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반이라고 생각된다. ‘토인비와의 대화’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일본대학 교수가 토인비와 대화 형식으로 엮은 책이다. 거기에서 그 교수가 토인비에게,
“선생님께서는 80을 넘긴 지금까지도 건강하신데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글쎄요. 그건 내가 젊은 시절에 그리스∙로마유적을 돌아다니느라 배낭을 짊어지고1년여 동안 걸어 다닌 것 때문에 지금까지도 이렇게 건강하지 않나 생각해요.”라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나도 서양문명의 원류인 그리스∙로마유적을 토인비처럼 걸어서 돌아다니고 싶었지만 여건이 허용하질 않았다. 그러던 중 비록 며칠간이었지만 로마와 그리스를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건강 유지가 목표는 아니었지만 될 수 있으면 걸어서 여행하고 싶었다.
나는 혼자 걸어서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가족과 다닐 때도 지도를 보며 스스로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좋아한다. 단체여행은 아직까지 해 본 적이 없다. 혼자서 또는 승용차로 스스로 여행을 하다 보니 여러 가지 웃지 못할 경험도 많이 했다. 로마와 아테네를 처음 여행했을 때는 혼자서 걸어 다니다가 피곤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추억이 되었지만, 당시엔 당황스런 경험이었다.
공무원으로 있던 198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8월 1일부터 11월 2일까지 세미나가 개최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내가 참석키로 결정되었다. 세미나 장소인 오스트리아 빈엔 8월 1일까지 도착하면 되는 것이었다. 며칠 일찍 출발해서 파리와 로마를 관광하고 싶었다. 여름휴가를 해외에서 보내게 되니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7월 28일 아침 파리에 도착해서 이틀 동안 파리 관광을 끝내고 29일 밤에 이탈리아 로마로 향했다. 뭐니 뭐니 해도 유럽 관광의 핵심은 파리와 로마가 아니던가.
로마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되었다. 처음 해보는 여행이라 호텔 예약은 현지에 도착해서 하기로 했다. 공항에서 로마 시내까지는 한 시간 정도 잡아야 하는데 이 밤중에 언제 호텔을 구할 것인가. 한국에 있을 때 동료들로부터 로마는 위험하단 소리를 수없이 들어 왔지만, 공항버스 타고 가면 11시가 넘을 것이고 그러면 호텔 잡기도 어려우리란 생각에 엉거주춤하며 택시를 탔다.
이게 실수였다. 택시 운전사를 보니 덩치가 산만하고 험상궂게 생겼다. 아니나 다를까 가다가 갑자기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 가더니,“택시비 미리 계산 하쇼. 200달러요.”하는게 아닌가. 세상에 이런 사기꾼이 있나.
내가 말했다.
“경찰 부르쇼.”
“쓸데없는 소리 말고 200달러 주쇼. 안 그러면 이 골목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소.”
“만약 지금 200달러를 주면 시내에 가서 호텔도 잡아 주리다.”
“세상에 택시비로 무슨 200달러가 뭐요. 20달러면 되겠네.”
“나도 5식구요. 우리도 먹고 살아야겠소.”하는 것이 아닌가.이러고 있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결국 100달러로 합의를 봤다. 그랬더니 고맙다면서 호텔을 잡아주었다.호텔을 잡아서 다행이긴 한데, 억울해서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았다. 그때 100달러는 상당히 큰 금액이었다. 전전반측하면서 겨우 새우잠을 자고, 다음 날 관광을 나섰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혼자 걸으며 시내 관광을 하는데, 이상한 놈들이 내게 와서 길을 묻는 것이었다. 얼굴 색깔도 다른 나한테 길을 묻는 것은 사기꾼 아니면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지난 밤에 당한 것도 있고 해서 대꾸도 않고 혼자서 포로 로마노(Foro Romano), 콜로세움(Coloseo), 카타콤베(Catacombe), 바티칸 성당((Basilica Vaticana) 등을 둘러 봤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세미나를 마치니 11월 2일이었다. 스위스 융프라우 관광을 마치고 서양 문명의 원류인 그리스 아테네로 향했다. 11월 5일 그리스 아테네에 도착했다. 다행히 정오쯤 도착해서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서 숙소를 잡고 시내 관광에 나섰다.
