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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일시: 2017년 2월 18일 (토)
o 날씨: 맑음
o 산행경로: 백복령 - 생계령 - 고병이재 - 석병산 - 두리봉 - 삽당령
o 산행거리: 18.3km
o 소요시간: 7시간
o 지역: 강원도 정선
o 산행정보: 석병산
o 일행: 좋은사람들산악회 백두21기
▼ 등산지도
지난주 내내 4월초에 해당하는 포근한 날씨가 계속되더니 '눈이 녹아 비나 물이 된다' 는 오늘 雨水에 기습한파가 찾아왔다. 서울이 영하 7도라고 하니 강원도 산골은 영하 10도를 훨씬 하회할 것이다. 게다가 업무상 연이틀 과음을 하였고 오늘도 출발 2시간 전까지 술잔을 기울이다 부랴부랴 베낭을 메고 나왔기 때문에 오늘 대간길은 기대보다는 걱정이 훨씬 앞선다. 새벽 3시반을 넘긴 시간에 도착한 백복령에는 아니나 다를까 찬바람이 휘말아 치고 있다.
▼ 백복령 (780m, 들머리)
[백복령]은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와 동해시 신흥동,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 동목리 사이에 길게 이어진 고갯길로 과거에는 강릉, 삼척의 소금이 정선을 넘어오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이곳은 예부터 한약재로 쓰이는 백복이 많이 난다해서 현재 白茯嶺으로 불리고 있으나, 한자로는 그 끗이 다른 白鳳嶺(택리지), 百福嶺, 百複嶺(중보문헌비고), 希福峴(신동국여지승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百福嶺, 希福峴은 글자 그대로 복을 바라는 고개, 복을 희망하는 고개라는 뜻으로 아마도 옛날 이곳에 복을 빌던 산신당이나, 신수(神樹)로 여기는 당목 따위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하는 이도 있다.
골 깊은 강원도 산속이라 이곳에는 아직도 눈이 수북히 쌓여있다. 등산로는 863봉(송전철탑)을 향해 조금씩 고도를 높힌다. 얼어붙은 눈길이 미끄럽기는 하지만 푹푹 꺼지지 않아 걷기에는 오히려 편한 측면도 있다. 숲길을 지나 작은 임도를 가로지르는데 커다란 트럭의 불빛이 우리를 비추고 있다. 아마 바로옆 자병산에서 석회암을 캐내는 공사지역의 차량일 것이다. 자병산(紫屛山, 873m)은 자주색 석회암이 병풍처럼 둘러쳐져있는 아름다운 산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1970년대 석회암 광산 개발이 시작되면서 지금은 정상이 무참하게 파헤쳐져 오히려 흉물스런 모습이라고 한다. 등산로는 임도를 건너 다시 숲속으로 들어간다. 중간에 갈림길이 있어 약간 헷갈리는 곳도 있지만 송전탑의 불빛을 방향타로 삼으면 알바를 막을 수 있다.
등산로 옆에 카르스트 지형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 강원도 지역의 지형적 특성을 설명해준다.
내리막길에서는 미끄러운 눈길을 피해 낙엽을 밟아 보지만 미끄럽기는 마찬가지다. 어쩔수 없이(?) 모두 아이젠을 착용하고 대간길을 이어간다. 대장님이 갑자기 왔던 길을 뒤돌아 가신다. 오늘 처음 참석한 산우님 한분이 후미에 뒤쳐져 밤길이 헷갈린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덕분에(?) 잠시 가픈 숨을 고를 시간을 벌었다. 손끝과 코끝, 귀끝이 얼어붙을 정도의 기온과 찬 바람에 어제밤의 술기운은 이미 사라지고 없어졌지만 약해진 체력때문에 작은 오르막길에도 쉽게 발걸음이 뒤쳐진다.
863봉(송전탑)을 지난 등산로는 생계령을 향해 하강한다. 중간에 약간의 업다운은 있지만 비교적 무난하다. 후미에 뒤쳐진 몇몇 일행이 있기 때문인지 선두의 발걸음에 확실히 여유가 있다.
▼ 생계령 (640m, 백봉령에서 5.4km)
[생계령, 生溪嶺]은 강릉시 옥계면 산계3리 영밑골과 정선군 임계면 직원리 피원을 넘나드는 고갯마루로 예전에 고개 정상에 주막집이 있었다고 한다. 고개이름은 아마도 아랫동네 옥계면 산계리 마을 이름에서 유래한것으로 보인다. 산계리 쪽으로 넘나드는 고개라 해서 산계령이라 하다가 전음되어 생계령이 된듯 하다고 한다.
