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문수산성국가유산지킴이회 김홍엽 대표
‘나의 보물 1호 문화유산은 김포문수산성’, 국가유산지킴이로서 할 일을 꿋꿋하게
“자기소개 자리마다 늘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보물1호를 관리하는 국가유산지킴이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제게 1호 문화유산은 김포문수산성이에요. 지킴이라면 누구나 무한 애정을 쏟아붓는 자신만의 1호가 있어야 하겠죠.” 김포문수산성국가유산지킴이회 김홍엽 대표는 말한다.
그는 매월 2차례 김포문수산성에 올라 지킴이 활동을 펼친다. 서울 도봉구의 집에서 산성까지 왕복 4시간. 꽤 먼 거리지만 2011년부터 지금까지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빼고 빠짐없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자칭 타칭 그는 ‘김포문수산성 박사’다. 산성 곳곳을 현장 답사하고 옛 문헌 찾아 읽으며 발품, 손품 팔아 쌓은 지식이다. 지금까지 그에게 김포문수사와 김포문수산성에 대한 문화유산 해설을 들은 사람이 5만 명이 넘는다. 동료 지킴이들과 김포문수산성 일대를 매의 눈으로 모니터링하며 개보수가 필요한 부분은 일일이 사진 찍어 행정기관에 알린다. 틈틈이 쓰레기를 줍고 등산로가 아닌 샛길로 빠지려 객기 부리는 등산객들을 만류하고 설득하는 것도 지킴이로서의 할 일이다.
김포문수산성국가유산지킴이회의 한결같은 문화유산 자원봉사 활동은 문화재청장상(2013년), 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 우수단체 표창(2018년)으로 이어졌고 단체를 이끄는 그는 김포시 명예시민상(2018년)을 수상했다.
Q. 연고도 없고 집에서도 먼 김포문수산성과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 궁금합니다.
문화유산답사, 풍수지리 강의를 하는데 2010년 무렵 ‘1문화재 1지킴이’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2010년 무렵이에요. 지자체에다 집 근처인 정릉, 태릉 일대에서 지킴이 활동하고 싶다고 했더니 ‘관리인이 있어 필요 없다’는 답이 돌아오더군요. 그 후로 줄곧 봉사처를 찾았습니다.
김포문수산성은 가끔씩 등산하던 곳인데 우연히 김포문수사에 들렀다 귀한 사리함이 함부로 방치된 걸 발견했어요. 사리함이 제 마음을 붙들더군요. ‘지킴이 활동을 이곳에서 펼치자’ 결심하고 김포문수사 주지 스님을 찾아갔지만 허락해 주지 않더군요. 당시 김포문수사는 태고종과 조계종의 알력 다툼이 심해 낯선 이를 첩자로 오인하고 경계했거든요. 1년 가량 진심을 다해 설득하니 주지 스님이 마음을 열었어요. 어렵게 지킴이 활동 허락을 받았습니다.
제일 먼저 김포문수사를 찾은 신도를 대상으로 역사문화해설부터 시작했습니다. 낮 12시의 해설사가 되어 사찰 소개부터 국방유적지로서 귀중한 김포문수산성의 가치, 병자호란과 병인양요 당시 이곳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들려줬어요. 생동감있는 해설을 위해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같은 옛 사료 찾아보며 공부했습니다. 많을 때는 하루 500여 명에게 해설을 들려주기도 했어요.
해설을 하면서 김포문수산성을 찾은 역사학자, 과학자 등 다양한 전문가들을 만나며 저의 배움을 확장시켰어요. 등산객들 쉼터로 사용되던 바위가 물결무늬 화석이라는 걸 새롭게 발견해 보호 조치를 취하기도 했죠.
2011년 11월 김포문수사 신도들 중심으로 지킴이회가 꾸려졌고 한창 활황기 때는 138명의 지킴이 회원이 활동했어요. 이 가운데 15명은 늘 저와 함께하는 상시 활동가였죠. 김포문수산성 정상까지 왕복 2시간 거리며 한 바퀴를 다 돌면 하루가 꼬박 걸려요. 지킴이들은 산성 일대를 수시로 돌며 현장을 모니터링합니다. 폭우가 내리면 더 깐깐하게 살펴보며 개보수가 필요한 곳은 바로 사진 찍어 보내오면 제가 취합해 행정기관에 전달합니다.
Q. 10년 넘게 김포문수산성을 베이스캠프 삼아 활동했습니다. 지킴이 활동을 하면서 어떤 변화를 겪었나요?
문화유산 복원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김포문수산성 복원을 위해 투입된 예산이 대략 40억 원인데 ‘제대로 복원이 이뤄졌나?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워요.
김포문수산성 복원 공사를 진행할 때 저도 자문단으로 참여했는데 김포시 문화재 전문위원들과 격론을 벌였어요. 발굴 과정에서 탄소층이 나온 걸 보고 과거 봉수대로 사용될 수도 있다고 의견을 개진하니 학자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일축하더군요. 저는 고려, 조선시대 문헌들 모두 뒤져 봉수대로 표기된 기록을 찾아 제시하니 다들 입을 다물더군요.
