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06
초등학교 옆으로 이사를 왔다. 아파트 내 인도가 학교 정문 바로 앞에 있어 학교에 등교하는 아이들은 모두 이 길을 통해서 걸어간다. 도대체 어디 숨어 있다 그렇게들 나오는지 아침 8시30분쯤 아파트 현관을 나서면 사방에서 모여든 아이들이 학교로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싱싱한 어린 생명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충만해진다. 언제 이렇게 많은 아이들을 본 적이 있었던가.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는 나이 든 사람들이 많았다. 환갑인 내가 그 단지에서 젊은 축에 속할 정도였다. 아침마다 창밖으로 밥 타는 냄새가 스며들면 행여 아래층에 거주하시는 80대 노부부가 불이라도 낼까 봐 걱정을 했다. 그런데 이곳은 완전히 딴판이다. 신도시라서 그런지 젊은 사람들이 많고 수시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처음 보는 아이들이 깍듯이 인사한다. 아이들 눈에도 내가 연식이 좀 있어 보이나 보다. 아파트 정원도 젊은 사람들을 겨냥해 조성되어 있다. 1층에는 주차공간을 없애고 나무와 꽃을 가득 심었다. 차가 다니지 않으니 아이들은 안심하고 뛰어다닌다. 나무 사이에는 군데군데 의자를 설치해 부모와 아이들이 놀다가 쉴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러니 햇볕 좋은 이즈음에는 1층에만 내려가도 웃고 떠드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이곳은 아이들 천국 같다. 대박이다.
▲ 김홍도. ‘단원풍속화첩’ 중 ‘서당’. 26.9×22.2㎝. / 국립중앙박물관
그림 속에 아이들이 없다
조선시대 그림 중에서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그림을 찾기는 매우 힘들다. 조선시대 아이 그림은 엄마 젖을 먹는 아기, 공부하는 소년, 공기놀이를 하는 아이들, 주인의 시중을 드는 시동 등 모두 조연으로 출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중 100여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장난치며 노는 ‘백동자도(百童子圖)’는 유일하게 어린아이가 주인공인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백동자도’는 현실 속의 아이라기보다는 많은 자손이 태어나서 모두 건강하고 훌륭하게 자라주기를 바라는 소원을 담은 길상화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이 전부 사내애들인 것만 봐도 ‘득남’하기를 바라는 당시 사람들의 열망을 반영한다.
이런 상황에서 김홍도가 그린 ‘서당’은 아이들의 실제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풍속화이다. ‘서당’은 워낙 유명한 그림이라 김홍도의 대표작으로 알려질 정도이다. ‘서당’은 여러 가지 장르의 그림을 골고루 잘 그린 김홍도의 젊은 시절의 그림이다. 그림의 주인공인 학동이 훈장님을 뒤로하고 앉아 훌쩍거리며 대님을 묶고 있다. 아마 훈장님이 어제 내준 숙제를 제대로 하지 못한 듯하다. 훈장님 옆에는 방바닥에 회초리가 놓여 있다. 아이가 제일 무서워하는 무기다. 지금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세상이 되었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체벌은 교육현장에서 빈번히 행해지는 다반사였다. 방바닥의 싸리나무 회초리는 체벌의 역사가 꽤 오래되었음을 상기시킨다. ‘서당’은 25면으로 구성된 ‘단원풍속화첩’의 한 장면이다. 그림의 구성은 명쾌하다. 그림은 훈장님을 중심으로 양쪽의 학동들이 대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배경은 전부 생략되었다. 오직 인물들만 그렸다. 인물의 배치에서 갓을 쓴 아이가 상석에 앉은 것을 보면 조선시대 때는 나이와 상관없이 혼인한 사람이 어른 대접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작은 화면인데도 아이들의 가르마까지 꼼꼼하게 표현했다.
김홍도의 ‘서당’은 배경이 생략되었기 때문에 스승과 제자들이 어떤 환경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사람이 조선풍속을 찍은 사진엽서에는 서당의 모습이 정확하게 드러나 있다. 10살 미만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마루에서 무릎을 꿇거나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책을 읽는다. 각각의 아이들 앞에는 바닥에 책이 펼쳐 놓았다. 훈장님은 아이들 중간에 앉았는데 갓을 쓰고 장죽을 물고 있다. 그런데 훈장님의 손을 보면 왼손으로는 장죽을 잡고 있고 오른손에는 회초리를 들었다. 회초리가 숙제하지 못한 아이를 체벌하는 용도가 아니라 글자를 짚으며 읽는 도구임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이다. 그렇다면 김홍도의 ‘서당’에 등장한 회초리 역시 체벌용이라기보다는 글자를 짚는 막대기였을 가능성이 크다. 훈장님이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무지막지한 체벌교사는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런데 훈장님과 아이들이 앉아 있는 공간은 허름하기 짝이 없다. 문짝의 종이는 다 찢겨 나가 폐가처럼 흉물스럽다.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서당풍경’에서는 마루에 앉지 못한 학동들이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공부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어느 그림에서든 그런 열악한 환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승과 제자들은 공부에 여념이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 민족이 가진 것 하나 없는 환경에서도 지금의 대한민국을 성장하게 만든 원동력일 것이다. 우리 민족은 교육의 중요성을 그 어떤 나라 사람보다도 중요하게 여긴 독특한 세계관을 가졌다. 1937년에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한 극동의 고려인들이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학교를 세운 일이었다. 오로지 ‘교육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얼마 전에 김포의 한 도서관에서 특강을 했다. 그런데 어른들을 위한 세미나실인데도 한쪽 구석에 색연필, 가위, 연필 등의 문방구가 비치되어 있었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와서 그림도 그리고 체험학습을 한다고 했다. 모든 준비물은 전부 도서관에 있으니 그저 아이들은 몸만 와서 도서관의 교육 프로그램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구조였다. 그 얘기를 듣고 있자니 정말 우리나라가 잘살게 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찍은 사진엽서 속의 열악한 환경이 아니라 해도 나 또한 초등학교 때 낡은 몽당연필을 볼펜에 꽂아서 썼던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훈장님이나 학생들이나 참 어렵게 살았다.
