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주는 행복 정현수 가을이 완연하다. 동창의 아침 해는 더 길어져 책상 위에 정물들의 그림자는 길고 흐릿하다. 한낮의 따스한 볕과, 산중의 소슬바람이 빨랫줄의 하얀 이불 홑청을 환하게 빛나게 하고, 개울 건너 산기슭에 빨간 꽃무릇은 져버린 지 오래다. 산비탈, 몽환적 색색은 물안개에 묻혀 자연의 빛을 잃어버렸고, 뒤채 처마 밑 거미줄이 느슨해 보이는 것은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함이다. 오늘은 바삐 서둘러야 할 것 같다. 봉동 장에도 다녀와야 하고, 겨우살이 준비도 해야 한다. 분이 하얗게 배어 가는 곶감을 서로 위치를 바꾸어 통풍이 잘 되도록 옮겨놓기도 해야 한다. 한 달 전 고종시 감 석 접을 깎아서 정성스레 감 꼭지에 비닐실을 꾀어 건조하고 있지만, 새앙쥐 드나들 듯 한두 개씩 빼먹은 게 이제는 두 접 반 정도이다. 아껴서 서울에도, 악양에도 보내야 할 텐데 진짜 새앙쥐 사촌이 될까 두렵다. 이곳의 고종시(여기 사람들은 고동시라 함) 감나무는 모두가 깊은 산중에서 자라고 있다. 기슭에서부터 중산간까지 바위 자갈밭에 심어져 감 따기에 큰 어려움이 있지만, 좋은 곶감을 얻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조선 말 고종 때 임금께 진상했다는 이곳 곶감은 고염 나무와 접붙이기를 해서 씨가 없는 게 특색이다. 먼 앞날을 내다봤음인지 온 천지 산 넘어 산에 이곳 돌아간 어르신들이 접붙이기를 해 놓은 것이다. 사방 3~40십 여리 산이 고종시 감의 산지다. 그래서인지 곶감과 감식초가 이곳의 특산물이다. '여린 가을볕에 백분이 피고 말랑말랑해지는 곶감은 만추(晩秋)의 남지도 모자람도 없는 알맞은 채움이다.' 저만치서 달래 녀석이 꼬리를 흔들며 무언가 아쉬움과 기대감으로 다가온다. 어디선가에서 새끼를 배어 온 게 오래되어 곧 낳을 것 같다. 젖 꼭지가 부풀 대로 부풀고 배는 거꾸로 남산만 해, 요즈음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매 끼니 특별 식을 주니 때 만 되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고개를 45도 각도로 기울이며 구하는 눈 빛으로 낑낑대는 모습은 또 고기를 달라는 모습이다. 이전에는 사료뿐 이었는데 초산이라 신경을 썼더니 동생이 보내준 내 양식까지 나누어 달란다. 그래, 같이 먹자. 아무래도 지금 힘든 건 나보다 너니까, 먹고 나서는 제발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으렴. 나는 봉동 5일장에 다녀올 테니…… 동상 저수지를 돌아 대아 저수지 호반도로를 지날 때에는 아직 지지 않은 중키의 은행나무 노란 물들임과 단풍나무의 꽃자주 가 조화롭게 어울리어 호숫가 길을 더 운치 있게 한다. 빠르지 않게 호숫가 굽이굽이 길의 아름다운 풍광을 스친다. 차창 너머 길가 구절초와 코스모스는 자동차들 만 지나치는 곳이라 아직은 울긋불긋 싱싱해 보인다. 저수지 물결의 잔잔한 파장이 왠지 쓸쓸해 보이고, 저수지 윗동 둔덕 물 빠진 모습은 세월의 흔적 같아 마음이 아리어 오고 애련하게 한다. 커피 한 잔과 팔각정 정자에 올라서서 넓고 고즈넉한 호수를 바라본다. 에메랄드빛 호수의 감성은 정지용의 시 '호수'처럼 그리움에 젖게 한다. 보고 싶은 내 딸이 생각난다. '내 아가!'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픈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활기 가득한 봉동 장날이다. 장터 풍경은 어디든 비슷비슷하지만 이곳은 콘크리트 건물 주위라 분위기는 도시스럽다. 그렇지만 인심 만은 후하고 넉넉하다.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면 친절하게 뭔가를 입에 넣어 주기도 하고, 싫지 않은 상냥하고 구수한 사투리로 호객하는 모습들이 목가적 소설의 한 대목 같기도 하다. 