생계령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이제 등산로는 931봉을 향해 솟구친다. 이곳이 개인적으로는 오늘 구간 중에서 가장 가파른 곳으로 느껴진다. 300m에 달하는 고도차를 짧은 거리에 올라야 하다 보니 경사가 심하다. 고도를 높일수록 내 발걸음은 땅에 달라 붙는다. 한걸음에 한걸이 더하여 봉우리에 올라서니 동해의 찬바람이 온몸을 파고든다.
931봉을 오르는 길에 강릉서대굴 안내판을 지난다. 지도상으로 보면 등산로 바로 옆에 강릉서대굴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밤중에 다녀오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옥계면에 동대굴도 있다.
▼ 931봉
▼ 931봉에서 바라본 동해시
931봉을 지나 등산로는 다시 짧게 하강하여 900봉으로 이어간다. 산 정상부는 암릉이라 얼어붙은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나목 사이로 보이는 새벽달은 점점 빛을 잃어가고 대신 멀리 동해바다 지평선 너머로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낮은 기온과 찬바람 때문에 900봉에서 일출을 기다리기가 만만치 않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라고 하는데 이곳은 해뜨기 전이 가장 춥다. 사실 기온의 변화를 보더라도 아침 6~7시경이 가장 추운 시간이다. 만물의 근원이자 에너지원인 태양이 떠오르기 직전이 가장 춥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지극히 이성적인 현상이 아닐까 싶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한다...
▼ 900봉
900봉에서 일출을 기다리지 못하고 추위를 피해 조금 더 전진해 보기로 한다. 날이 밝으면서 발걸음도 한결 경쾌해진다.
작은 내리막 아래에 고뱅이재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함께 잠깐동안 발걸음을 멈춰보지만 추운 기온과 찬 바람 때문에 베낭을 벗고 쉴 만한 상황이 되지 않는다. 다시 바람없는 미지(?)의 땅을 찾아 숲속 항해를 계속한다.
▼ 고뱅이재 (850m, 생계령에서 4.4km)
908봉으로 향하는 도중에 광활한 지평선 너머로 태양의 빛이 용솟음치기 시작한다. 태양을 가리고 있던 구름의 실루엣이 흩어지고 그 가장자리에 붉은 기운이 점점 물들더니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기운이 머리를 내밀기 시작한다. 핸드폰 카메라 셔트를 정신없이 눌러보지만 실제 눈으로 보는 감동을 어떻게 사진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 21기팀의 백두대간 완주에 안산과 즐산이 항상 함께 하기를 빌어본다.
▼ 일출 모습
▼ 헬기장 (908봉?)
908봉을 지나면 등산로는 잠깐 하강하면서 본격적인 석병산 등정을 준비한다. 이곳 등산로에는 산죽이 지천이다. 산죽의 푸르름과 새하얀 눈(雪)이 만나 한폭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석병산 아래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침식사를 하면서 후반전을 위한 에너지를 보충한다. 아침식사 중에도 손끝이 얼어붙어 장갑을 벗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본격적으로 석병산을 향해 올라간다. 석병산까지의 고도차는 약 200m, 사실상 오늘의 마지막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숲속의 기온도 점점 오른다. 추운 날씨 때문에 땀의 기미도 보이지 않더니 석병산을 오르면서는 이마와 등에 땀이 베어나오기 시작한다. 원기를 보충해서 그런지 석병산까지 그렇게 힘들다는 느낌은 없다. 석병산 정상은 백두대간 등산로에서 우측으로 약 5~6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정상이 두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뒷쪽 암봉에 정상석이 설치되어 있다. 특히 뒷쪽 암봉의 북쪽면은 깎아지른 절벽이며 정상은 몇사람만 설수 있을 정도로 좁은 봉우리다. 두 암봉 사이에는 고사목 하나가 멋을 더해주고 있다.
