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방산을 다녀와서 /이흥근
어두웠던 주위가 밝아 오며 시야에 있는 산들이 눈에 덮여 있어 겨울의 정취가 느껴진다. 계방산 운두령에 도착하여 등산에 필요한 음료수, 아이젠, 장갑, 등을 각자의 배낭에 넣고 산행을 시작하였다. 산속이라 날씨가 매섭게 추웠고 주위는 눈이 쌓여 있어 겨울 등산이 기분이 상쾌했다. 일행은 일렬종대로 눈 덮인 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정상으로 향하여 갔다. 올라갈수록 숨이 차고 힘들었다.
산행은 우리 인생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힘이 들더라도 조금 참으면 바람이 안 불고 아늑한 지역이 있고 평온함이 있다. 나는 과연 인생길에서 어느 정도까지 왔을까? 그동안 등산하는 만큼이나 모든 면에서 등에 땀이 날 정도로 열심히 일 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다리에 무거움이 느껴졌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정상에 올라가니 벌써 도착한 동료와 등산객들이 반갑게 맞아 준다.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올라오며 힘들었던 일들을 잊은 것 같다. 준비한 족발을 꺼내 놓고 눈 덮인 산을 바라보며 먹는 맛은 일미다.
지난해 돼지 콜레라 때문에 가축 농가 및 공무원들이 얼마나 고생했던가? 사자나 호랑이같이 크고 힘을 가진 동물보다 모기와 보이지 않은 미세한 병원균에 의하여 피해를 더 입으니 인간은 가장 약한 존재 같다.
따끈한 커피 한잔이 얼었던 몸을 확 풀어준다. 올라올 때 미처 보지 못한 경치를 즐기며 미끄러지듯 소복이 쌓인 눈을 밟으며 내려왔다. 명경지수라고 했던가? 계곡의 물이 거울보다 더 맑다.
우리는 이승복 생가가 있다는 안내판을 보면서 지금 살아있으면 나이가 몇 살인지 이야기를 나눴다. 잠시 내려오니 잣나무와 전나무 소나무들이 마치 세상사에 풍랑을 거치지 않고 곧게 자란 귀공자같이 죽죽 뻗어 하늘로 치솟고 있다. 장관을 이룬다. 산 위쪽은 모진 바람과 풍랑을 겪어 마디마디가 옹이 졌건만 이곳은 다르다.
앞에 이승복이 살았던 작은 토담 초가집과 움막처럼 된 화장실이 있다. 부모와 7식구가 함께 살았던 곳이다.
주위에 나무들이 곱게 자란 적막한 곳에서 어린 소년 이승복이 ‘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한 마디를 남기고 무참히 죽어갔던 일이 벌써 35년이란 세월이 지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신을 부정한 니체는 때를 맞춰 죽으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너무 어린 나이에 죽고 어떤 사람은 병마에 시달리면서 늦게 죽어간다고 했다.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감히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던 말인가? 동료 모두는 서글픈 마음을 뒤로 하고 운두령 횟집에 도착하니 오후 1 시가 되었다.
산행에 점심은 정말 꿀맛이다. 송어회와 강원도 토산품인 메밀주 산나물 맛은 일미다. 모두는 즐거운 산행을 사고 없이 마친 것을 자축하며 산악회 회장을 비롯한 동료의 건배 제의와 메밀주로 흥을 돋구며, 손뼉 치며, 격려하였다.
밖에는 소리 없이 하얀 눈가루를 뿌리고 있다. 메밀주를 마시며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생각한다.
이야기 소재지가 바로 평창군 봉평이다. 주인공 허생원은 일생에 단 한 번 물레방아 간에서 있었던 아름다운 추억을 생각하며 대화의 장터에 나귀를 끌고 동이와 함께 달밤에 옛이야기를 하며 메밀꽃이 한 창 핀 벌판을 가는데 메밀꽃이 달빛에 비춰 소금을 뿌려 놓은 듯하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글에서 암시하듯 허생원과 동이는 왼손잡이라는 것 동이는 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도 못 보았다는 것을 암시하듯, 소설 속 정경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기분은 상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