서당은 조선시대 때 초등교육을 담당하는 교육기관이었다. 한일병합 당시 전국의 서당은 1만6540개에 달할 정도로 거의 모든 마을에 있었다. 서당은 훈장님이 스스로 세워서 아동들을 가르치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마을구성원들이 주체가 되어 훈장님을 모셔가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민족의식을 고취시킨다는 비난 속에서 일제의 통제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당은 처음 학문을 접하는 아이들에게 기본이 되는 교육을 담당했던 중요한 교육기관이었다. 서당에서 실시한 교육 프로그램은 그다지 심도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주자(朱子)가 소학의 교육 방법으로 제시한 ‘쇄소응대(灑掃應對)’가 중심이었다. 쇄소응대는 “물 뿌리고 마당 쓸며 웃어른의 부름에 응대하는 것”이다. 문자를 깨우침과 동시에 사람이 살아가는 데 기본이 되는 인성교육이 목표였다. 그런 태도를 유지하며 “들어와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공손해야 하며, 이를 행하고 남는 힘이 있으면 ‘시경’과 ‘서경’을 송독하고, 읊고 노래하며 춤추고 뛴다”고 가르쳤다. 그런 막중한 역할을 담당했던 서당은 광복 이후에 그 기능을 보통학교에 물려줌으로써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 나의 집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초등학생들은 예전 같으면 서당에 가서 공부를 했어야 할 것이다.
▲ ‘조선풍속사진엽서’ 중 ‘서당’. 종이. 9×14㎝. / 국립민속박물관
아름다운 소리 10가지 중 으뜸은?
조선 중기의 문신 허균(許筠)은 한국 최초의 국문소설 ‘홍길동전’의 저자로 유명하다. 그는 또한 ‘한정록’을 저술했는데 중국의 여러 책에서 은거와 한일(閒逸)에 대한 내용을 모아 수록하였다. 그중 독서에 관한 내용을 채록한 ‘정업(靜業)’이란 항목에는 이런 멋진 얘기가 소개되었다. 송나라 때 저명한 학자 예사(倪思)는 세상의 아름다운 소리 열 가지를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솔바람 소리, 시냇물 소리, 산새 소리, 풀벌레 소리, 학 울음소리, 거문고 소리, 바둑 두는 소리, 섬돌에 비 떨어지는 소리, 눈이 창밖에 흩날리는 소리, 차(茶) 끓이는 소리 등은 매우 맑은 소리이다. 그중에서도 책 읽는 소리가 가장 좋다. 다른 사람의 책 읽는 소리도 좋지만 자기 자제(子弟)의 책 읽는 소리를 듣는 기쁨에는 비교할 수 없다.”
예사가 소개한 아름다운 소리는, 소리를 듣지 않고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벌써 행복해지는 내용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책 읽는 소리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나는 이사온 후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매일 듣는다. 아침에 학교 교문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을 보고 나서 얼마 후면 학교에서 책 읽는 소리가 들린다. 합창하듯 들려오는 책 읽는 소리는 비록 내 자제가 읽는 소리가 아니어도 듣기 좋다. 어디 그뿐인가. 오후가 되면 방과 후 수업이 있는지 학교에서는 다시 온갖 악기 소리들로 시끌벅적하다. 가을은 바야흐로 운동회의 계절. 학생들은 운동회 연습을 하는지 “백군 이겨라! 청군 이겨라!”를 끊임없이 외친다. 시대가 변해도 청군과 백군은 여전히 건재한 듯하다. 50여년 전에 내가 외쳤던 그 구호를 지금도 어린아이들이 여전히 똑같이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같은 구호를 외쳤다는 점에서 그들과 나는 50여년의 세월을 사이에 둔 선후배 사이다.
사람은 나이에 따라 사물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30대 젊은 시절에는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학교에서 울려 퍼지는 합창소리 등이 전부 소음으로만 들렸다. 심지어는 아이들이 운동회하는 함성소리가 시끄러워 민원을 넣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아이들의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나이가 든 탓일까. 아니면 갈수록 출산율이 떨어져 아이들이 사라지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아이들을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이사 오기를 잘했다.
조정육 / 미술평론가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