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아이스
이정원
너를 읽지 못했어
네 속에 꽉 들어찬 검정을 보지 못했어
검정의 표면이 얇은 나비 날개인 걸 몰랐어
힘겹게 날아오르지만 금세 젖거나 찢어진다는 걸
들키지 않을 만큼 흐느끼는 어깨에 간밤
매트리스 같은 고독이 무서리를 깔았다는 걸
불면의 핸들 갈팡질팡 핸드폰 불빛으로
지형도와 지형지물을 찾고 있었다는 걸
몰랐어 그런데 몰랐다는 건 좀 그래
너를 가장 잘 읽어 내야 하지만
내게도 숯검댕이 검정이 있어
은폐한 검정 위에 덧바른
당의정 노란 두께가 있어
너도 나를 읽지 못했어
우린 서로를 읽지 못했어
손톱을 깨무는 버릇 귓불을 만지는 버릇 따위
실은 살얼음이야 가벼운 결빙의 속울음이야
네가 깐 살얼음에 늑골이 얼얼했듯
너도 한번 미끄러져 봐 나가떨어진 거기서 젖은 날개를
툭툭 털어 보라고!
다시 날아 보라고!
서로를 읽는 건 서로의 상처를 만지는 일 조심스레
자신의 예리한 얼룩을 지우는 일
휘묻이한 말의 가지들이 새로 움터
반짝반짝 빛나는 날
이제 정말 너를 읽기로 했어 검정의 감정을 감정의 날개를
너는 나비 내 마음의 경첩에 간당간당 붙들린
언제 떨어져 나갈지 모르는
읽다 만 페이지에서 바스러지는 얼음 조각이 보였어
이정원시집 『몽유의 북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