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POetKMox3g4?si=ysgsYGMWsK3iGVtz
프리드리히 2세(독일어: Friedrich II, 1712년 1월 24일 ~ 1786년 8월 17일)는 독일 프로이센 왕국의 제3대 프로이센 국왕이다(재위 : 1740년 5월 31일 - 1786년 8월 17일). 종교에 대한 관용 정책을 펼치고 재판과정에서 고문을 근절한 계몽군주였다. 한국식 이름은 후례두익(厚禮斗益)인데, 1908년 유길준의 보로사국후례두익대왕7년전사(普魯士國厚禮斗益大王七年戰史)
국가를 통치하고 인재를 기용하는 것과 군대 조직과 군대의 지휘, 정복전쟁 지휘를 직접 담당하는 등의 역할을 모두 빈틈없이 해결했다. 뛰어난 군사적 재능과 합리적인 국가경영을 발휘해 프로이센을 당시 유럽 최강의 군사대국으로 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플루트 연주 등 예술적 재능과 관심까지 겸비하고 있었기에 계몽전제군주의 전형으로 여겨진다.
또한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독일 제국 내의 프로이센의 패권을 차지하였다. 오스트리아와 주변 강국에 맞선 외교전략과 전쟁을 통해 프로이센의 영토를 확장하고 유럽 최강의 군사대국으로 만든 특출한 군사 전략가였다. 그는 신성 로마 제국의 해체와 독일 통일을 이루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또한 군사 병력을 위해 국민징병제를 실시해 프로이센 남자들만 군입대를 시켜 군사훈련을 강화시켰다[1]는 평가도 있다.
또한 가톨릭과 개신교간의 갈등이 극심했던 독일내 왕국, 공국들과는 다른, 모든 종교에 관용적인 정책을 폈고 보통교육을 확대했으며 성문헌법 제정작업에도 참여했다. 정치분야에서는 스스로를 국가의 첫 번째 종이라고 자처하면서 전제정치에 인간적인 자비로움을 접목시키려고 시도해 개화된 독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샤를마뉴, 나폴레옹과 함께 유럽의 위대한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후세에 독일인들로부터 프리드리히 대왕(Friedrich der Große, Friedrich der Grosse, Friedrich the Great), 영광의 프리드리히(honor of Frederick) 등으로 불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