발 이 동생을 꼭 살려 주세요 꼭 데려가셔야 한다면 저를 데려가시고 대신 예쁜 동생을 살려주시라고 기도하며 대나무 숲 고목나무 밑에서 둥개를 잡으려다 손등에 왕벌에 쏘였고 그 통증을 참으면서도 내 동생이 쏘이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기도하고 기도했지만 나의 기도는 들어주지는 아니하셨다.
한번은 나에게 이모님이 주신 약 4~5만 원쯤 되는 돈을 안주머니에 넣는다는 게 윗주머니 속으로 빠져버린 것을 알고 뒤 돌아 보니 나보다 두 살 아래로 평소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친구가 주어들며 자기 돈이라고 울며불며 쇼를 하기에 억지로 제압하지 않고 포기한 일도 있었지만 지금도 금전으로 얽인 것은 언제나 내가 포기하는 게 일상이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씨 뿌리지 않고 쌓아 놓지 않는 제비처럼 거칠 것 없이 훨훨 푸르른 하늘이다.
첫댓글 초록펜글씨님의 그 성품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좋은 일도 좋지만 위험부담이 느껴지는 일은 멀리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건승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 나이에 평소에 조심을 하려는 생각이지만
의지를 꺾으면서까지 성격을 고칠 생각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