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아테네의 흥겨운 밤
파르테논 신전과 박물관을 관광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음료수를 하나씩 들고, 쉴만한 자리를 찾아
이동한 곳이 바로 아레오바고 언덕 주변이었다.
아...아레오바고여....!!!
파르테논 신전과 이 아레오바고 언덕이 있는 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는 아테네 시가지가 비교적 잘
내려다 보인다. 동서 사방으로 탁 트여서 시가지가 아주 시원하게 보이는 곳이다. 휴식장소에서 가이드가
"이곳이 아레오바고 라고 하는데, 바로 바울(Paul)선생이 아테네 철학자들과 시민들 앞에서 사자후(獅자吼)를
토하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개" 를 하든 장소라고 한다.
가이드의 이야기를 듣고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언덕의 석벽(石壁)에 부착해 놓은 동판에 가까이 가서
찬찬히 살펴보니 바로 사도행전 17장 22절 부터 시작되는 저 유명한 설교 내용을 그리스어로 새겨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이 동판을 어루만지며 대사도(大使徒)의 발자취를 느껴본다는 감동에 가슴이 떨렸다.
아아...바로 여기로구나.....!!!
철학의 도시, 지식과 지혜를 사랑하는 전통의 도시 이 아테네에서 유일신의 종교이자 당시로서는 신흥종교인
기독교를 전하려고, 온갖 고난과 역경을 딛고 동분서주 하던 어른의 생생한 발자취를 여기에서 대하고 보니
다시금 추모의 마음이 안개처럼 피어난다.
바울이 전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상징되는 히브리 종교와 문화가, 서양철학의 진원지라 할 수 있는 아테네의
철학과 다신교 문화가 바로 이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정면으로 맞닥드리는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바로 거기다.
인류의 정신사적으로 본다면 히브리즘의 진수(眞隨)인 기독교 복음과, 헬레니즘의 핵심인 헬라(그리스)의 철학과
인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만나서 상호간에 깊은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서양문명의 양대 산맥을 이루면서, 후세의
인류사를 형성해 나가는 의미있는 만남이 이루어 진 곳이다.
참으로 이 작은 언덕과 주변의 광장은 이렇게 그 종교사적으로나, 인류의 사상사(思想史), 정신사(精神史) 측면
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고 중요하다 하겠다.
저 눈에 보이는 세계문화유산 제1호인 파르테논 신전의 가치보다도 더 중요하고 깊은 의미가 있는 곳이 바로
이 아레오바고 언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에게해로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내려와서 점심 식사를 하고 식당주변에 우리 교포내외가 운영하는 매장에서 올리브를
재료로 만든 크림과 비누 그리고 샴푸 등을 쇼핑하였다. 발칸 반도의 남단(南端)에 자리잡고 있는 그리스는
지중해 연안 국가중 하나이다. 이 나라는 올리브 제품이 하나의 특산물로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장소를 옮겨서 첫 올림픽이 개최되었다는 경기장을 찾아보니 여러 나라의 국기가 게양되어 있는 가운데,
우리의 태극기도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내 나라 국기를 만난다는 것은 자주국가 국민으로
서의 가슴을 뿌듯하게 해 준다.
저 국기가 세계를 향해 더욱 힘차게 휘날릴 수 있도록 국민된 도리를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간다.
이제 우리는 에게해로 나아가서 에기나 섬을 관광하게 된다.
아테네에서 선박으로 약 한시간 남짓 항해하니 이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니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위도 족히 견딜 만 하다. 에기나 섬에서 바다와 섬풍경을 느껴보다가 다시 아테네로 돌아왔다.
터어키와는 역사적으로 숙명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그리스는, 터어키 앞바다의 크고 작은 섬들을 영토로 편입
하는 대신 지금의 터어키 북쪽의 이스탐불(콘스탄티노풀 또는 비잔틴)을 중심으로 하는 넓은 땅을 터어키에 내
주어야만 하였다고 한다.
바로 고대 트로이제국이 차지하고 있던 그 땅이다.
출국전에 가족들과 트로이 영화를 감상하였는데, 이 일대의 지도를 살펴보니 영화에서 보았던 지도의 추억이
생생하다. 아울러 열연하든 이 영화의 주인공들의 모습이 잠시 내 머리를 스쳐간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에서는
비행기는 물론이고 기차와 버스, 선박까지 다양한 교통수단을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창공을 날기도 하고, 세느강과 융프라우 높은 고개며, 이태리 중북부일대를 버스로 누비고, 이제는 지중해를 선박
으로 항해하고 있는 것이다. 베니스에서 조그만 보트를 타고 체험관광을 한 것까지 참 다양한 교통수단을 경험해
보았다.
깊어가는 아테네의 밤
저녁식사는 푸짐한 양고기로 대신하였다.
포도주와 양고기...정말 맛있는 성찬(盛饌)이었다. 밤에는 이 나라 민속춤이 공연되는 공연장 체험이 예정되어
있었다. 공연장은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출연자들이 각기 이나라 특유의 복장을 하고 노래와 춤을 선보였다.
우리 일행도 함께 어울려 노래도 따라 부르면서 여흥시간을 즐겼다. 이제 이시간이 지나면 내일 그리스 방송사와
전기회사를 방문하는 일정외에는 모든 여정이 마무리 되는 셈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이번 여정의 순탄함과 일행들의 건강을 걱정하면서 적지않은 신경을 써 온 일들도 이제는 저
추억의 시간들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어두움 속에서 하늘을 보며 가슴 뿌듯한 상념에 젖어 본다. 여기까지 선히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또한 남은 여정도 좋게 마무리 되기를 조용히 기도한다.
아테네에서의 마지막 밤이 이렇게 점점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