▼ 석병산 (1055m, 고뱅이재에서 2.5km)
▼ 앞쪽 암봉
[백두대간과 석병산] 백두대간이란 우리 땅의 근골을 이루고 있는 산줄기로서,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의 물줄기로도 끊이지 않고 이어진 산줄기를 말한다. 1600여km에 달하는 백두대간은 백두산을 뿌리로하여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한개의 정간, 13개의 정맥으로 갈라진다. 마치 나무의 뿌리와 가지, 줄기가 펼쳐지는 것과 같다. 백두대간과 13개의 정맥들은 우리나라의 산줄기 뿐만 아니라 물줄기(水界)를 구분짖는다. 대간에서 갈래쳐나온 산줄기는 모두 14개이다. 이것들은 열개의 큰 강을 가늠하는 울타리들이다. 석병산(石屛: 바위가 병풍을 펼친 듯하다)의 높이는 1055m이며, 백두대간이 지나는 하나의 산줄기로 웅장함과 화려함이 경비된 산이다. (안내판)
[석병산]은 동해안의 옥계 해수욕장에서 서쪽으로 약 12km 되는 지점에 위치하며, 이름 그래도 바위로 병풍을 두른 듯, 정상일대의 암벽이 특출하게 생겼고 주능선의 길이도 20km가 넘는다. 석병산은 백두대간이 동해안을 끼고 남하하여 오대산과 황병산을 일구고 청옥산, 두타산으로 뻗어 내려가 강릉시 왕산면에 안착한 산이다. 깍아 지른 듯 솟아있는 기암괴석의 바위들이 마치 산 아래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석병산일 이름 붙여졌는데, 정상에 서면 강릉시가 한 눈에 들어오며 멀리 동해의 수평선이 바라보이는 광경이 일품이다. 석고함으로 형성된 석병산은 산 곳곳에 동굴들이 산재해 있는데, 범바위골 계곡은 계곡 주류임에도 물이 흐르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석병산 정상의 북동쪽과 북서면은 절리가 미세하여 부서지기 쉬운 단애를 형성하고 있어서 전망이 좋고, 남쪽으로 뻗은 주능선 서쪽에는 낙엽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삽당령에서 두리봉으로 오르는 길 주위에는 활엽수림대가 끝없이 펼쳐진다. 활엽수림대 밑으로 석병산까지 산죽 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산죽 밭을 헤치고 가노라면 열대의 정글에 온 느낌이다. 삽당령 출발지에서 40분 정도 가다보면 측량 삼각점이 나오는데 주위에는 소나무가 집단으로 자생하고 있다.
석병산은 오늘 대간길에서 조망이 가장 좋은 곳이다. 동쪽으로는 동해시가 내려다 보이고, 서북쪽으로는 멀리 대관령까지 백두대간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고, 뒤돌아보니 지나온 대간길이 달려오고 있다.
▼ 석병산에서 바라본 대관령 방향 (우측 중간 봉우리가 두리봉)
▼ 석병산에서 바라본 두타산 방향(?)
석병산 정상 암봉 아래에 가로세로 2m 안팎의 큰 구멍이 뚫려있다. 일월봉의 일월문이다. 이곳을 통해 바로보는 해와 달의 모습은 얼마나 낭만적일까. 위에서 내려다 보니 까마득한 절벽이라 낭만보다는 무서움이 앞선다. 어찌보면 백상아리가 크게 입을 벌이고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다. 어느 산행기 필자는 러브홀이라고 불렀다. 남근바위와 여근바위를 함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철쭉이 만개하는 5월에 바위 구멍에 달이라도 뜨면 정말 환상적인 모습이 연출될 것 같다....
▼ 일월문
석병산에서 대간길로 되돌아와 두리봉으로 향하는 길에 석병산의 깍아지른 암봉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저 절벽 사이에 일월문이 열려 있고, 그 위에 석병산의 정상이 자리잡고 있다. 천상의 세계를 보는 듯하다.
▼ 뒤돌아본 석병산 모습
석병산에서 두리봉까지는 다시 작은 내리막과 오르막을 거친다. 소나무와 산죽 군락지를 지나고 또 눈길을 헤쳐나간다. 햇살이 점점 따뜻해진다...
두리봉은 두리뭉실한 봉우리로 흰눈이 수북하다. 나무데크와 의자가 마련되어 있어 쉼터로는 제격이다. 이곳 쉼터를 선점한 산객 두명이 쉘터를 뒤집어 쓴채 맛있는 라면 냄새를 풍기고 있다. 오늘 코스가 비교적 짧기도 하고 날씨만 빼면 코스도 무난하여 예정했던 하산시간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 이곳 두리봉에서 간식도 즐기고 따뜻해지는 햇살고 즐기고...
▼ 두리봉 (1033m, 석병산에서 1.7km)
두리봉을 끝으로 삽당령까지는 거의 내리막길이다. 산길에 업다운이 없을리 없지만 무시해도 좋을 만큼 편안하다. 발걸음도 가볍다. 따스한 햇살아래 절로 콧노래도 흘러나온다... ♬♪
삽당령을 약 2km 남겨두고 너무 이른시간이라 버스 기사분을 어떻게 호출해야 할지 고민이 생긴다. 아직까지 차에서 주무시고 있을텐데... 후미에서 따라오는 대장님께 연락도 취해보고, 숲길에 선채 얼마간 시간도 때워보고... 눈을 들어보니 이곳 숲속에도 겨우살이가 겨울을 살고 있다.