김포문수산성은 국방유산이라 삼국시대부터 6.25전쟁까지 시대별 역사가 층층이 쌓여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장대지 복원에서는 이 같은 내용이 반영되지 못한 채 조선시대 1800년대 제작된 지도를 근거로 공사가 이뤄졌어요. 훗날 복원과 발굴 과정에서 삼국시대 토우를 비롯해 시대별 유적이 나왔어요. 김포문수산성에 외성과 내성이 있었다는 게 새롭게 밝혀졌고요. 현재 내성은 덮어놓은 상태입니다. 앞으로 여기에 추가 연구가 필요합니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저는 수천 년 세월이 녹아있는 문화유산 복원은 신중하게 또 여러 단계 검증과 확인을 거쳐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느 한 시대에 콕 짚어 섣불리 복원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현재 상태 그대로 잘 보존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저를 포함해 공무원, 학자들은 더 열린 마음으로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토론하며 연구해야 합니다.
Q. 국가유산지킴이 활동 전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풍수지리를 가르쳤고 문화답사를 다녔습니다. 경영학을 전공한 직장인에서 풍수지리 전문가로 새로운 인생 길을 낸 과정이 궁금합니다.
의성 김가인 저는 1953년생으로 전라도 정읍이 고향입니다. 아버지가 52세 때 막둥이인 제가 태어났죠. 아버지가 동네 훈장이라 어릴 때부터 곁에서 한자를 익히며 자랐습니다. 저희 집안이 풍수지리를 중시해요. 할아버지께서는 선산의 묘를 멋모르고 이장했다가 연이어 터진 집안 흉사를 경험한 뒤 전국의 풍수지리 선생들 찾아다니며 배움을 청해 이치를 깨우친치셨죠. 발품 팔아 쌓은 지식은 아버지와 작은아버지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궤짝에 담긴 예서와 풍수 관련 서적들은 6.25 전쟁 당시 피난 갈 때에도 고이 모셔간 집안의 가보였습니다. 아버님은 의성 김가 도유사였어요. 문중의 예법을 계승하고 제사 등을 주관하셨죠.
반면에 막내였던 저는 결혼 후 가정을 이루고 직장 생활하느라 바빴어요. 쌍방울에 신입 사원으로 입사해 본사와 계열사를 27년간 다니다 상무이사로 퇴직했죠. 젊은 시절에는 제례나 풍수지리에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그러다 40대 즈음 연로한 형님들의 뒤를 이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문중의 제사 집례를 맡게 됐고 풍수지리학회에 가입해 같은 공부를 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식을 넓혀나갔습니다. 풍수지리학, 사주, 관상 두루 공부했어요. 땅의 역사를 공부하러 전국을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역사와 문화답사에도 관심갖게 됐습니다.
기회가 닿아 인천대 평생교육원에서 풍수지리학과 역사답사 강의를 진행했어요. 오랫동안 인연을 맺은 교육생들을 위해 현재는 온라인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성균관에서 여러 해 활동하며 석전대제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어요. 현재 성균관유도회 서울본부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 같은 활동들이 차곡차곡 쌓여 국가유산지킴이에 관심 갖게 됐고 김포문수산성지킴이 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Q. 문수산성지킴이로 오랜 세월 활동했습니다. 보람은 무엇인가요?
초등 4~6학년생 앞에서 해설할 때 가장 신이 납니다. 김포문수산성만 가지고 우리나라 역사, 문화, 지질학까지 다양한 주제로 들려줄 이야기가 무궁무진해요. 학생들은 학교에 배운 퇴적암인 역암, 이암, 사암을 현장에서 종류별로 만날 수 있어요. 퇴적암 주제만으로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역사 동아리 활동을 하는 고교생, 어린 자녀와 함께 찾은 가족, 각종 단체 회원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요. 해설로 인연을 맺은 한 여학생은 문화재복원에 관심을 많다면서 제가 질문 공세를 하더군요. 훗날 박사 과정을 공부한다며 따로 연락을 해오더군요. 가슴 뿌듯했습니다.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는 법이라 간혹 씁쓸한 경험을 할 때도 있어요. 등산객 가운데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안내하면 지킴이들이 주우면 될 것 아니냐며 벌컥 화를 내거나 일부러 보란 듯이 휴지를 버리는 무뢰한이 있어요. 이런 분들을 만나면 회의감이 몰려오죠. 국가유산지킴이는 순수 자원봉사 활동인데 정부에서 돈 받고 일하는 용역으로 아는 분들도 있습니다.
Q. 현장에서 활동하며 국가유산청, 경인권거점센터에 바라는 점이 무엇인가요?
국가유산지킴이활동에 금전적 지원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선의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순수 자원봉사이기 때문이죠. 다만 지킴이 활동에 필요한 물품 지원은 필요합니다. 저희 단체는 해발 376m 문수산을 오르내리며 지킴이 활동을 하기 때문에 등산화가 금방 해집니다. 등산화와 국가유산지킴이 로고가 박힌 등산복을 지원해 주면 요긴하게 사용할 것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가유산지킴이 활동이 위축됐습니다. 저희도 참여 인원이 줄었고 다른 단체도 마찬가지 상황일 겁니다. 안타깝죠. 우리 것을 지키고 널리 알리는 지킴이는 지역별로 더 많아져야 해요. 활동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와 예우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지자체 공무원들이 우리가 진행한 문화유산 현장 모니터링 자료와 개보수 건의사항을 귀담아 듣기를 바랍니다. 담당 공무원이 계속 바뀌고 업무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지 않아 힘 빠질 때가 많아요.
일단 시작했으니 꺾이지 않고 계속 나아갈 겁니다. 제가 풍수학 공부를 20년 넘게 계속하는 것도 국가유산지킴이 활동을 13년 째 이어가는 것도 이런 마음가짐 덕분입니다. 어려운 여건이지만 꿋꿋하게 지킴이 활동을 해나가려해요. 노년에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제가 택한 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