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거주하는 부산의 지명에 대한 소견을 올려봅니다.
1. 부산시의 소개 내용
▶1402년(태종2년) <태종실록>에 부산(富山) 이라는 명칭이 처음 보이며 <세종실록지리지(1454)> 등에 동래부산포(東來富山浦)라 하였다.
▶1470년 <성종실록>에 부산(釜山) 이라는 명칭이 처음 나타남. 富山과 釜山을 혼용하여 쓰여졌다.
▶1481(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 산천조에 "釜山은 동평현(오늘날 당감동 지역)에 있으며 산이 가마골과 같으므로 이같이 불렀다. 이전에는 富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오다가 이후에 釜山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이 이외도 동구 수정동에서 산을 넘어 부산진구 가야동으로 통하는 고개를 [가모령]이라고 한다. 이는 가마를 즉 [가마釜]를 뜻하는 것으로 가모령은 우리나라의 방언을 한자로 차용한 것으로 가마재, 가마고개 즉 부산재(고개)를 의미하는 것이다.
▶좌천동 증산(甑山)을 시루산 이라고 하는데 시루(甑)와 가마(釜)는 같은 취기(炊器)로 금속성의 가마가 나오기 전에는 동일한 구실을 하였던 것이다. 이상의 사실들을 종합하여 볼 때 "산이 가마꼴(釜形)과 같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2. 어원적 해석
▶우리의 지명 대부분은 큰고을(골·실), 큰 벌(伐, 火) 등으로 표기하는 사례가 대분분이다..
▶크고 넓음의 우리말은 금(金), 김(金), 한(韓), 한(漢), 웅(熊고마/가마 →곰, 감), 대(大) 등으로 표기하였다. 김해, 금산, 한양, 웅천, 대전, 대구 등의 지명이 대표적인 지명이다.
▶크다의 순수한 우리말은 가마(釜), 고마(熊), 거머(黑)가 있다.
▶따라서 부산(釜山)은 가마솥을 닮은 산이 아니라 '넓고 큰 땅' 이라는 것으로 본다. 산(山)은 뫼가 아니라 지명 접미어로도 쓰인다.
3. 부산의 역사적 기록들
▶<삼국사기> 권 제16 고구려본기 제4 신대왕 5년(169)에 왕이 군사를 보내 현도태수 공손탁(公孫度)을 도와 부산적(富山賊)을 토벌하였다.
▶ <삼국사기> 권 제 24 백제본기 고이왕 5년(238)에 부산(釜山)에서 사냥하고 50일 만에 돌아왔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3년(663) 부산성(富山城)을 쌓다.
▶<삼국사기> 권 제37 잡지 제6에 삼국의 이름만 있고 그 위치가 미상인 350여 지역명에 富山과 釜山이 있다.
▶지금의 중국 산서성(山西城) 진성시(晉城市) - 고평시(高平市)에 부산촌(釜山村)이있다. 백제 고이왕이 이곳으로 사냥한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들은 부산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되나요?
-박영동-
첫댓글 아하, 그래서 지금 당감동 한복판 대로가 동평로이고,
동평초등학교의 동평이 먼 옛날 사료에서 따온 모양이네.
거기다가 지금의 부산 전체 면적을 기준으로
'여기가 부산의 정중앙'이란 팻말이 모교와 삼성래미안 아파트 사이 도로변에 서 있다.
역사가 묻어있는 당감동 인근에 사시는 분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