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7. 25
최근 우리 남녀 배구 대표팀 경기를 볼 때마다 참으로 안타깝다. 여자 대표팀의 발리볼 네이션스리그(VNL) 참패에 이어 남자 대표팀의 챌린지컵 아쉬운 경기력으로 연일 안 좋은 팬 반응과 기사까지 쏟아지고 있다.
적지 않은 배구인이 올여름 우리 대표팀 부진을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하지만 프로배구 출범 20주년을 맞는 우리 배구가 국내 리그의 인기 상승과는 별개로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은 뼈아픈 현실이다.
한국 배구는 단순한 위기의식을 갖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더는 물러날 곳이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국 배구가 국제무대에서 성적이 떨어져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몇 가지를 짚어본다.
▲ 2023 VNL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FIVB 캡처)
변하지 않는 대표팀 시스템 : 사라진 한국 배구의 특징
2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배구는 아시아의 맹주였다. 끈끈한 수비를 바탕으로 조직력이 강점인 팀 색깔을 가진 덕분이다. 많은 이들이 유스 대표팀과 청소년 대표팀부터 좋은 성적을 내고, 성인 대표팀에서 기량을 꽃피운 덕에 남녀 배구 선수가 많은 인기를 얻었다. 해외 팀과의 교류도 지금보다 더 활발했고, 좋은 팀 컬러를 바탕으로 다른 국가로부터 초청을 받아 경기를 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현재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국제 대회의 성적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을 할 것이다. 하지만 당장 눈앞의 성적만을 쫓아 흘려보낸, 아니 흘려 버린 시간이 벌써 몇 년째인가.
가까운 일본의 사례만 보더라도 우리와는 상당히 다른 점을 찾을 수 있다. 내가 직접 지켜본 일본은 시즌이 끝난 후 40여 명의 선수를 대표팀에 선발했다. 많은 선수가 함께 훈련하면서 타이트한 대표팀 경기를 대비해 보다 수월한 로테이션을 구성했다.
▲ 아시아 최초로 VNL 준결승전에서 이탈리아를 이기고 3위를 기록한 일본 대표팀 (FIVB 사진 캡처)
1군이 대회에 출전을 하면, 2군 선수들은 따로 훈련을 하면서 변수에 대비를 하는 식이다. 만약 1군 선수들이 대회에 출전한 기간에 다른 대회가 있다면 2군 선수들이 출전한다.(실제로 이번 VNL이 진행 되는 동안 2군 선수들은 이탈리아에서 해외 전지훈련을 진행했다.)
외국팀을 상대하는 경험의 중요성을 많은 선수가 직접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일본은 이번 VNL에서 남자팀 아시아 최초로 3위, 여자팀은 8강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대표팀을 통해 더 많은 선수가 풍부한 경험을 쌓는 것은 물론, 나이 어린 선수에게는 베테랑 선수와 대표팀에서 함께 훈련하는 기회를 통해 선수로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내 경험을 통해서도 동경하던 선배의 모습을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은 물론, 선배들의 말 한마디가 어린 선수들에게 그 어떤 훈련보다 중요할 때가 다가오기도 했다.
▲ VNL 베스트 아웃사이드 히터를 수상한 이시카와 유키 선수 (FIVB 사진 캡처)
한국 배구계는 매년 대표팀을 선발할 때 선수가 부족하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중고대회를 다니다 보면 눈에 띄는 유망주는 종종 보이곤 한다. 이들에게 유스 대표팀이나 청소년 대표팀의 경험을 쌓도록 기회를 나누고 이를 발판 삼아 성인 무대에서 꽃을 피울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수 선발 과정부터 육성까지 시스템을 갖춰 자연스럽게 대표 선수로 국제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연계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경기력 그리고 사라져만 가고 있는 선수들의 의식 : “괜찮아” 속에 숨겨진 목표의식
국제 대회에 출전한 대표팀의 좋은 성적은 프로배구 V리그의 인기로 이어진다. 이는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08 베이징 올림픽의 축구, 야구 그리고 2021도쿄올림픽 4강 신화의 사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V리그의 인기가 좋아지며 선수들의 대우도 확실히 좋아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좋아진 환경과는 반대로 코트에 나서는 선수들의 목표 의식이 뚜렷하지 않고, 사명감도 퇴색된 것처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헝그리 정신’까지는 아니더라도 프로라는 이름에는 분명 그에 걸맞은 책임감과 자기관리가 기본이다. 이를 바탕으로 코트 위에서 모든 것을 쏟아내고 승리라는 목표를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한다.
▲ AVC 챌린지컵 남자배구 대표팀 (AVC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V리그 경기를 보다 보면 선수 사이에 “괜찮아”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분명 괜찮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괜찮아”라는 말속에 숨어버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선수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괜찮다’는 단어는 사전적으로도 ‘나쁘지 않고 보통 이상’ 또는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실수로, 또는 동료의 실수로 인해 상대에게 점수를 주게 된다면 승리와는 한 걸음 멀어지는 것이다.
분명 ‘괜찮아’라는 말보다는 ‘다시 해보자’라는 말이 더 필요한 상황이지만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면 분명 팬들도 이를 알아챌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생선수들의 학습 보장권 : 달라진 훈련 환경
최근 배구계에서는 학생선수들의 학습 보장권으로 인해 경기력이 하락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실제로 대학 선수들은 학업 때문에 대표팀 선발에 어려움이 있고, 중고등학생 역시 수업과 훈련을 병행하게 되면서 과거에 비해 운동할 시간이 부족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정책적인 문제다. 배구만 달리할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체육 종목이 마주한 현실이고, 어려움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 대통령배중고배구대회
과거 내가 학생 때만 해도 하루 평균 8시간을 운동했다. 눈 뜨는 순간부터 눈 감는 순간까지 운동, 또 운동이었다. 하지만 이젠 과거처럼 새벽 운동을 시작으로 오전과 오후, 야간까지 운동을 하며 ‘절대적인’ 훈련량으로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없다.
이제는 훈련에 임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많은 지도자도 고민하는 지점이다. 똑같은 시간을 훈련하더라도 선택과 집중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훈련의 양보다 질에서 승부를 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비록 훈련 시간이 짧아졌더라도 더 높은 효율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고, 노력해야 한다. 선수들이 빠르게 이해하고 경기력으로 보일 수 있도록 지도 방식과 훈련법에 변화를 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내가 했던 것과 내가 배웠던 것이 무조건 옳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물론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코트에 나서는 이들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나 역시 학생들을 지도하는 경험을 해보니 요즘 세대들에게는 기본을 이해시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냥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하는 배구가 아니라, 코트 위에 서있는 선수가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배구가 이젠 필요하다. 선수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 코트 위에서 변화되긴 힘들다.
/ 대한 배구협회, 한국배구연맹 (홈페이지 사진 캡처)
우리 배구의 경쟁력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위에 언급한 세 가지 문제뿐 아니라 세부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들이 더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한국 배구의 전반을 주관하는 대한 배구협회와 프로배구를 운영하는 한국배구연맹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단체가 손잡고 한국 배구의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 당장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한국 배구가 다시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육성에 초점을 맞추었으면 한다. 그리고 더 이상 탁상공론에 그치지 않고, 현실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도록 힘을 모았으면 한다.
무엇보다 배구 발전의 가장 대표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는 대표팀 운영에 있어 배구협회와 배구연맹이 힘을 모아 비전을 제시해 주길 바란다.
윤봉우 / 전 프로배구 선수
네이버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