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골은빛수필 문학회>
홍어(洪魚)
전주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학철
예로부터 어떤 안 좋은 일로 기분이 몹시 상한 사람이 흔히 하는 말로 ‘지금 내속이 어떤줄 아느냐 속이 속이 아니고 홍어속이다’ 라고 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이 말은 아마도 속이 상해 홍어내장처럼 시커멓게 썩었다는 말일게다. 그런데 나는 놀부심사인지 몰라도 홍어 그 중에서도 폭 삭힌 그 홍어속을 아주 좋아한다. 홍어의 간을 비롯한 내장을 끓여 먹으면 화~하며 코 끝을 톡 쏘는 맛이 사람을 죽여준다. 다른 생선에서는 전혀 느껴보지못한 특유의 맛이다.나는 그 맛에 홍어를 즐겨 먹는다.
가오리과에 속하며 어렸을 때 가지고 논 꼬리달린 연과 같은 마름모꼴 연골체 바다 물고기다.
나는 홍어 맛에 입맛을 맞춘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의 어렸을 때 장에 갔다 오시는 아버지는 가끔 홍어를 사오셨다. 그것도 폭 곰삭은 홍어였다. 홍어탕을 마주 대하면 내 수저는 홍어의 간 등 내장에 먼저 간다. 고기는 나중이다.
어떤이는 그 홍어탕에서 암모니아 냄새가 난다느니 며칠 안 씻은 발냄새가 난다느니 하지만 나는 그 탕을 먹으면 맛만 좋고 속이 따뜻하며 편안한 느낌을 받아 지금까지 변함없이 좋아한다.
그런데도 30대의 우리 아들 딸들 4명은 홍어음식이라면 성한 것, 삭힌 것 불문하고 입도 대지않는다. 이런 현상은 아마도 우리집 애들뿐만 아니라 젊은층은 별로 좋아하지않고 중, 장, 노년층이 주로 선호하는 것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홍어를 일컬어 ‘노인고기’라고 하는가 보다. 지금은 시중에 국산은 없고 중국산, 칠레산이 판을 친다. 아마도 국산 홍어는 어렸을 때 먹은 것이 전부 아니었나 싶다.
얼마전 친구와 함께 홍도를 거쳐 흑산도로 여행을 갔을 때다. 흑산도 항구에 내리자마자 음식점 및 수산물 판매점마다 커다랗게 흑산도 홍어식당 또는 홍어판매 간판이 즐비하다. 참새가 방앗간앞을 어찌 지나칠소냐는 심정으로 홍어 전문식당에 들어갔다. 횟감으로 썰어 놓은 소형 한 접시에 4만원이란다. 그 이하는 아예 팔지도 않는다. 예상과는 달리 비싸기는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 유명한 흑산도 참홍어맛을 보지 않고 간다면 흑산도에 대한 예의가 아닐 성 싶어 대뜸 시켜먹었다. 초장을 찍어 먹는데 역시 톡 쏘는 맛과 더불어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예로부터 홍어와 묵은 김치 그리고 막걸리는3합이라 했다. 음식궁합이 잘 맞는다는 뜻일 게다. 막걸리가 없어 둘이서 소주 한병을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그런데 식당주인 아줌마가 회를 뜨는 사이 내가 한마디 건넸다. ‘흑산도 아가씨’ 라는 노래에는 흑산도 아가씨는 바다 보다도 얼굴이 검게 타버렸다고 들어 왔는데 지금 아줌마의 얼굴은 서울여자 빰치도록 예쁘고 뽀얗습니다. 하였더니 좋아라고 깔깔 웃는 것이었다.
홍어 가격을 물어보니 암컷 참홍어 6.5kg짜리 한 마리가 40만원정도 란다. 서민들에게는 엄두가 나지 않는 가격이었다. 그런데도 목포로 나오는 선착장에는 관광객들이 홍어를 구입 포장한 것으로 보이는 스티로폴 박스들이 여러개 눈에 띄었다.
이 곳 흑산도에서 잡은 홍어는 수산시장에서 2~3일만에 한번씩 경매까지 한다는데 어찌하여 내가 사는 전주에는 그 홍어가 오지 않는지 궁금했다.
우리 내외가 잘 아는 전주 평화동 사거리 S식당은 백반집인데도 냄비에 홍어탕 또는 명태탕을 끓여 내놓아 성업중이다. 그 탕 외에 계란탕, 고등어조림, 꽁치구이 등 여러 가지 맛깔스런 반찬으로 인해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인지 항상 손님들이 북적거려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가격은 1인당 백반보다도 싼 5천원. 점심 저녘 식사때는 7명의 종업원 주인 할것없이 손님접대에 몸놀림이 바빠진다.
나는 모악산 등산 또는 도립미술관 관람을 다녀올 때나 입맛이 없을 때는 지인들과 함께 이 곳을 즐겨 찾는다. 식당안에 들어서는 순간 나를 알아본 주인은 홍어고기외에 애(내장)를 듬뿍 넣어준다. 오히려 내가 미안할 정도다. 나는 주인에게 이렇게 팔면 적자아니냐 백반도 6천원이 된지 오랜데 조금 올려서 팔았으면 좋겠다. 라고 하자 아내가 말없이 내 옆구리를 가볍게 꾹 찌른다. 아마도 옆에 있는 손님들이 내 말을 듣고
“돈 많으면 당신이나 더 낼 일이지 왜 올리라고 하느냐”
는 항의라도 해 오면 어찌 하겠느냐는 눈치다.
그러자 “많이 팔면 남아요 또 손님들이 많이 찾아 주시는데 보람을 느끼지요”
라며 크리스찬이기도 한 주인 내외는 천진난만하게 활짝 웃는다. 이는 행정당국에서 이 식당 정문 앞에 붙여준 ‘착한가게’ 라는 표찰이 빈말이 아님을 잘 말해주고 있었다.
조리하는 홍어가 비록 국산이 아닌 칠레산이겠지만 국산 홍어맛과 비슷한 홍어탕을 끓여 이렇게 염가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하다니 그 식당 주인에게 항상 고마울 따름이다. 그 식당이 앞으로도 계속 번창하기를 빌어 본다.
( 2014. 11. 26. )