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이 무덤이 아닌 구약시대의 하늘에 제사를 드리던 제단이었다는 학설은, 주류 고고학계의 통설(청동기시대 지배층의 무덤)에 대안을 제기하거나 신앙적·기독교적 시각을 결합하여 설명하는 주장입니다.
이 학설이 구성되는 주요 논리와 근거는 크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구약성경의 ‘자연석 제단’ 지침과의 일치
구약성경 출애굽기 20장 25절에는 다음과 같은 제단 축조 규정이 등장합니다.
> "네가 내게 돌로 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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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설에서는 고인돌의 덮개돌과 받침돌이 인위적으로 정교하게 쪼아낸 가공석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거대한 돌(자연석)**을 사용하여 만들어졌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구약시대 인류가 하나님(하늘)께 순수한 마음으로 제사를 드리기 위해 성경적 지침에 따라 자연석 그대로 제단을 만든 형태가 바로 고인돌이라는 시각입니다.
2. 유골 미발굴 문제와 '제단'으로서의 형태적 특징
* 유골 및 부장품의 부재: 전국에 수만 기가 넘는 고인돌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람의 뼈(인골)나 무덤임을 증명할 부장품이 출토되지 않는 고인돌이 매우 많습니다. 학계 일부에서도 거대한 탁자식 고인돌 중 무덤방이 없거나 산마루 등 탁 트인 고지대에 단독으로 서 있는 것은 무덤이라기보다 제단이나 신전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 제물과 불을 피운 흔적: 일부 고인돌 상석(덮개돌)이나 주변에서 제물을 태우거나 불을 피운 흔적, 덮개돌 표면에 제물용 동물이 새겨진 암각화 등이 발견되는 점을 근거로 하늘에 희생제물을 바치던 제단이었다고 주장합니다.
3. 노아의 후손 이주설과 '동방 제천 의식'
기독교 역사관 및 민족 기원설을 결합한 시각에서는, 창세기 바벨탑 사건 이후 또는 노아의 후손(주로 욕단 계열)이 동쪽으로 이동해 한반도에 정착했다는 관점을 취합니다.
* 이 정착민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던 고대 구약시대의 제사 의식을 그대로 간직한 채 동방으로 건너왔고,
* 그 과정에서 마을마다 혹은 지파마다 하늘에 제사짓기 위해 쌓은 돌 제단이 고인돌로 남았다는 설명입니다.
*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천의식(祭天儀式)**이나 '천제단(天祭壇)' 문화가 바로 이 구약시대 제단 문화에서 비롯된 흔적이라는 해석입니다.
4. 고대 거석(巨石) 제단 문화와의 연관성
성경 속 창세기나 여호수아기에는 인물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거나 감사의 제사를 드릴 때 거대한 돌을 세우거나(기둥돌/입석), 돌을 쌓아 단을 만드는 장면(아브라함, 야곱, 여호수아의 돌단)이 자주 등장합니다. 고인돌 제단설을 지지하는 이들은 전 세계에 분포한 돌멘(Dolmen)과 거석 문화가 이러한 구약시대 초기 유일신 제사의 흔적이며, 한반도에 전 세계 고인돌의 절반 이상(약 4만 기)이 집중되어 있는 것은 이곳이 고대 제사 문화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 💡 요약하자면
> 고인돌 제단설은 ① 다듬지 않은 자연석 사용 규정(출 20:25), ② 무덤방/인골이 없는 형태적 특성, ③ 노아 후손의 동방 이주와 제천 문화의 형성이라는 논리를 결합하여, 고인돌이 죽은 자를 묻는 묘지라기보다 구약시대 양식에 따라 하늘에 제사를 드렸던 거대한 자연석 제단이었다고 설명하는 학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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