다시 삽당령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선답자들의 발자국을 따라 내려오다 보니 임도를 만났다. 실제 대간길은 능선을 조금 더 따라가다 삽당령 직전에 임도를 만나야 하는데 우리는 조금 빨리 임도로 내려선 셈이다. 임도를 따라 가도 삽당령으로 이어지지만 조금 더 많은 거리를 우회하게 된다. 실제로 많은 대간팀들이 이렇게 임도를 이용한다고 한다.
▼ 등산로 실제 출구
발 아래로 삽당령의 널찍한 공터가 보인다. 삽당령 표지석 옆에는 경기 모산악회의 시산제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덕분에 막걸리 한잔과 따뜻한 시루떡 한그릇을 보시 받았다. 모든 관계자들이 안산~ 즐산~ 하시기를...
▼ 삽당령 (680m, 두리봉에서 4.6km)
[삽당령] 강릉시 왕산면과 정선군 임계면을 잇는 35번 국도상의 고갯마루로, 이 고개를 넘을때 길이 험하여 지팡이를 짚고 넘다 정상에 오르면 짚고 왔던 지팡이를 버리고(꽂아놓고) 갔다 하여 '꽂을 삽(揷)'자를 썻다는데서 유래한다. 또 다른 유래는 정상에서 북으로 대기(大基)로 가는 길과 서쪽으로는 고단(高丹) 가는 길로 세갈래로 갈라지는 삼지창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하기도 한다. 우리말 관점에서 풀어보면 이 고개의 위치가 강릉과 임계 사이, 또는 동쪽 석병산과 서쪽 대화실산 사이에 있다는 의미의 '사이'의 옛말 '샅'과 산신당과 같은 당집을 뜻하는 '당'이 합해져 '샅(사이)'에 '당집이 있는 고개'라는 뜻으로 '샅당령'이라 일컫은 것이 전음되어 '삽당령'이 된 것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한다...
▼ 삽당령 성황당
[삽당령 성황당] 조선 영조 재위시절(1724~1776) 당시 삽운령이라 불리던 이곳 삽당령으로 갓 시집 온 새신부(경북 안동 출신)가 밭일을 마치고 물동이를 이고 샘물을 길러 나갔다가 밤이 되도록 돌아 오지 않아 마을사람들이 온 골짜기를 뒤지며 찾기 시작했는데 3일이 자나 찾게 된 새신부는 헝클어진 머리만 남아 넓찍한 바위 위에 놓여 있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호랑이에게 화를 당했다고 생각했으며, 너무나 처참하고 괴이한 모습에 새신부의 한이 깊을 것으로 여기고 시신을 수습하고 그 위치에 신각(성황당)을 세워 억울하게 호랑이에게 목숨을 잃은 새신부의 혼을 위로하는 한편 삽당령을 오르내리는 길손의 안녕과 우마차의 무사고를 기원하며 매년 음력 8월 초정일이 되면 익히지 않은 제물과 황소의 머리 및 주요부위를 정성껏 마련하여 마을원님을 모시고 성황제를 지내어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안내판)
삽당령 한쪽 구석에는 작은 간이매점이 영업중이다. 따뜻한 난로옆에 앉아 기울이는 옥수수 막걸리 한잔과 메밀전병이 별미다...
▼ 삽당령 간이매점
간이매점에서 간단한 요기를 한후 점심은 1박2일의 촬영지인 강릉시 소재 '옛 카나리아'에서 해결하였다. 이곳 별미는 대구머리찜이라고 한다. 아삭한 콩나물과 함께 매콤한 대구머리찜이 식욕을 돋군다. 주차장에는 찾아온 식객들로 만원이다. 별미이긴 한데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은 꼭 맛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 뒷풀이(점심) 장소
오늘 점심은 우리팀의 행복바이러스 조앤님이 한턱 쏘셨다. 다음달 부터는 일 때문에 남은 대간길을 함께 할 수 없다고 하니 아쉽기 그지없다. 대간산행도 좋지만 닥터로서의 사명과 소명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조앤님에게 행복이 항상 함께하기를 빌어드립니다. 산객들은 언제든 산에서 만나는 법, 우연히 또 필연적으로 그렇게 산길에서 종종 만나기를 바랍니다...
식당 마당 한켠에 매화꽃이 만발하다. 저절로 봄은 그렇게 다시 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