그들과 함께 하는 이 시간 이곳은, 왠지 따뜻 해지고 흐뭇한 미소만이 남는 부자가 되는 것 같고 아늑 해진다. 오늘 장 볼 것은 생강 3킬로, 현미, 찹쌀 각 2 되씩 그리고 흑미, 보리 조금과 서리태 3킬로 정도와 햇 과일과 낫이다. 난장 대장간이라 화덕에 풀무질 같은 정겨움은 없어도 내가 필요한 낫을 손안에 딱 잡히는 손맛을 느낄 수 있도록 골라주는 주인장의 센스는 시골 장날이 아니면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그라인더로 다시 한번 갈아주는 배려도 잊지 않는다. 안녕이라는 말이 필요치 않은 끄덕이는 눈 인사와 미소로 그곳을 떠난다. 상냥한 할머니가 '총각' 하니 아니 돌아 볼 수 없다. "이것 먹어봐, 장수 사과여" 함박웃음에 총각 소리까지 들었으니 아니 살 수 없다. "아니 할머니, 내가 어딜 봐서 총각입니까?" "난 늙었응께 건쟁한 사람은 다 총각여." 할머니의 상투적인 말이지 만 당신 일에 충실한 모습이 아무 가식이 없어 보인다. 사과와 바나나를 사서 배낭에 챙긴다. 서리태 등은 내가 다니는 단골집이 있다. 매번 들를 때마다 고봉으로 수북이 담아주는 인심에 봉동에서 만은 계속 이 할아버지와 거래하고 있다. 언제인가는 처음 대하는 귀한 밤콩을 한가득 거저 주어 밥에 넣어 고소함을 한동안 맛볼 수 있었다. 봉동에 오면 꼭 들르는 순례지 팥 칼국숫집이다. 녹녹한 팥 앙금에 푹 잠긴 손칼국수의 맛은 내 입맛에는 천하제일의 맛이다. 설탕을 적당히 풀어 약간 달짝지근하게 먹는 게 관건이다. 먹다 보면 찹쌀 새알 옹심이의 쫄깃한 맛은 팥 칼국수의 마지막 백미다. 쥔장 아주머니는 나 한 테는 옹심이를 듬뿍 넣어준다. 맨날 혼자 와서 먹으니 안돼 보이고 불쌍해서 그러나 싶다. 어느덧 해가 서산에 걸쳐 뉘엿뉘엿 지고 있다. 눈앞에 고등어가 보인다. 오천 원어치 만 사면 생선가게에서 팔다 남는 자투리인 생선 대가리나 내장, 꽁지 등을 우수리로 얻을 수가 있다. 달래에게 끓여주면 게 눈 감추듯 먹는다. 돌아와보니, 오! 환희다. 달래가 드디어 새끼를 낳았다. 혼자서 처음 겪는 일을 해낸 것이다. 암 수캐 각 두 마리씩이다. 새끼 아빠가 늘 궁금했었는데 아마 일 킬로미터나 떨어진 아랫동네 장 씨네 백구인 것 같다. 세 마리는 백구를 닮아 작은 강아지고 한 마리 만이 달래를 닮아 덩치가 커 보인다. 혹, 밤에 추울세라 안 입는 옷가지를 두툼하게 깔아주고 서둘러 방금 가져온 생선을 푹 끓여서 밥 말아주니 맛있게 먹는다. 힘 있게 심장이 박동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자기 행복이다. 심장은 머릿속 생각과 상관되어 자동으로 보고 느끼며 맛보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에게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 또한 절망도 체험한다. 그런 가운데 옆에 있는 다른 누군가와 조건 없는 길을 갈 때 달콤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 한편, 불편한 억지 관계를 유지할 땐 지루한 고통을 느끼게 되고 결국 잘못된 허무를 느끼게 될 것이다. 나는 기쁨이 배가 되는 행복을 찾고 싶다. 이 깊은 가을에 곶감은 탱탱 쫀득쫀득해지고 달래는 귀여운 새끼를 낳았다. 뒷마당 대추나무 대추는 수확해 반 자루나 된다. 오늘 사 온 생강과 섞어 설탕에 재어 대추 생강차를 만들어서 곶감과 함께 서울에도 악양에도 보낼 계획이다. 늘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그들과 함께 뭔가를 이어가며 작은 것을 나눌 때, 가슴 벅차오르는 희열을 느끼고 행복해지는 내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가을에 나를 기억하는 모든 이와 행복을 나누고 싶다. '앗! 설탕을 안 사 왔다.' (2006 년 수만리 살 때 어느 가을날) 2012.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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