아테네 시내를 관광하고 있는데, 50대쯤 보이는 남자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혹시 한국에서 오지 않았습니까?”하길래 내가 반가워서 그렇다고 하자,
“반갑습니다. 나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사람입니다.”라고 하면서 “이 사진을 보세요.” 그 사진을 보니 몇몇 군인이 전쟁터 같은 데서 찍은 사진 같아서, 한국에서 찍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그 사람이 “우리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카페에 가서 커피나 한잔 합시다.”하길래 “좋습니다.”하며 그를 따라 갔다.
대낮인데도 카페에 들어가니 어두컴컴했고, 내가 자리에 앉자, 그가 화장실에 다녀 올테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앉자마자 카페 종업원이 양주 두병을 내어 놓더니 접대부인 듯한 여자가 내 옆에 앉는 것이었다. 순간 약간 당혹스러웠다.
“그 사람 어디 갔어요?”
“잠시 후면 올거예요.”하면서 양주병를 따려고 하는 것이었다.
“잠깐! 양주는 따지 마세요. 콜라 한 병 주세요.”하며 콜라 한 병을 시켰다.
그런데 금방 오겠다던 그 친구는 30분이 지나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주문한 콜라를 마셨다. 아무래도 속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얼마요?”하고 물으니 “300달러요.”하는 게 아닌가.
내가 소리쳤다.
“내가 시킨 것은 콜라 한 병 뿐이다. 나는 콜라 한 잔 값만 내겠다.”하자
카페 종업원이,
”양주 두 병, 그리고 여자까지 앉혔으니 300달러 다 내쇼.”
“경찰 불러! 내가 시킨 건 콜라 한 병 뿐이야.”하며 한 30분간 옥신각신했다.
“당신들 선량한 관광객을 이렇게 사기쳐도 되는거야?”하며 콜라 값 20드라크마만 지불하고 나왔다. 우리 돈으로 4천 원 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때 만약 내가 양주병를 땄더라면 꼼짝 못 하고 300달러 낼 뻔 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 쉬고 시내를 관광하는데, 내가 혼자니까 별별 인간이 다 와서, “예쁜 여자 있는데 가겠느냐?”하는 것이었다.
아테네를 혼자 하는 여행은 여러 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어디를 갈려고 했는지는 잊어버렸지만, 그 장소에 갈려고 택시를 탔다. 가는 도중 운전기사가 갑자기 창문을 내리더니, 지나가는 예쁜 여자한테,
“I want to fuck you!"하는 것이 아닌가. ”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 보진 못했다.
2000년 9월 다시 한번 그리스를 여행할 기회가 왔다. 그리스에 대한 인상은 지난번 경험 때문에 아주 나빴다. 그때는 공기업의 임원으로 있을 때인데, 그리스 문명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듣기 위해 가이드를 고용했다. 그 가이드의 해박한 지식은 경탄스러울 정도였다. 그 가이드가 나한테 그리스인과 결혼한 한국인 여자 교포 얘기를 해줬다. 그 여자 교포가 “한국 여자! 절대로 그리스 남자와 결혼하지 말라고 얘기해 주세요.”했다는 것이다.
그리스 남자는 일도 하지 않고 게으르고 아침부터 친구들끼리 둘러 앉아 차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었다. 그 한국 여자는 그리스 남편에게 질렸다는 것이다.
과연 거리를 지나며 보니 아침부터 많은 그리스 남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차를 마시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오래 전 일이라 요즘은 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조상이 물려 준 찬란한 문화유산 덕분에 수없는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그 문화유산이 경제적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축적된 부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는 2009년 재정적자에 따른 경제위기 발생 후 EU, ECB, IMF 등의 채권국으로부터 3,260억 유로의 구제금융 지원을 받았다. 그 후 2018년 8월 구제금융 지원이 종료되면서 경기가 회복되고 재정위기를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비록 며칠에 불과한 여행을 하였지만, 그 여행은 나에게 많은 인상을 주었다. 비록 그리스,∙로마에 많은 사기꾼들이 들끓고 있지만, 아직도 옛날의 유적을 잘 보존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반만 년 역사를 지니고 있건만, 지금까지 남은 유적은 그리스∙로마에 비하면 부끄러운 수준이 아닌가.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면에선 이젠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있다고 하지만 역사의 향취를 느낄 만한 곳은 유럽에 비하면 턱없이 뒤지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를 역사 깊은 나라답게 역사의 향기가 풍기는 나라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소명이 아닌가 한다.
첫댓글 그리스 . 아테네 다 무서운 곳이군요... 얼마나 놀랐을까 생각하니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