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죽이는 일”과 “살리는 일”
그런데, 오래 전 옛날부터 지식이 있는 몇몇 사람들이 성경의 원칙에 따라서 단순하고도 진실하게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서 말하기를, 회개는 두 부분으로 - 곧 죽이는 일(mortification)과 살리는 일(vivification) - 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들은, 여기서 말하는 "죽이는 일"이란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심판을 알게 됨으로써 품게 되는 영혼의 슬픔과 두려움이라고 설명한다. 누구든지 죄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갖게 되면, 죄를 진심으로 미워하고 혐오하기 시작하는 법이다. 그리고 이어서 자기 자신을 마음 깊이 불쾌하게 여기며, 스스로 비참한 자요 버림받은 자라고 고백하게 되고, 자기가 다른 사람이기를 바라게 된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지각을 얻게 되면(죄와 심판은 곧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충격을 받고 완전히 무너지며, 낮아지고 던져진 상태에서 떨게 된다. 그리고 실망과 절망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바로 이것이 회개의 첫 번째 부분으로서 보통 “통회"(contrition)라고 부른다.
또한 "살리는 일"이란 믿음에서 생겨나는 위안과 위로(consolation)를 가리킨다. 즉, 사람이 죄를 의식하여 슬픔을 갖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완전히 무너져버린 상태에서 다시 하나님의 선하심을 - 그의 긍휼하심과 은혜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 등을 - 바라보게 되면, 스스로 일어나게 되고 마음을 가다듬게 되며 용기를 갖게 되고, 말하자면 죽음에서 생명으로 되돌아오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는 말이다. 이 두 단어들은 올바로 해석하기만 하면 회개에 담긴 의미를 충분히 잘 표현해준다 하겠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살리는 일"을 불안과 두려움이 진정된 이후에 얻게 되는 마음의 행복감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가 없다. "살리는 일"이란 오히려 거룩하고 헌신된 삶을 살고자 하는 열심을 의미하며, 거듭남에서 생겨나는 열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죽어서 하나님께 대하여 살기 시작한다는 말처럼 그런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존 칼빈, "3.3.3.", 『기독교강요(중)』(크리스챤다이제스트), p.43. |
첫댓글 존 오웬이 칼빈의 신학을 계승했다 그렇게 이해하면 되는 거죠? 좋은 글 읽고 감사합니다. 회개와 성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셔서요.
네, 어거스틴 - 칼빈 - 존 오웬 - 조나단 에드워즈... 연결선이 있습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존 오웬에 대해서 많이 아시는 것 같습니다. 유익한 글 잘 보고요. 좀 배우겠습니다.^^
저는 청교도를 먼저 알고 이후에 칼빈을 알게 됐는데, 그 관심을 증폭시킨 분이 존 오웬입니다.
솔직히 오웬을 잘 아는 것까지는 아니고요. 오웬의 책과 그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저에게 오웬에 대한 관심을 더욱 증폭시킨 분은 김남준 목사님입니다^^
칼빈이 '죄 죽이기'와 '영 살리기'의 설명을 상당히 정확하게 했군요. 특히 영 살리기의 설명이 은혜롭네요. 어거스틴 칼빈 오웬으로 이어지는 신학적 흐름을 알 수 있어 좋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구원의 서정은 윌리엄 퍼킨스와 존 오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오웬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흐름에서 진보하여 회중교회의 신앙고백서 작성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학의 원천은 성경과 칼빈 신학이었습니다.
구원의 서정, 성화론(죄 죽이기) 외에 오웬이 탤런트를 발휘한 분야는 배교론(apostasy)인데요. 구원은 받지 못하고 사역에서만 쓰임 받는 자들(예: 발람, 가룟 유다)이 있음을 주장했습니다. 주님께로부터 신학적인 통찰력을 많이 공급받은 분으로 보입니다.
@장코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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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관심과 댓글에 감사합니다.
<죄 죽이기>(크리스천다이제스트)를 번역한 박문재 목사님은 <칼빈주석>을 라틴어판에서 번역했던 실력자입니다. 그래도 번역은 비교적 잘 돼있다고 봅니다. <죄 죽이기>의 영어 원제가 The mortification of sin인데요. mortification 교리는 칼빈이 이미 주장을 했었고요. 오웬은 그 연속선 위에서 더욱 특화를 시킨 분입니다.
배교론은 개념언어로서 Apostasy인데요. 이 배교론을 평신도들도 보기 "쉽게 요약한 책"이 Apostasy from the gospel입니다. Apostasy from the gospel을 생명의말씀사가 번역해서 국내에 출판한 제목은 <왜 그들은 복음을 배반하는가>입니다. 오웬의 배교론에서 독특한 점은... 중생, 칭의되지 못한 위선자들도 성화를 흉내내고 거짓된 확신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왜 그들은 복음을 배반하는가> 책 표지, 클릭시 확대됩니다.
배교론에 관한 글 하나 올렸습니다.
https://cafe.daum.net/1107/YY6J/6
칼빈 선생님의 글을 읽고 다시 한 번 회개에 관해 바른 생각을 정립하게 됩니다. 특히나 영살리기가 단순히 마음의 행복과 평안이 아닌, 다시 한 번 죄에 맞서 싸우며 성화의 삶을 살아가려고 애쓰는 것이라는 표현을 잘 새겨 듣게 됩니다.
성령께서 형제님에게 진리와 복음을 아는 귀한 축복을 주신 것 같습니다. 형제님은 오웬 성화론의 main idea를 잘 파악하신 것 같습니다.
극단적 세대주의자들, 구원파, 긍정적 사고방식만 강조하는 신비주의자들은 회개와 성화를 모르는 정도에서 멈추지 않고 오히려 비판을 합니다. 참 안타까운 분들이지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